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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벌이는 코미디에 '잘한다' 맞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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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벌이는 코미디에 '잘한다' 맞장구

[파병 4년, 이제는 철군이다] ⑦ 한국의 레바논 파병

2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미국이 감독이나 주연을 맡은 코미디가 여러 편 만들어졌습니다.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등 만들어진 곳도 참 다양합니다.

정의 아닌 것을 정의라고 하고, 평화 아닌 것을 평화라고 우기니 코미디라고 할 밖에요. 죽이면서 살린다고 하고, 파괴하면서 건설한다고 하니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50여 년 동안 만들어진 코미디 가운데 한편이 지금 레바논에서 절찬리(?)에 공연중입니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도 단역을 하나 맡았습니다.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2006년 7월 12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기 시작합니다. 1978년, 1982년, 1993년, 1996년 등 계속된 침공과 폭격의 역사가 다시 반복된 거죠.
▲ 레바논에서 탱크를 몰고 순찰중인 프랑스군 ⓒ 유엔임시군(UNIFIL) 홈페이지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1982년의 침공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목표로 했다면 이번에는 헤즈볼라를 목표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8월 14일 휴전이 되기까지 폭탄과 화학무기까지 동원해 약 1200명을 살해하고, 400만 가량의 인구 가운데 약 100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휴전 이후에 유엔은 레바논에 유엔임시군(UNIFIL)을 증파하기 위해 각국에 파병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국 정부가 '넵! 제가 가겠습니다'하고 손을 번쩍 들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또 다시 군대를 해외에 파병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2006년의 침공 과정을 지켜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실제 전투를 했던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다고 하냐구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지도로 보면 지금 미국은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시작으로 해서 그 왼쪽으로 가면 여차하면 공격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이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왼쪽에는 학살극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가 있고, 그 왼쪽에는 미국이 '악의 축'이라고 부르는 시리아가 있습니다.

시리아 왼쪽에는 레바논이 있는데 레바논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해 싸워온 헤즈볼라가 있습니다. 레바논 밑에는 팔레스타인이 있어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연합(EU)가 하마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경제봉쇄와 전쟁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헤즈볼라는 이란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으로써는 헤즈볼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이란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되는 거죠. '고도리'로 비유하자면 '일타쌍피'인 셈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팽창 정책에 대항하고 있는 헤즈볼라를 제압하려는 의도와 함께 과거의 '쪽팔림'을 만회하려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남부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하는 저항에 밀려 2000년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니 이참에 군사적 모험을 감행해 과거의 쪽팔림도 덜고, 미국에게는 자신이 아직도 확실히 쓸모 있음을 인정받으려 했던 거죠.

하지만 결과는 레바논인들의 엄청난 고통과 이스라엘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개전 초기 이스라엘은 승리를 자신했지만 헤즈볼라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 군의 사망자가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지역과 하이파 등지로 날리는 로켓과 미사일은 이스라엘로서도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초기에 세계 각지에서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클 때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 소탕'을 내세우며 전쟁을 지속하더니,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적어지자 유엔을 내세워 휴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영화 '노맨스랜드'의 교훈

제가 좋아하는 영화 가운데 '노맨스랜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면 보스니아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평화유지군이라고 들어간 유엔군이 어떤 일을 했는지가 잘 표현됩니다.
▲ 영화 '노맨스랜드' 표지 ⓒ프레시안

유엔군이 주로 신경 쓰는 것은 텔레비전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춰질까였고, 나머지 시간은 그저 한가롭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유엔이 뭔가 하겠지'하는 것과 실제 상황은 다른 겁니다.

