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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기는 처벌할 수 없는가?

[기고]기업-국가 시대, 삼성 비자금 사건은?

지난 세기말 한동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제가 우리 사회에 논쟁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박정희의 5·16 혁명과 전두환의 12·12 쿠데타,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시민들의 항쟁이 특전사의 총·칼에 짓밟힌 기억이 선명했지만, 그들이 장악한 무소불위의 권력은 '쿠데타'를 '혁명'으로, '학살자들'을 '공신'으로, '저항자들'을 '빨갱이'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5·18 당시 광주 도청 집압후 특전사들이 불렀던 '안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가처럼, 힘(권력)이 당연한 처벌 대상인 쿠데타마저 처벌할 수 없게 만드는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기본적인 가치마저 전도시킬 수 있는 '힘의 시대'에.

그리고 다시 세월은 흘러 이제 우리는 민족-국가(nation-state) 시대를 지나 본격적인 기업-국가(Wirtschaftsstaat) 시대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 정부의 출현이다. 물론 오늘날 기업-국가는 히틀러나 박정희 시대에 등장한 것처럼, 국가 권력이 기업을 통제하던 기업-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록펠러가 지향한 것처럼, 거대 다국적 기업이 국가를 통제하는 기업-국가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민족-국가 시대에 화두가 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제는 어느새 기업-국가 시대를 맞아 '성공한 (기업) 사기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제로 대치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제보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이 우리 사회에 제시한 화두는 다름아닌 "과연 성공할 (기업) 사기는 처벌할 수 없는가?"하는 문제다.

최초 쿠데타의 주역은 '군발이'가 아닌 상인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류의 역사에 '쿠데타'(coup-de-eta)를 끌어들인 주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군부가 아닌 대상인(메이저 기업)이라는 점이다. 쿠데타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도시 국가인 폴리스(polis) 정치 변화에 따른 문학 장르의 발전 과정과 관계가 깊다. 먼저 신화나 전설은 한 사람(mono)이 정보(arche)를 독점하던 군주제(mon-archy)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왕의 권위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의 신화에 의문을 품는 자들은 모두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흔히 '오만'을 뜻하는 영어 '휘브리스'(hubris)는 이처럼 신의 영역에 도전함으로써 신의 질투와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인간의 주제넘은 행동과 더불어, 때로는 날조된 신화(arche)에 접근하려는 자에게 가해지는 국가 권력의 폭력을 의미한다.
▲ 5일 삼성 특검팀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뉴시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군주제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특히 자신들의 비밀(신화) 보존을 위한 잦은 근친혼으로 우생학적 원리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왕자들이 출생하면서 열등한 군주를 보필하기 위한 방편으로 장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인간의 인간됨(Arete: 덕목)은 오늘날과 같은 지적 능력이 아닌 오로지 전투 능력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군주를 보필하기 위해 왕궁에 입성한 장군들은 왕권신수설 신화의 허구성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물론, 그들이 모시는 왕의 육체적 역량이 일반인보다도 현저히 떨어지는 한심한 존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왕을 제거하고 집단 지도체제를 갖추게 되는데, 이것이 다름아닌 과두제(olig-archy)의 시작이다.

과두제에서 비롯된 문학 장르는 서사시나 영웅 이야기다. 서사시나 영웅이야기가 과두제에서 탄생한 것은 당시 전투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트로이>(Troy, 2004)에서 보듯이, 고대 그리스의 전투 방식은 오늘날과 같은 집단 전투가 아닌 아군과 적군을 대표하는 영웅(장군)이 나와 두 사람의 승부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폴리스 주민으로서 전투에 참가한 일반병들은 간단한 전투 복장에 가벼운 방패만 들고서 술을 먹으며 자기편 전사를 응원하는 게 당시 전장의 일반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대결에서 승리한 영웅의 무용담이 전달 과정에서 부풀려지면서 만들어진 것이 다름아닌 서사시나 영웅 이야기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헥토르 vs 아킬레우스 또는 성서에 등장하는 다윗 vs 골리앗의 대결은 이같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같은 전투 방식은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스파르타가 무명의 폴리스에 패하는 뜻밖의 사건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스파르타가 무명의 폴리스에게 일격을 당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기존의 단면 방패를 대신해 복면 방패로 중무장한 채, 병사들이 하나의 진용을 갖춰 싸우는 집단 전술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2006년 개봉돼 이라크에 파병된 미 해병대를 위한 영화라는 비아냥을 받은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정예 용사 300인이 끝없이 몰려오는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복면 방패로 진용을 갖춰 싸우는 장면에서 보여준 집단 전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쟁의 주인공은 이제 장군에서 병사 개개인으로 전환되기에 이르고, 사병들에겐 전투중 음주가 금지되었으며, 전술 개념에 따른 진용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극기·절제 같은 것이 용기를 대신해 중요한 덕목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전투 방식의 변화와 더불어 그리스 사회에 나타난 주요 변화는 이웃 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대상인들이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권력을 획득하기 시작한 코린토스(Corinth: 성서의 고린도전·후서가 여기서 비롯되었다)와 같은 상업 폴리스의 출현이었다. 이들은 귀족들로부터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전투 과정에서 상인 출신의 사병을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서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전쟁 영웅인 사병이 개선 과정에서 귀족들로부터 위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친위대를 구성해 개선 과정에서 거꾸로 그들을 이용해 귀족들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귀족들은 '쿠데타'란 개념 부재로 근위대를 보유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데타가 '국가(state)에 대한 최초의 일격'(coup-de-eta)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쿠데타를 통해 귀족 중심의 과두제를 붕괴시키고 권력을 장악한 대상인들이 선출한 지도자가 다름아닌 참주제(tyranny)의 시작이다. 오늘날 쿠데타나 기타 다른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부정한 독재자를 'tyrannos'라 부르는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연유한다. 이같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쿠데타의 주역인 군부 역시, 거대 다국적 기업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실제로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은 록펠러로 상징되는 메이저 석유회사의 사병이란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의 후세인과 파키스탄의 무샤라프는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특정 목적에 따라 쿠데타로 정권을 획득한 경우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쿠데타의 배후에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참주제에서의 '비극'과 기업-국가 시대의 'SHOW'

