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지상의 어떤 국가도 미국 본토 공격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제3세계의 일개 무장단체가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했으니 미국 국민이 받은 충격이란 더욱 크고 심대했을 것이다.
미국이 뿌린 증오의 씨앗
그러나 돌이켜보면, 중동지역에 뿌리를 둔 반미세력이 비록 계획의 치밀성과 실행의 대담성 등에서 '9.11테러'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와 유사한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줄곧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아랍인들 전체의 원성은 이미 높을 대로 높아 있었다. 또한 미국은 석유 이권의 확보 등을 대중동정책의 근간으로 삼았으며, 전후 중동의 여러 국가들에 수립된 반제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인 세속적 민족주의 정권을 자국 이해 관철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간주, 이들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 주력함으로써 아랍국가들의 자주적 근대화의 길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지지했지만, 이슬람민들이 처한 곤경의 주원인을 서구 기독교 세력의 중동침략으로 보는 반미적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성장을 막을 수 없었다.
'9.11테러'는 1990년대에 미국계 초국적 금융자본 중심으로 행해진 금융적 착취의 증대가 '빈곤의 세계화'를 불러온 것을 배경으로 발생한 사건이기도 했다.
'9.11테러'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세계지배 정책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된 이슬람권 민중의 절망과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한 반미적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대미항전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에게 제3세계 민중에게 반미감정이 확산되도록 만든 자신의 그간의 대외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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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테러전은 현대판 십자군전쟁
그러나 미국은 다른 길을 택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대외정책의 중심으로 격상시키는 가운데 자신의 제국주의적-신자유주의적 세계지배 전략을 이전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세계의 모든 국가들에게 자국의 대테러전 수행을 지원하고 지지하는가를 동맹관계 형성의 최우선적 기준으로 제시하는 가운데 이 동맹을 통해 세계정치를 요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으며, 테러세력을 비호하거나 미국의 대테러전에 비협조적인 국가를 '불량국가'로,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또한 미국은 전쟁을 통한 문제해결을 최우선시 하고 전쟁 수행을 상시화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와 더불어 상대방이 핵을 사용해 공격하지 않는 한 타국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비핵 국가에 대해서는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으며 통상적인 전쟁에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정책을 버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불량국가'들에 대해서는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공세적 전쟁수행 정책으로 자신의 전쟁수행 정책을 변경했다.
미국은 대테러전 수행의 명분으로 2001년 11월 아프간을 침공한 데에 이어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런 전쟁 수행에서 드러난 것은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 단지 대테러전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동 전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 석유 등 천연자원에 대한 이권을 배타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대중동전이란 '성지탈환'을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약탈전쟁으로 변질된 '십자군원정의 현대판'의 성격이 강하다. 테러와의 전쟁은 명분으로 변했고, 석유 이권의 배타적 확보와 같은 경제적 목적의 추구가 전쟁 수행의 실제적 목적이 되었다. 성지탈환의 명분이 약탈을 합리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은 석유자원 확보 등을 전리품으로 챙기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간주했다.
또한 대테러전을 '악의 근절'을 목표로 삼는 '성전'으로 격상시키면 시킬수록, 전쟁 수행 방식은 더욱 야만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양민 학살과 같은 범죄적 폭력행위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일이었다.
패권 강화 정책이 패권을 약화시키는 역설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은 그러나 그 전쟁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테러세력'을 소탕하는 데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는커녕 빈 라덴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고, 그와 연계된 알카에다와 같은 무장단체 등은 세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이는 미국 본토에서 '9.11테러'와 같은 사건이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을 테러로부터 안전하게 만들기는커녕 미국으로 하여금 더욱 테러의 공포에 떨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막강한 무력 행사를 통해 아프간과 이라크를 점령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후의 과정은 그 성공이 오히려 미국을 헤쳐 나오기 어려운 궁지로 내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라크는 물론 아프간에서도 저항세력의 힘이 커져 미국의 점령정책이 파탄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쟁 수행에 대한 미국민 자신들의 지지도 역시 현격하게 줄어들었으며, 미국의 전쟁 수행을 반대하는 세계 각지의 반전평화운동 역시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런 사태 전개는 미군이 이라크 등지에서 불명예스럽게 철수해야 하는 사태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대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실험을 단행할 수 있는 틈을 제공했고, 핵무기 실험 이후에는 미국으로 하여금 외교적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의 해결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 미국으로 하여금 이란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고, 세계정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발언권 증대를 결과하고 있으며, 남미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 등 사회주의 지향적 반미 좌파정권이 들어서고, 이들 정권들이 국제적 반미전선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을 미국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다.
게다가 대이라크전 수행 등은 미국 정부로 하여금 갈수록 늘어나는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도록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적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미국 정부가 언젠가는 국가부도 사태를 선포해야 할 궁지에 내몰릴 가능성도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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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은 오늘날 패권의 강화를 위한 정책이 오히려 패권의 약화를 가져오는 것과 같은 곤경에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이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대외정책이 '테러세력'의 제거, 미국 이권의 확보 등에만 초점을 두고 있을 뿐 '테러세력'의 신장 등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동력이 이슬람권 주민들을 포함한 세계 민중의 미국에 대한 분노의 증대에 있음을, 테러와의 전쟁 수행 등이 이들에게 절망을,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미국에 대한 더 한층의 분노와 저항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이처럼 미국이 중동 민중으로 하여금 석유자원이 '신의 축복'이 아니라 '대재앙'으로 여기게끔 만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한국 정부는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군을 계속 주둔시키는 것 등을 통해 미국의 대 중동 민중 전쟁의 동반자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또 그럼으로써 한국을 계속 이들 중동 민중의 적으로 남아있게 할 것인가?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 역시 파병한 한국군을 지금 당장 유보 없이 철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한국 역시 중동 민중의 눈에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자신에게 재앙을 안겨주는 '적'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파병반대국민행동 공동기획 '파병 4년 이제는 철군이다' 전편 보기] 1. "노무현, 안보에 귀의하다" -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2. 석유 이권? 이라크 어린이들의 고통을 보라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3. 파병 '통제권'까지 미국에 넘긴 노무현 정부 - 이경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군축팀 부장 4. 파병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후퇴시켰는가 - 이영순 국회의원(민주노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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