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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사회의 등장과 'plabor', 또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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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사회의 등장과 'plabor', 또는 '작업'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72> 트렌드 분석과 미래 담론 ①

plabor라는 개념을 만들다
  
  몇 년 전 텔레비전의 한 시트콤에서 유행시킨 말 중 "작업"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당시 시트콤의 내용에 충실하게 개념을 정의해 본다면 마음에 드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하여 하는 노력과 행위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대단한 미남 미녀가 아닌 이상, 혹은 타고난 선수이거나, 뛰어난 어떤 매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작업"은 상당히 어렵고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쉽게 작업이 성공하기도 힘들 뿐더러, 많은 경우 작업을 하려는 용기조차 갖기도 어렵다. 그래서 중매라는 것도 생겨나고, 최근에는 결혼정보회사까지 생겨나서 그 "작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들이 그 힘든 "작업"에 대해서 상당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 나름대로 상당한 재미를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러한 "작업"이라는 개념은 노동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영어에서 적당한 단어를 찾는다 하더라도 "labor"도 아니고 "work"도 아니고 그렇다고 "game"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 같기도 하고, "놀이" 같기도 한, 그리고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는 노력과 행위, 즉 "작업"이라는 현상이 이성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현대 경제사회에서도 매우 핵심적인 새로운 현상, 어쩌면 노동의 새로운 표준(standard)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조업 상품의 대량생산과 소비가 경제의 주요 축으로 작동하던 포디즘과 케인즈주의 시대가 지나간 소위 현대 지식경제의 시대에서 이러한 "작업"은 은연중에 우리의 생활전체를 바꾸어 나가는 중요한 삶의 방식이 되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작업"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읽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하여 필자가 "play"와 "labor"의 합성어인 "plabo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본다. 이 plabor라는 영어 단어에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가 바로 "작업"이 된다.
  
  모니터 사회 (monitor society)의 등장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 주변의 엄청난 변화에 대해서 잘 인지(認知)를 못하고 사는 경향이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필자가 개념화한 "모니터 사회(monitor society)"의 등장이다. 모니터 사회란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대부분을 "모니터"와 함께 보내는 사회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니터란 보다 엄밀한 개념규정이 필요하지만 일단 텔레비전 모니터와 같이 다양한 정보가 전기, 전자적으로 전달되는 시각적(visual) 정보전달 매체를 의미한다. 텔레비전 스크린, 컴퓨터 스크린, 휴대폰의 액정화면과 DMB, 지하철의 액정 TV, 고층건물의 광고용 스크린, 영화관의 스크린, MP3매체의 화면, PDP, 내비게이터, 그리고 게임기기 등이 대표적인 "모니터"이다.
  
