<조선일보> 16일자 29면에는 흥미로운 대담이 실렸다.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가 지난 13일 이 신문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보도 등을 두고 벌인 토론이 보도된 것.
이날 토론에 참석한 독자들의 대부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 <조선일보>가 이 문제를 회피하고 더 나아가 '괴담'으로 해석하는 등 정치적으로 접근했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 독자들은 이 신문이 과연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주부인 김민정 씨는 "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학교급식 문제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의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언론은 '괴담'이라며 초기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보도를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방석호 홍익대 법학과 교수도 "이슈가 먹거리다 보니 '효순·미선이' 사건보다 폭발성이 강했다"면서 "가정주부들은 아이들 걱정차원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음에도 <조선일보>가 정치적으로 해석했고, 또 너무 늦게 사태에 접근했다"고 비판했다.
방 교수는 "신문은 방송보다 훨씬 이성적으로 호소하고 분석할 수 있는 매체인데도 자극적인 방송이나 신속성을 자랑하는 인터넷의 뒷북만 친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신문의 미래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걸 놓쳤다는 것을 아쉬워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소설가 하성란 씨도 "정부와 신문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면서 "광우병 주장 중에 괴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7일자 "'정도전 예언' 확산 과정" 같은 기사는 광우병 논란을 더욱 괴담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또 조선일보 독자들은 이 신문이 이번 사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했다는 점도 짚었다.
하성란 씨는 "중고교생들이 거리로 나온 것에 대해 아이들에 대한 심리적 접근 없이 단지 '배후세력 있다' '좌파세력 있다' '무슨 연예인 있다'식으로 보도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연예인을 따라나선 것이라는 식의 보도는 중고생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민정 씨는 "민심은 광우병으로 들끓고 있는데 대통령을 부각시키는 듯한 5월 1일자 "'대통령 따라하기' 요즘 관가는…" 기사를 보면서 과연 신문이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3일자 "北 노동신문, 美 쇠고기 수입 대가 치를 것" 기사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다른 의도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했나"
이들은 <조선일보>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보도 자체에 소홀했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방석호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PD 수첩>의 반향이 컸던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매체들이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수입 쇠고기 논란도 황우석 사건 때와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석호 교수는 "주요 매체들이 진실보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그만큼 국민들로 하여금 소모적 논쟁에 빠져들게 하고 특정 매체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반영된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야 밝혀지겠지만 진실을 신속하게 보도하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했나 하는 점은 되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도 "<PD수첩>에 보도된 내용 중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제작진도 착오를 일으킨 것인지, 그렇지 않고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인지 궁금한데 방송의 어떤 내용에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지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 조선일보 독자들은 이 신문 논조가 오락가락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전용희 변호사는 "2일자 '광우병 괴담 듣고만 있는 정부' 기사나 사설을 통해 광우병 논란을 보도하기 시작한 초기 단계에선 독자가 보기에 정부를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면서 "그러다 비판이 거세지자 점차 정부협상의 졸속과 미숙한 대처를 비판했다"고 짚었다.
또 전 변호사는 "과거엔 광우병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기사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태도가 바뀐 것에 대해 설명이 부족했다"며 "정부여당을 비판하다가 지금은 옹호하는 듯한 논조를 보이는 것도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하도록 한 원인"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도 "민감한 문제일수록 신문이 중심을 잡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쪽저쪽 눈치를 보고 분위기에 따라 기사가 바뀌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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