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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재방송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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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재방송을 멈춰라"

[화제의 책] 찰스 프리처드 <실패한 외교>

미국 부시 행정부의 북핵 외교를 반성적으로 성찰한 책이 나왔다. 찰스 프리처드의 역작 <실패한 외교>(찰스 프리처드 지음, 김연철·서보혁 옮김, 사계절 펴냄)다.

이 책은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북핵 외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심각하게 묻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핵 외교의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향한 접근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의 출간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프리처드의 결론은 집권 초기부터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외교 정책을 고수한 부시 행정부에게 돌아온 부메랑은 북한의 핵개발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고, 핵시설도 무력화시키지 못했다. 무능력만을 드러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 시도한 흔적과 시인의 실체 있었다"

저자가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북핵 외교 일선에서 활약한 경력에서 이 기록은 생생하다. 프리처드는 1996년부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국장으로,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2003년 8월까지 국무부 대북협상 특사 및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미국 대표였다. 미국의 대북정책 입안과 특사 실무 경험이 책 여기저기에 녹아 있다.
▲ 저자 찰스 프리처드 ⓒ연합뉴스

저자는 먼저 북핵 외교의 중요한 전환이라 할 수 있는 부시 행정부 초기의 대북정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강경으로 굳어졌는지를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등 대북 온건파와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의 파워 게임에서 어떻게 강경파가 정책을 틀어쥐게 됐는지, NSC의 반확산 부서가 국무부를 밀어내고 정책을 주도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북미 제네바합의의 파기와 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시인하면서 발단이 된 2차 북핵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관심거리다. 여기서 저자는 '시도한 흔적'과 '시인의 실체'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강석주의 시인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켈리의 왜곡이 있었는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부시의 실패' 원인과 결과는?

이를 통해 프리처드는 부시 행정부의 북핵외교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미국의 압박 속에 북한은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데 성공했고,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으며, 핵무기 보유를 공개 선언했고, 미사일 프로그램을 발전시켰으며, 일정한 계산에 의해 미국을 외교적으로 이겼고, 한미 간 정책 접근의 차이를 활용했다'는 게 실패의 내용이다.

부시 행정부 관료들의 대부분은 북한을 다루는 데 미숙했고, 대외적으로 공언한 평화적 북핵 해결과 김정일 정권의 교체라는 희망도 일치하지 못했다. 핵실험은 부시 실패의 정점에 있었다.

그렇다면 부시는 왜 실패했나? 이 책이 간추린 이유는 우선 북한에 대한 '도덕적 접근' 그리고 극히 부정적인 말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김정일은 오랜 동안 '폭군' 혹은 '피그미'로, 북한은 '악의 축' 혹은 '폭정의 전초기지'로 묘사되었다. 프리처드는 북한에 대한 무지의 산물인 네오콘의 도덕적 접근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이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절망이 때로는 극렬한 말의 저항으로, 때로는 협상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부메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 <실패한 외교>(찰스 프리처드 지음, 김연철·서보혁 옮김, 사계절 펴냄) ⓒ프레시안

저자는 북한과의 양자대화 거부도 실패 요인으로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양자회담을 거부하면 6자회담이 삐걱거렸고, 반대의 경우 6자회담이 굴러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실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6자회담에서 나온 9.19공동성명과 그 전에 이뤄진 북미 양자대화가 없었다면 채택되기 어려웠거나 늦어졌을 것이다.

한편 한미동맹의 약화가 부시 행정부 임기 초기 북한과의 협상 기회를 잃게 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지적은 눈에 띈다. 부시 행정부의 북한 무시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이 어긋나면서 문제가 꼬였다는 것이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나

저자는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에 부정적이다. 6자회담이 성공하더라도 내용이 너무 부족하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4월 8일 싱가포르 회동으로 북핵 문제가 속도를 내고 있고, 새로운 전환점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5월 중순 쯤 개최될 6자회담에서 핵폐기 3단계가 합의될 가능성이 높다. 시리아 핵확산이 돌부리로 솟아올랐지만, 6자회담을 전복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에 치중하면서, 북한이 유발시킨 문제들을 보다 균형있게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서술이 이뤄졌더라면 책의 가치는 몇 배 높아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사하는 바는 크다.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북핵외교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을 향해 부정적인 말을 남발하고 대화를 기피하는 듯한 접근법은 부시 행정부가 몇 년 동안 선호했던 방식에 다름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면, 남북간 긴장과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병행 발전이 요구되는 시점에 이 책이 주는 교훈을 이명박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야야 할 것이다.


● 역자 인터뷰

"부시 실패 재연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경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 6년의 완벽한 재방송이다. 북한에 대한 가정과 레토릭(수사법)이 같다. 그러나 부시 초기 대북정책의 결과는 무엇인가? 북한의 핵 능력 강화다. 이명박 정부는 그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실패한 외교>를 공동 번역한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25일 이 책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부시 행정부 초기를 조명한 이 책을 통해 당시 미국의 대북정책이 왜 실패했는지를 깨닫고 최대한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잘못된 가정과 레토릭이란 무엇인가? 시간이 흐르면 북한은 머리를 숙이고 나올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악행(惡行)에는 보상 없다', '시간은 우리편이다', '대화에 연연하지 않겠다' 등과 같은 레토릭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프레시안

그는 "이명박 정부가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가정들은 시간을 잃어버리는 길"이라며 "잃어버린 기회를 만화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책은 김영삼도 대통령도 실패했고 부시 대통령도 걸어갔다가 포기했던 길을 왜 이제 와서 한국 정부가 가려고 하느냐고 따져 묻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의 <김정일 최후의 도박> 등 2차 북핵 위기를 다룬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있다. 김 교수는 <실패한 외교>가 기존의 책들과 갖는 차별성으로 "관찰자가 아닌 행위자의 기록"을 꼽았다.

그는 "관찰자의 책에는 틀린 것, 과장된 것, 안 쓴 것도 있지만 프리처드는 인사이더(내부자)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확하다"라며 "한반도에 대한 국방부, 국무부 혹은 정무직 공직자들의 각각 다른 시각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써 놓은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원서는 북한이 발표한 각종 성명이나 논평을 영어로 옮겼기 때문에 실제 뉘앙스가 크게 변질됐다"라며 "한국판은 영문으로 된 걸 재번역하지 않고 북한의 원문을 찾아 실었기 때문에 원서보다 낫다"고 덧붙였다. <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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