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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내던져진 언론, 누가 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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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내던져진 언론, 누가 구하나?

['프레시앙'이 되며] 언론인 손석희 씨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두 개의 큰 자본이 없었다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영화다. 주인공 톰 행크스는 '페드엑스'의 직원이며 자신의 회사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빠져 조난당한다. 무인도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그가 사람으로 의인화시켜 상대한 배구공은 '윌슨'이다. 아시는 것처럼 '윌슨'은 세계 굴지의 스포츠 용품 회사다.

영화 내내 주인공은 윌슨을 상대하고, 무인도에서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페드엑스의 배달품을 고객에게 전하는 일이다. 거대자본은 영화 제작에 뛰어들 뿐 아니라 아예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나타낸 작품이 있을까? <캐스트 어웨이>는 그 점에서 극단까지 간 영화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관객들은 그렇다 해서 이 두 거대 자본에 반감을 갖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본의 힘 덕분에 이렇게 괜찮고 그럴싸한 영화가 태어났으니 되레 감사한 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자본이라고 해서 꼭 미디어에 부정적 영향만을 끼치는 것인가? 하버마스 할아버지는 이미 옛날에 미디어가 결국 국가와 자본에 의해 침해 받아 공적 영역으로서의 성격이 쇠퇴한다고 했는데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도 아니지 않을까?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그렇다. 그것은 영화다. 그리고 미디어 콘텐츠에 자본이 끼칠 수 있는 순기능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그야말로 몇 안 되는 예일 것이다.

매일 매일의 현상을 다루고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엔 역사가 되는 저널리즘의 영역이 시장논리로만 무장하는 순간 콘텐츠는 왜곡되고, 피해를 입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다. 하버마스도 그랬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왜곡되는 미디어는 결국 대중조작의 도구가 된다고... 그렇다면 이를 막는 것은 건강한 시민사회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이 오랜 고민 끝에 택한 방법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더 안타깝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캐스트 어웨이'는 내던져졌다는 뜻인데, 영화 속에서 무인도에 내던져진 주인공을 돕는 것은 두 개의 거대자본이지만, 시장에 내던져진 저널리즘을 구하는 것은 독자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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