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명박 시대'를 맞으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명박 시대'를 맞으며

[발행인의 편지 ③] 이제 다시 시작이다...용기와 함께 지혜를

치열했으나 공허했던 제17대 대통령선거가 마침내 끝나고, 예상대로 대기업 경영자 출신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1987년 이후 20년간 계속됐던 진보개혁의 도도한 흐름이 보수세력에게 그 자리를 내주는 역사의 한 고비를 맞게 된 셈입니다.
  
  흔히들 선거는 국민통합의 계기라고 합니다만, 이번 대선이 그리 될 가능성은 애저녁에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이미 대선 전에 BBK 의혹과 관련한 이명박 특검법이 마련돼 있는 데다 이명박 당선자의 도덕적 흠결에 대한 진보개혁진영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의 도래를 눈앞에 둔 지금, 이른바 민주평화진보개혁 세력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당장 주변을 돌아보면 '이명박 당선'에 대한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가 무성합니다. '이번 선거는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상식 대 비상식의 대결'이라는 주장도 있었고, '국민이 노망이 들었나 보다'는 한탄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반(反)이명박 대중운동을 벌이겠다는 다짐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도덕적 흠결과 의혹투성이의 후보가 여유 있게 당선되는 데 대한 분노, 지금 이 순간 진보개혁세력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터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내려진 '국민적 선택'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9월, <프레시안> 창간 5주년을 기념한 신영복 선생의 강연에서 선생이 들려준 예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1300여명의 사람들에게 황소 한 마리의 무게를 짐작케 했더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추정치는 모두 턱없이 빗나갔지만 그들 모두의 평균치는 실제 황소 무게에 무섭도록 근접했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는 알기 어려운, '집단적 지혜'만이 가질 수 있는 현실에 대한 통찰력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어찌 됐건 이미 내려진 '국민의 심판'에 대해 그것이 잘못됐다고 한탄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더구나 정치가든, 활동가든, 지식인이든 국민을 이끌겠다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의 태도로서는 부적격입니다. '왜 국민들은 그러한 선택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겸허한 자기반성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개혁진영은 상대 후보의 도덕성만을 물고 늘어지는 네가티브전략으로 일관했습니다. 국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데 '도덕성만이 중요하다'고 딴소리를 한 셈입니다. 유권자들은 '밥을 달라'고 외치는데 '인간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다'며 공허한 설교를 한 셈입니다. 거짓된 희망일망정 밥을 주겠다는 후보에 표를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국민들은 '공허한 도덕성' 대신 '더럽고 치사하지만 생존'을 택한 것입니다. 진보개혁진영은 국민들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조차 제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진보개혁진영의 패퇴를 가져온 크고 작은 원인과 이유들에 대해 겸허하고 진지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때입니다. 자기반성을 통한 자기쇄신이 없다면 자칫 진보개혁진영은 우리 사회의 영원한 소수세력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선이 '회고적 투표', 즉 새로운 정부의 선택이기보다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은 이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실제 치적보다는 그들이 보인 행태에 대한 분노가 더 큰 요인이라는 데에도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노무현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대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입증해 보이라'는 식의 오만불손한 태도 말입니다. 나아가 자신들만이 세상의 진리와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듯한 아집과 독선, '선한 의도는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는다'는 유치한 믿음들이 국민대중의 짜증과 분노를 자아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행태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양극화' 문제를 비롯해 국민들의 절실한 필요를 솜씨 있게 해결해냈다면 오늘날과 같은 국민적 심판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성장지상주의, 개발지상주의가 초래한 문제점을 바로 그 성장개발지상주의로 해결하려 했던 무지와 만용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방균형발전이란 이름 아래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 중소도시 등 전국의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킴으로써 땅 없고 집 없는 서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키워온 것 아닙니까.
  