유엔은 2006년 미국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유엔임시군을 증파하였습니다. '증파'라고 하는 것은 1978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유엔임시군이 레바논에 주둔을 하고 있었고, 2006년에는 주둔군의 숫자를 늘리기로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유엔임시군의 역할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01호에 나와 있습니다. 결의안의 핵심 내용은 ①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②레바논 정부군과 유엔군을 레바논 남부지역에 파병한다 ③그리고 레바논 정부군과 유엔군을 뺀 나머지 개인이나 단체는 무장을 해제하라 등입니다. 여기서 나머지 단체는 바로 헤즈볼라를 의미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신의 뜻대로 헤즈볼라를 파괴했다면 이런 결의안도 필요 없었겠지만, 침공에서 실패를 하니깐 이제는 유엔을 내세워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시키겠다는 겁니다. 결의안 1559호를 바탕으로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를 요구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레바논에 군대를 주둔시켰다가 호되게 당하고 쫓겨난 경험이 있는 미국은 직접 군대를 파병하기보다 다정한 친구인 프랑스 등을 내세워 유엔군을 구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욕망의 분출

한국 정부는 결의안 1701호를 이행하고 레바논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동명부대'를 레바논으로 보냈습니다. 동명은 '동쪽의 밝은 빛'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하죠.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한국군이 이행하겠다고 하는 1701호의 핵심적인 내용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입니다. 그런데 미국도, 이스라엘도 하지 못하는 일을 무슨 수로 유엔군이 하겠습니까?

그러니깐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임무를 안고 먼 나라에서 세월을 보내는 거죠. 그냥 가만히 있기는 민망하니깐 대민봉사다 뭐다 해서 얼씨구나 잔치도 벌이고 의료 활동도 하는 거구요.

한국군이 직접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레바논에 있는 것도 괜찮지 않냐구요? 어찌 보면 그리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면서 많은 건물도 짓고 철도도 놓아주었으니 일본의 조선 점령은 좋은 일일까요?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전쟁은 전투를 기본으로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 언론 등이 총동원되는 인간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는 쪽, 특히 침공을 일삼는 쪽에서는 다른 국가로부터 협력과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 동명부대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는 <국방저널> 2007년 7월호 ⓒ국방저널

그래서 한 나라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박수를 보내고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 패권을 향한 욕망은 더 쉽게 분출됩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역할이 있는 거구요.

2001년부터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육전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동맹국의 일부로 군대를 보냄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죽이는 행위를 정치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는 이라크에서 학살극이 벌어지는 동안 그 옆에 서서 '잘한다, 잘한다'하며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레바논 파병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레바논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을 의사는 없습니다. 그 대신 미국은 자신의 패권을 위해 한국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레바논에 있는 한국군 보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레바논에서 고도리를 치든 족구를 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그 먼 곳까지, 그 많은 사람이 갔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별에 인류가 태어나고, 그 오랜 세월 동안 강자들의 패권을 향한 욕망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민주주의가 설 땅을 잃었습니까?

이제 그만 하면 됐습니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전쟁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언제 올지 모르는 또 다른 전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연대의 마음을 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픈 소리를 들었을 때 고개 돌려 바라보고, 없던 마음이라도 쓰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시리아 시인 니자르 깝바니(Nizar Qabbani)의 '나는 테러로 살아갑니다'라는 시의 한 부분을 읽어 드리는 것으로 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나는 테러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압제자와 폭압으로부터 민중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여 레몬과 올리브 나무를 되돌려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새들이 레바논 남쪽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면
그리고 골란의 웃음을 되찾게 한다면

나는 테러로 살아갑니다
나의 모든 시로
나의 모든 말로
나의 모든 힘으로
이 새로운 세계가 학살자의 손에 있는 한



[프레시안-파병반대국민행동 공동기획 '파병 4년 이제는 철군이다' 전편 보기]

1. "노무현, 안보에 귀의하다" -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2. 석유 이권? 이라크 어린이들의 고통을 보라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3. 파병 '통제권'까지 미국에 넘긴 노무현 정부 - 이경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군축팀 부장

4. 파병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후퇴시켰는가 - 이영순 국회의원(민주노동당)

5. '미국 對 중동 민중'의 전쟁, 그리고 한국 -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6. 재건지원? 파병은 '파괴 지원'이다! - 김광일 파병반대국민행동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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