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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마침내 독립선언… 발칸반도 뇌관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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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마침내 독립선언… 발칸반도 뇌관 재점화

세르비아ㆍ러시아 "코소보 독립은 결코 인정 못해"

세르비아 내 자치주 코소보가 마침내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에서 향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관련 기사:新냉전 부른 '코소보 위기')

코소보 의회는 17일 오후 3시(현지시간. 우리 시간으로 오후 11시) 특별회의를 소집해 만장일치로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이로써 요시프 티토가 건설했던 사회주의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티토 사후 30년만에 7개 국가로 완전히 쪼개지게 됐다.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옛 유고연방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1991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1992년), 몬테네그로(2006년) 등이 잇따라 떨어져 나가며 해체된 이후, 코소보가 서방 국가들의 지원으로 독립함에 따라 유고 연방은 6개 소속 공화국의 분열에 더해 이제 자치주까지 분리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코소보가 독립함에 따라 발칸 반도 내에서 영토와 위상에 큰 타격을 받게 된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은 불법적인 일방적 선언이어서 무효라고 반발하고 있다.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코소보 독립선언을 자축하고 있다.ⓒ로이터=뉴시스

세르비아와 코소보, 무력세력 충돌 우려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즉각 성명을 내고 코소보 독립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세르비아 정교회 측은 "코소보는 항상 세르비아의 일부였다"며 코소보의 독립선언은 "일시적인 점유"에 불과하다고 강력 반발했다.

이날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도심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코소보 독립 선언을 지지하는 서방 측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코소보 독립 선언에 대한 보복 조치 가운데 군사 행동은 배제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무장세력들간의 충돌 등 사태 악화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소보 독립 선언이 나온 직후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도시인 미트로비차에 있는 유엔과 유럽연합(EU) 빌딩에도 수류탄이 날아들기도 했다. 이에 따라 1만6000여 명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은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코소보 독립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측의 지지 하에 코소보의 독립 선언이 이뤄졌지만 세르비아의 동맹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코소보 독립은 유엔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17일 러시아의 요청으로 오후 3시(현지시간. 우리 시간으로 18일 오전 5시) 뉴욕 유엔본부에서 15개 이사국이 참여하는 긴급 비공개 회의를 열어 코소보 독립 선언과 관련된 문제를 집중 협의했지만, 뚜렷한 대책이 나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EU 27개 회원국 중 소수민족 문제를 안고 있는 스페인, 그리스, 키프로스와 코소보 난민의 유입을 우려하는 인접국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 6개국은 코소보의 안정을 위해 EU의 사법·경찰 요원 파견에 동의하면서도 코소보에 대한 국가 승인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소보 내에 있는 세르비아계 주민 약 12만명의 반발도 문제다. 세르비아계 1만5000여 명이 거주하는 코소보 내 도시 미트로비차는 EU의 사법·경찰 요원 파견에 대해 수용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서방 측이 코소보 독립 인정하면, 우리도 맞대응"

서방 세력의 확대를 우려해 코소보 독립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러시아는 앞서 지난 15일 외부무 성명에서 "서방에 의해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이 인정된다면 그루지야 내 두 자치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는 그루지야 내에 있는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르비아 국민들도 코소보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성지로 여기고 있어 그만큼 코소보 독립 선언 사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코소보는 14세기 무렵 생긴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으며 1389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으로 10만 명이 넘는 세르비아인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패배한 세르비아인들은 북쪽으로 쫓겨났고, 이슬람교로 개종한 알바니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이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세르비아는 코소보가 현재 세르비아에 적대적인 알바니아 공화국에 편입되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코소보는 200여 만명의 주민 중 90%가 알바니아계이고 세르비아계 주민은 10%에 불과하다.

지난 1998년 코소보 사태도 코소보 독립을 주장하는 알바니아계 게릴라 조직들이 90년대 중반부터 세르비아인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자 당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98~99년 알바니아계 주민 1만 명 이상을 학살하고 80여만 명을 추방하는 '인종 청소'를 했다.

나토와 유엔이 공습 끝에 비극을 중단시켰지만 '세르비아 내 유엔관리 자치주'라는 어정쩡한 코소보 지위는 분쟁의 불씨가 돼 왔다.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소보는 1999년 내전이 끝난 뒤에도 유엔과 나토군이 이 지역의 경찰, 사법, 공공서비스를 관장해 아직 완전한 독립국가의 위상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또한 실업률이 무려 45%에 이르고 인구의 37%가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갈 만큼 경제사정까지 열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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