  우리가 평소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관찰을 안 해서 그렇지만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잠을 잘 때까지 생활의 대부분을 모니터와 함께 보낸다. (하루에 몇 시간 얼마나 같이 보내는지는 설문조사를 하면 금방 퍼센티지가 나올 것이지만 아마도 자신을 돌아보면 대부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뒤에 더 자세히 밝히겠지만 이러한 모니터와 함께 상당부분 "작업" 즉 "plabor"를 하면서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예전에는 신문을 읽었지만, 요즘에는 TV나 컴퓨터를 켜거나 아니면 휴대폰을 통해서 전달되어 오는 뉴스를 읽는다. 신문을 읽는 것이 습관이었듯이 TV를 켜거나 컴퓨터를 켜는 것도 습관이 되었고, 휴대폰의 액정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습관이 되었다는 것은 안 하면 이상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만큼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집을 나오면 직장이나 학교를 가기 위해 대부분 지하철, 버스 혹은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자가용을 운전한다. 예전에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자동차에서 음악, 뉴스를 들었지만, (지금도 이러한 습관은 어느 정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이에 못지않게, 지하철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보거나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의 DMB, PMP를 보고, 자동차의 내비게이터를 통하여 지도 및 다양한 영상 및 음성 정보에 접하게 된다. 물론 MP3의 음악을 듣거나 아무 생각 없이 가는 사람도 많지만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이동하는 상황에서도 어떤 종류이건 모니터가 우리 주위에 가깝게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 학교나 직장에 가면 하루 종일 야외 노동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개 컴퓨터와 하루를 보내게 된다. 금융업에 종사하거나 투자를 하는 사람은 계속 증시와 금융시장의 시황을 모니터하고, 컴퓨터를 통해서 거래하고, 증권사에 놓여 있는 TV모니터를 보고, 휴대전화의 정보를 체크하고, 문자를 주고받고 해외 증시의 정보를 검색하며, 고객의 요구를 컴퓨터를 통해서 처리한다. 학교에 있는 학생이나 교육자는 컴퓨터로 숙제하고, 정보검색하고, 논문을 쓰고, 파워포인트를 만들거나 발표하고, 가끔씩 증권거래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다운 받거나 한다. 물론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 병원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사무직에서도, 방송사에서도, 택배회사, 음식점 어디를 가나 컴퓨터, TV 및 여타의 액정 화면과 하루 종일 씨름하고, 대화하며 일을 하게 된다. IT업종이나 게임소프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컴퓨터 모니터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퇴근하여 집에 오게 되면 습관적으로 TV를 켜거나 컴퓨터를 켠다. 지금 저녁이나 밤에 아파트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창문을 열고 건너편 아파트에서 어떠한 풍경이 보이는지 체크해 보기 바란다. 대부분 집집마다 TV가 거의 다 켜져 있고,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TV를 보고 있는 매우 통일된 광경에 접하게 될 것이다. 한잔 하는 사람들도 수시로 휴대폰을 체크하고, 식당에 있는 TV를 보거나, 노래방의 모니터에 접할 것이다. 학생들은 숙제하는 사람, 게임에 중독된 사람, 싸이를 하는 사람, 이메일을 하는 사람, 역시 모니터 속에서 산다.
  
  더 이상의 예를 들고 묘사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어떤 종류이건 모니터와 더불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모니터 속에 갇혀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하루를 잘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소위 "모니터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놀이기구와 노동수단의 결합: plabor의 탄생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모니터 사회의 특징이 바로 놀이의 도구와 일의 도구가 하나로 합쳐져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는 원래 일을 위해서 발명되고 사용되던 도구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컴퓨터가 소위 멀티미디어로 진화하면서 컴퓨터 안에서 일도 하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도박도 하고, 소설도 읽고, 정보도 검색하고, 이메일, 채팅도 하고, 소개 및 알선도 하고 있다.
  
  전화나 팩스도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는 업무상 연락을 위하여 발명되었지만 모니터를 가진 휴대전화로 진화하면서 단지 업무를 위한 연락뿐만이 아니라 수다, 정보 검색, 소설 읽기, 게임, 음악청취, 영화감상, TV시청 및 화상통화까지 업무와 놀이가 융합되기 시작하였다.
  
  게임기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게임이라는 놀이용으로 게임기가 발명되었지만 최근에는 게임보다는 조금 무거운 학습의 요소가 게임기로 들어오고 있다. 학습은 완전히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을 위해서 필요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것이므로 놀이의 영역과 일의 영역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기를 통해서 어학을 배우거나, 역사를 공부하거나, 두뇌발달을 위한 문제를 풀거나 하는 것 등이 최근 게임기의 새로운 추세이다. 모니터를 통하여 거래를 하는 금융업 종사자도 금융거래와 게임과 도박 간의 경계를 알기가 쉽지 않다.
  
  TV의 경우에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TV가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의 도구로 쓰이지는 않는다, 경제관련 케이블 TV가 일에 도움이 되지만 일의 수단으로 일반 사람들이 크게 의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문화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예술 등이 예전의 제조업 상품과 비견되게 대량생산되는 사회가 되면서 TV의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일의 성격이 놀이와 일이 융합되는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요즘 인기 있는 TV 컨텐츠를 보면 출연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노는 건지 심각하게 뭘 만들어내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노동자가 노동과 놀이를 같이 하고 있다. 프로게이머도 그렇고, 프로 운동선수도 그렇고, 가수, 연기자, 개그맨, 마술사 등 연예인의 노동은 바로 놀이와 일이 융합된 형태의 노동이다.
  
