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누가 요르단을 민주화할 것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누가 요르단을 민주화할 것인가?

[중동 르포]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민주화 시금석

<프레시안> 기획위원이자 한국외대 연구교수인 홍미정 박사가 중동 지역을 여행하며 르포 기사를 보내왔다. 팔레스타인 전문가인 홍 교수는 요르단에 이어 현재 팔레스타인에 체류중이다.<편집자>

요르단 방문 6일째인 지난 3일 아침 요르단 하늘은 한국의 가을을 연상시키듯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러나 암만의 거리와 음식점을 포함한 건물 내부 곳곳에 붙어 있는 왕가의 사진들은 요르단의 민주화에 먹구름을 몰고 오는 것 같았다. 1999년에 사망한 후세인 전 국왕의 사진과 현 왕인 압둘라 2세의 사진이 거리, 음식점, 호텔 등 곳곳에 걸려있다.

20세기 초, 영국과 협력해 아랍민족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셰이크 후세인, 요르단 왕국을 창설한 압둘라 1세, 정신병자로 몰려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해외 망명처를 떠돌았던 탈랄 국왕, 40년 이상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고(故) 후세인 국왕, 후세인 국왕과 영국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현 왕인 압둘라 2세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죽은 자의 후광을 힘입어 현재의 권위적인 왕정 체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 셰이크 후세인 전 국왕(왼쪽)과 압둘라 2세 현 국왕의 사진 ⓒ홍미정

요르단에 체류하는 동안 계속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 기사 중 2/3 정도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요르단에서 태어났지만, 자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택시기사에게 "너는 요르단 시민권을 갖고 있으니 요르단인인데, 왜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기사는 "요르단 정부가 우리를 요르단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시민권 소유 여부가 아니면, 어떻게 요르단인과 팔레스타인인을 구분하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그는 "시민권 번호로 구분한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기회가 없다. 그래서 나도 8년째 택시 운전만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호텔에서 팔레스타인-요르단인이고 조그만 개인 여행사에 다닌다고 밝힌 무함마드를 만났다. 그의 곁에는 다른 요르단인 친구들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요르단에서 정치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택시기사와는 달리 "아니다.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요르단인들은 요르단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림도 없다는 태도로 필자는 "지난 달 의회 선거에서도 선거구는 팔레스타인-요르단인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요르단강) 동안 출신의 요르단인들에게만 유리하게 획정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잠시 후에 필자는 친구들이 떠나고 혼자가 된 무함마드를 다시 만났다. "너는 유럽인처럼 생겼다. 아마도 네 조상은 그리스인이었나 보다"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신이 났는지 "우리 할아버지는 눈이 파랗고, 머리는 금발이었다. 할아버지의 자손들 중 일부는 금발이고 파란 눈을 갖고 있다. 나도 어렸을 때는 금발이었는데 지금은 약간 색깔이 변했다"고 대답했다.

이 때다 싶어 "팔레스타인-요르단인들은 보안 검증을 통과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군에도 입대할 수 없다"고 떠봤다. 그러자 그는 "조금 전에는 다른 친구들이 있어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보안 요원들에게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 당신 말이 다 맞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고, 요르단 왕정에 충성하는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요르단군에 입대할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에게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신은 말이 너무 많다. 난민들에게 말을 걸지 마라! 만약 네가 난민들에게 말을 걸거나 가까이 가면 나는 즉시 그 자리를 뜨겠다"고 경고했다.

그가 운전하는 일제 중고차를 타고 자발 알 후세인 난민 캠프로 향했다. 난민 캠프에는 초라한 건물들이 밀집해 있었고, 군데군데 작은 빌딩들이 있었다. 건물들을 가리키며 "이 난민촌에도 부자들이 있냐?"라고 묻자, 그는 "저 작은 빌딩에는 60-70명 이상의 사람들이 비좁은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필자를 믿지 못했는지 자동차를 세우지 않고 그대로 난민촌을 지나쳐 버렸다.
▲ 요르단 대학 앞에서 필자 ⓒ홍미정

이곳은 3만 명 정도의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일종의 작은 도시다. 암만에는 크고 작은 난민촌이 6개가 있는데 이 중 3개만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에 등록되어 있다. 또한 암만 근처 자르까 행정 구역에 속한 바까 난민촌에는 9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요르단에는 10개 난민촌에 거주하는 약 33만 명을 포함하여 약 190만 명 정도가 UNRWA에 등록되어 있으며, 600만 명에 이르는 요르단 시민권자들 중 약 70퍼센트가 팔레스타인 출신들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여행 동안에 만난 몇몇 팔레스타인 출신 시인과 교수들은 요르단의 답답한 정치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요르단 정치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소수의 팔레스타인 출신들은 요르단 왕정에 충성을 바치고 있으며, 이들은 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

요르단의 민주화는 왕정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정치적 평등을 현실적으로 쟁취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그 시점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요르단 왕정이 혁명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요르단인들과 동등한 정치적인 권리와 경제적인 발전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도 부여해야할 것이다. 현재 팔레스타인-요르단인들은 시민권 박탈과 추방 위협에 직면해서, 가혹한 정치적 억압을 받고 있다.

(필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터뷰한 사진을 첨부할 수 없고, 실명을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