그런데 참주제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쿠데타로 인해 국가의 권위가 붕괴되면서 개나 소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그에 따라 평상시에는 세금을 내다가 폴리스가 위기에 처할 때면 직접 전투에 참여해 도시 국가를 수호하던 시민들은 점차 정치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와 더불어 그동안 폴리스를 지탱해주던 공동체성은 붕괴 직전에 이르게 된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위정자(대상인)들이 폴리스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마련한 것이 다름아닌 비극 상연이다. 그런 까닭에 극장에 관람료를 지불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일상화된 오늘날과 달리, 당시 폴리스에서는 거꾸로 극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국가에서 여행 경비를 지불할 정도로 공연 관람을 적극 장려하였다.

극장에서의 공연은 1년에 두번 개최되는 디오니소스(dionysus) 축제 기간중 상연되었다. 당시 비극은 기존의 용기나 힘을 강조하는 서사시적 영웅이 아닌 예기치 않은 운명에 저항하는 비극적 영웅을 그렸는데,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다름아닌 서정시와 비극이다. 당시 비극은 잦은 쿠데타로 상실된 폴리스의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국가 차원에서 장려된 까닭에 대규모 공연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배우들은 멀리 있는 관객들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배역'에 어울리는 커다란 '가면'(persona)를 쓰고서 공연을 했는데, 이 페르소나(가면)에서 정체성(배역)을 가진 개인 혹은 사람을 의미하는 '퍼슨'(person)이라는 말이 나왔다. 물론 'per'(통과하다)+'sonare'(소리)의 합성어인 'person'이 '소리를 울리다'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마이크도 없던 시절, 대규모 공연장에서 배우들이 큰 목소리로 공연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배우들이 힘들 때쯤이면, 중간 중간에 코러스(Chorus)를 삽입해 배우들이 힘을 안배할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코러스의 기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현대극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처럼 매우 중요했다. 그리스 비극은 BC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러 폴리스가 합종연횡하면서 국민적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플라톤도 젊은 시절, 유명한 극작가였다). 그에 따라 폴리스마다 앞다투어 국가 행사로서 비극을 적극 장려하면서 비극은 범국민적 행사로 인식되었다.

고대 그리스 참주제 시대 위정자들의 비극 장려 패턴은 20세기까지 여전히 반복되어 왔다. 남미의 독재자나 필리핀의 마르코스, 전두환처럼 20세기 유명 독재자들이 유독 '3S(Sex Sports Screen) 정책'으로 상징되는 우민화 정책을 펼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국민-국가 시대를 지나 본격적인 기업-국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민화 정책의 표상이던 섹스·스포츠·스크린은 어느새 '웰빙 시대'의 화두가 되었고, 그것이 개인이 삶을 누리는 레벨의 척도가 되어 버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다름아닌 거대 다국적 기업이 조장하는 TV 광고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화상 통화가 가능한 제3세대 이동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SHOW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3S는 이제 개인 경쟁력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처럼 독재자들이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하던 '3S 시대'를 지나, 어느새 '3S'가 개인의 삶의 척도이자 개인 경쟁력의 기준이 되는 기업-국가 시대를 맞아 과연 우리는 거대 다국적 기업의 '성공한 사기'가 처벌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 본성에 내재된 가치에 반하는 '힘의 논리'에 따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들었던 것처럼, 다시 한번 동일한 '힘의 논리'에 의해 "성공한 (기업) 사기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지켜보게 될 것인가? 만일 "성공한 (기업) 사기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지켜보게 된다면,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제네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최초로 쿠데타를 끌어들인 거대 다국적 기업의 자본이 매크로 정치 권력과 마이크로 문화(방송·언론) 권력을 장악하는 기업-국가 체제로 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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