  이러한 모니터 사회의 노동은 일이 힘들고 재미가 없더라도 예전과 같이 인내하고, 참아내고, 고통을 겪으면서 고생 끝에 일을 성취하는 소위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것이 정상이기 보다는 예외가 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재미가 없으면 일에 집중을 하거나 지속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일이라는 것이 놀이와 노동이 합쳐지는 "작업", 즉 plabor가 되고 있다.
  
  이러한 plabor의 현상은 단순히 경제활동과 관련된 곳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현장에서도, 정치의 현장에서도, 문화의 현장에서도, 그리고 병역의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공부가 인내하고 머리를 싸매는 것도 있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재미있는 공부여야 학생이 몰리고, 예전과 같이 어려운 박사과정을 하겠다는 사람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논문을 써도 무겁고, 딱딱하고 노동의 냄새가 나는 글보다는 논리와 언어의 선택이 유희를 섞어내는 "작업"의 냄새가 나야 독자가 늘어난다. 소설도 인터넷 소설이나 환타지 소설같이 유희가 섞여 있는 "작업"의 작품이어야 독자가 생기고, 신문의 기사도 점점 자극적이 되어 소위 메이저 신문과 과거 선데이 서울과 같은 주간지의 차이가 점점 엷어지고 있다. TV의 시사프로도 점점 연예프로같이 변화하고 있고, 진행을 맡는 앵커나 아나운서도 이제는 연예인으로 분류되는 시대이다. 정치도 재미있어야 하고, 정치인이 시민과 같이 춤을 출 줄도 알고, 돌발영상에서 희화되며, 쇼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무겁고 딱딱하고, 권위적이고 관료적이며, 무조건 복종하고 참아내고, 고통을 이겨내는 그러한 직장과 조직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예전에는 재미가 아니고 보람이었지만),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노는 그러한 직장과 조직이 새로운 트렌드로 나타나고 있다. 즉 직장과 사회와 학교와 가정에서 과거와 같이 고통과 복종과 권위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추세인 plabor와 서로 조화하기 어렵다. 물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plabor가 가능하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도 대부분 삶의 형태로 plabor를 지향한다. 사는 것이 신이 나야 하는 것이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이미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다른 모든 형태의 조직이 plabor의 조직을 지향하는 트렌드가 형성되었고, 또 앞으로도 그 추세가 강화될 것이라고 필자는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그 반대로 가는 형태의 조직이나 문화, 운영방식 등은 사회의 트렌드에 역행하게 될 것이며 그 조직의 생명이 단축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해 내는 인내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인내는 그 이후의 plabor를 위한 인내이지 과거의 엄격한 규율과 권위와 엄숙의 노동을 위한 인내가 아닐 것이다. 이 글이 과연 정치문화, 노동문화, 학교문화, 회사문화, 개개인의 생활문화에 어떠한 함의를 주게 될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같이 "작업"(plabor)했으면 한다.
  
  Q1: Plabor의 트렌드는 정말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Q2: Plabor의 트렌드는 바람직한 트렌드인가? 권장해야 할 트렌드인가?
  Q3: 삼성의 기업문화가 Plabor를 못 따라가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Q4: Plabor를 지향하는 지지층을 가진 참여정부 및 진보정치에 대한 실망이 국민들로 하여금 Plabor를 통제하는 정치를 선택하게 할까?
  Q5: 공무원이나 군대조직도 plabor의 트렌드를 쫒아야 하나?
  Q6: 깊이있는 사고와 분석을 요하는 학문의 영역도 글쓰기가 Plabor의 형식을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각주와 참고문헌과 현학적인 전문용어가 주가 되는 딱딱한 학술 논문을 고수하여야 하나?
  Q7: 행복한 가정이란 부부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plabor의 관계인 가정인가?
  Q8: 내가 모니터를 지배하나 아니면 모니터가 나를 지배하나?
  
  plabor라는 개념을 가지고 생각하고 확인해 볼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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