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수하르토 전담 의료진 중 한명인 크리스티안 요하네스는 이날 오후 1시 10분(현지 시간)에 수도 자카르타의 페르타미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숨졌다"고 밝혔다.
심장, 신장, 폐 기능 이상으로 인한 빈혈과 혈압저하 증상으로 지난 4일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 온 수하르토는 전날 밤부터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가족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호흡보조기와 투석기 등에 의지해온 그가 지난 11일 의식을 잃었다가 수 일 만에 되찾는 등 병세의 악화와 호전을 거듭하자 임종을 준비해 왔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수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등 지병으로 병원과 자택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수하르토는 누구인가?
수하르토는 독재자라는 비판 속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과 안정을 이끈 군사·정치 지도자로 평가받는 등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네덜란드 통치기였던 1921년 6월 8일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의 족자카르타에서 태어난 수하르토는 고교 졸업 후 네덜란드 식민지군에 입대, 부사관으로 출발했다.
그 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자 일본군이 조직한 방위군에 재입대한 수하르토는 처음엔 다른 식민지인들처럼 일본군을 환영하다 1945년부터 항일투쟁으로 전향했다.
인도네시아 군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후 신생 인도네시아공화국에서 계속 군인으로 복무하던 그는 1965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압한 후 1967년 수카르노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취임 후 하야할 때까지 7선 대통령이었다.
강력한 반공주의 노선을 견지, 서방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수하르토는 1975년 동티모르를 침공해 복속시키면서 제럴드 포드 미 행정부로부터 묵인을 받기도 했다. 동티모르는 수하르토가 하야한 후에야 독립했다.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
수하르토는 재임 때 인도네시아를 공업국가로 이끌었으나 자녀들과 친인척으로 막강한 경제권력을 구축하는 등 오랜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도 컸다.
인도네시아는 1997년 외환위기가 촉발되기 전까지 석유와 가스산업의 수익을 이용 연평균 7%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덕분에 그는 '개발의 아버지'로 국민의 추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7월 루피아화 폭락과 그에 따른 물가폭등으로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폭동과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게 되고 재야세력과 학생들의 시위로 결국 1998년 5월에 하야, 자카르타 자택에서 은둔생활을 해왔다. 당시 소요 사태에서는 1200여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부패감시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04년 수하르토를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규정하고 그가 재임 때 국고에서 빼돌린 금액이 무려 150억~3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의 일가가 착복한 돈이 무려 45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도네시아 검찰은 각종 부패 혐의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형사처벌할 계획이었지만 병세 악화를 이유로 2006년 5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결국 수하르토가 대통령 재직시 횡령한 자선단체 기금과 손실금 등 모두 15억4000만 달러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선에서 그에 대한 '단죄'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수하르토가 죽더라도 그의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지난 7일 밝힌 바 있다.
'박정희 향수' 닮은 '수하르토 향수'
한편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수하르토 일가가 150억 달러를 빼돌렸다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1999년 기사에 대해 수하르토 측이 제기한 소송에서 기사의 근거가 없다며 <타임> 측에 1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수하르토는 지난 1998년 인터뷰에서 "해외로 빼돌린 돈은 한 푼도 없고 외국 은행에는 계좌도 없으며 해외 기업에 투자한 돈도 없다"고 말했다.
수하르토 지지자들은 그가 비교적 깨끗한 정치인이었다고 옹호하고 있으나 그의 친척들이 저지른 부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수하르토는 하야 후에 법의 처벌을 받거나 외국으로 달아나지도 않은 채 평온한 말년을 보냈는데, 이는 투옥과 망명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다른 국가의 독재자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이다.
수하르토는 하야 후에도 그의 각료들 중 상당수가 새 정부에 잔류하면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계속 미쳐왔다.
지난 2006년 5월 여론조사기관 '서베이 인도네시아'가 수하르토 퇴진 8년을 맞아 실시한 조사 결과 인도네시아 국민 상당수가 수하르토의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에 대한 악명에도 불구하고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인도네시아인들은 수하르토 하야 후 종족 분쟁이 심해지고 경제가 몰락했으며 정부의 힘이 약화됐다면서 그와 같은 강한 리더십이 다시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다시 민주주의를 시작하고 경제 회복기에 들어서는 한편 수하르토 치세에서 벌어진 부정부패와 인권 유린을 용서할 수 없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어서 수하르토에 대한 향수는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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