  김우창 선생의 표현을 빌면 '탐욕의 균등한 분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는 어쩌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해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성장과 개발만을 추구하다 보면 양극화는 오히려 확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4년 여간 노무현 정부의 행적을 보면서 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요약하자면 '과연 저들이 우리가 처한 현실의 실상과 문제의 근원을 제대로,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 대한 태도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 노무현은 누구보다도 미국에 대해 당당한 정치인임을 자부했습니다.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는 말도 했고 '반미면 어떠냐'는 말도 했습니다. 때문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 조야에서는 '이제부터 해도(海圖)에도 없는 낯선 항로를 항해해야 한다'며 극도의 불안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첫 미국방문에서 '미국이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라며 낯 뜨거운 아양을 떨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며 아프간 파병, 이라크 파병 등 미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한미FTA를 밀어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노무현의 '반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사, 허장성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반미적 태도'를 버렸다는 것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친미냐, 반미냐'라는 대립구도는 한국의 실정에서 적절치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해방에서 분단, 6.25전쟁과 경제건설에 이르기까지 안보ㆍ경제ㆍ정치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미국과 긴밀하게 얽혀 살아온 대한민국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군사대국 미국에 맞선다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문에 아프간파병이나 이라크파병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이해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한 국익이 미국의 부당한 요구나 필요에 의해 손상 당하는 사태만은 막아내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중일 세 나라의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논의되고, 10-20년 내에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안보에 이어 경제까지도 미국의 영향권 안에 꽁꽁 묶어둘 한미FTA를 강행하면서 그것을 구국의 결단인 양 내세우는 노무현 정부의 현실인식에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한미FTA가 가져올 국가주권의 침해나 서민들의 고통도 큰 문제입니다만, 노쇠한 제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프간이든 이라크든 무력행사를 서슴지 않는 미국이 안보에 이어 경제까지도 미국의 볼모가 된 한국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해올지 그저 두려울 따름입니다. 반미의 레토릭에서 미국에의 전면적인 투항이라는 극적인 변모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았다면 그토록 쉽사리 '반미'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장기적 국익을 생각했다면 스스로 한국의 경제를 미국 영향권 안에 묶어두는 일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일찍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시장에 대한 정치의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시장 자체로는 결코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없으며 정치에 의한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경제학의 상식도 그는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탄생했습니다. 재벌개혁을 하기보다는 삼성과 손을 잡은 그의 경제정책이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룰 수 없음은 어찌 보면 처음부터 결론이 뻔했는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정치세력들은 개혁의 대상인 현실의 구체적인 모습도, 제대로 된 처방도 갖지 못한 채 현실을 개혁하겠다는 막연한 의욕과 열정만으로 덤벼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모든 책임을 노무현 정부에게만 물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올해 초던가요, 노무현 대통령이 방송연설을 통해 경제정책의 부진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한 지 얼마 안 돼 '진보진영에서 좋은 해법이 있으면 제발 제시해 달라'고 말했을 때, 저는 속으로 뜨끔 했습니다. '이유 있는 항변'으로 들렸습니다. 사실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에의 투항'으로 비판하긴 했습니다만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신자유주의 반대' 또는 '신자유주의 극복'을 말하지만 이는 마치 일본군에 대항하는 동학농민군이 외쳤던 '궁궁을을(弓弓乙乙)'과 같은 주문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서민들의 고통을 달래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비록 검증되지 않았고, 기대만큼의 호응도 얻지 못했지만 문국현 후보가 내놓은 대안에 대해 진보개혁진영 일부가 주목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도 대다수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을 향상시킬 방법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진보개혁진영 전체도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인식도, 이를 극복할 구체적 대안도 아직 갖추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 <프레시안>의 판단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세밀한 지형도와 미래에 이뤄낼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이론적 선취(先取) 없이 달려드는 모든 개혁 시도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는 2007년 12월 19일 밤 11시, 5년 전 그날 밤을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벅찬 감격을 되새겨 봅니다. 그때는 노무현 당선자가 '정조 이래 200년 만에 나타난 개혁 군주'라는 한 친구의 감격 어린 독백도 전혀 허풍으로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봄 <녹색평론>에 실린 권두언이 새삼 떠오릅니다. 당시 김종철 선생의 글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열광하는 시중의 분위기가 아주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성장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의 당선에 그토록 환호할 이유도 없다는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무현의 당선을 이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그의 글을 떠올리면서 당시 우리가 노무현의 당선에 과잉 열광한 것이었다면 지금 이명박의 당선에 과잉 낙담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제로 좌파 진영에서는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똑같은 신자유주의 정권인데 뭐 그리 애달파 하나'라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이 보여준 지리멸렬함(정책이나 이론은 물론이고 정치공학적 측면에서도)이나 이명박, 이회창 두 보수 후보가 전체 투표의 3분의 2 가까운 득표를 한 정치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진보개혁진영은 영원한 소수세력으로 남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을 부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이런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심층적 인식, 이뤄야 할 미래에 대한 체계적 계획, 그리고 이를 대중에게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설득력, 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프레시안>은 비록 작은 매체이지만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를 위한 지적 광장의 역할을 해내고자 합니다. 과잉 열광도 과잉 낙담도 떨쳐버리고 우리 모두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뚜벅뚜벅 나아갑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