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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한 발 더 다가간 미국과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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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한 발 더 다가간 미국과 이란

미 정부, 이란 혁명수비대 테러단체 지정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 17일 "세계 지도자들에게 3차 세계대전 발발을 원치 않는다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힌 이후,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많은 외교안보전문가들이 이란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라고 우려해 오던 조치를 미국이 마침내 발표했기 때문이다.

25일(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테러를 지지한 혐의로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美, 정말로 이란과 한판 붙으려 하나").

미국 정부는 혁명수비대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이라크 시아파 저항세력 등에게 무기와 폭발물을 제공하고,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에게 미사일을 판매해 왔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미 수십개의 무장조직을 테러단체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엄연한 주권국가의 정규군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이 특정 조직을 테러단체로 지정하게 되면, 이 단체와 관련된 모든 법인들의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며, 미 국민 및 미 국가기관들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혁명수비대가 운영해온 기업체 10여 곳과 이란의 최대은행인 멜리를 비롯해 3대 국영은행의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과의 거래가 금지됐다.

주권국가의 정규군을 테러단체로 지정하는 초유의 조치

이번 조치는 미국이 1979년 이란과 단교한 이래 가장 강경한 제재로 평가되고 있다. 제재 이유는 이란이 이라크와 중동의 테러 단체를 지원하고 미사일을 판매하며 핵무기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 미국이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면서, 이란과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란 외무부는 즉각 성명을 통해 자국의 합법적인 조직들에 대한 미국의 적대 정책은 국제법에 어긋나고, 정당성도 결여돼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란 의회 외교안보위원회 대변인 카젬 잘랄리는 "혁명수비대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미국은 전략적 실수를 범한 것"이라고 프랑스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특히 그는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정규군인데 이를 테러 조직으로 치부한 것은 주권국가의 내정을 간섭한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세계 각국에서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미군이 바로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이번 결정으로 이란과 미국 사이의 벽이 매일 더 높아질 것이며 대화는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이란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주요 산업과 군수, 석유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이란의 자존심이자 핵심권력층이기 때문이다.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직후 신정정치 수호를 위해 창설돼 현재 약 12만 5000명의 병력으로 정규군(40만 명)과 별도로 육·해·공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하에 50만 명 규모의 우익 청년 군사조직인 바시즈 민병대를 거느리고 있다.

자체 병력 규모는 정규군에 비해 작지만 단순한 군사조직을 넘어서는 핵심 권력조직으로 각종 건설사업 등 민간경제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도 혁명수비대원으로 이란-이라크전에 참전했으며, 이란 정·재계 곳곳에 혁명수비대 출신 인사가 포진해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것처럼 직접적인 조치는 아니지만,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징후는 최근 중동의 지역 분쟁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PKK 수중에 왜 미제무기가 있나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지난 9월 말부터 터키-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며 게릴라 활동을 활발하게 재개한 배경과 미국의 이란 공격계획을 연결시킨 분석이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반드시 우군이 되어야 하는 터키를 확실하게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전술의 일환으로 PKK 카드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1998~2001년 터키 대사를 역임한 인도의 바드라쿠마르는 최근 <아시아타임스> 기고문(원문보기)을 통해 "쿠르드 반군이 이라크와 이란과 국경을 마주한 터키 동부 지역에서 폭력활동을 갑자기 재개한 배경에는 몇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면서 "PKK가 독자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바드라쿠마르에 따르면, PKK 요원들은 최신식 무기로 잘 무장돼 있고, 지난 25년의 투쟁 역사 중 그 어느 때보다 훈련이 훨씬 잘 되어 있다. 그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 정부 대통령 마수드 바르자니가 이중전술을 쓰고 있다는 것은 외교가의 상식"이라면서 "PKK가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에 속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데도 바르자니 대통령은 그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터키군이 PKK를 추적해 국경을 넘어와도 묵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1일 터키 전투기와 무장 헬기들이 이라크-터키 국경 지대의 쿠르드반군들을 공격하면서, 무장헬기들이 이라크 국경 안 5㎞지점까지 들어가 쿠르드 반군 추적작전을 벌였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전에도 터키군이 국경을 넘어 PKK를 소규모로 공격하는 행위는 이른바 '긴급추적(hot pursuit)으로 간주돼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최근 터키 정부가 의회에서 승인받는 것은 수만명 이상의 정규군을 동원해 국경을 넘어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이는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바드라쿠마르는 "바르자니의 이중플레이는 PKK가 사용하는 무기들이 최신식 미국제품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면서 "표면적으로는 알카에다 소탕에 사용하라고 미국이 쿠르드 자치정부에 넘겨준 무기들이 PKK의 수중에 들어간 것은 미국과 바르자니가 PKK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바르자니는 미국의 굳건한 우군이며,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최근 PKK의 테러 행위가 빈번해지면서 터키 정부는 미국에게 PKK의 활동을 통제해 달라고 요청해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병력을 대규모로 파병하고 있어, PKK 활동을 억제할 여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드라쿠마르는 "미국의 묵인이 없이 이 지역에 큰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면서 "미군 특수부대가 이 지역을 방문하는 이란의 관료들을 납치하고 있는 현실은 이 일대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주로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넓은 고원과 산악 지방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쿠르디스탄'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오늘날의 터키 동부와 이라크 북부 및 이란 북서부지역의 대부분, 시리아 북부 및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일부를 포함한다.

이 지역은 쿠르드족이 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미국의 이라크 등 중동 전략의 중요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은 이란 내에서 벌이는 비밀공작의 교부보로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지역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은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전략에서 필수적인 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4년간 이스라엘은 이 곳에 강력한 정보망을 구축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총리 "PKK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느낀다"

에르도간 터키 총리는 이 때문에 최근 영국의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와 PKK의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터키를 공격하는 테러단체의 수중에서 미제 무기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토로했다.

바드라쿠마르는 "에드도간 총리의 발언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무기가 공급되고, 훈련받은 PKK가 터키 안에서 활동하다가 이라크 북부의 은신처로 도주하는 상황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미국은 터키가 PKK에 대해 보복하기 위해 이라크 국경을 넘어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을 한사코 말리고 있다. 이라크 북부마저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50여 년 동안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으로 관계를 맺어온 터키에 입장에 대해 미국이 협조적이지 않은 배경에 대해 바드라쿠마르는 "미국이 터키와 밀고 당기기가 시작됐다는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가 아르메니아인들을 집단살해한 사건을 지난 10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가 갑자기 '대량학살사건'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나선 것도 터키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터키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세속주의를 국시로 정하면서 출발한 근대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지난 2002년 이슬람 성향의 정의개발당(AKP)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집권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세속주의 정부가 미국과 친밀하게 지내도 경제사정은 오히려 별로 나아지지 않아 미국에 이용만 당했다는 반미감정이 거세지면서 '근대 터키공화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강력한 이슬람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세력이 득세를 한 것이다.

이후 경제가 급속히 나아지면서 AKP는 지난 7월 총선에서 또다시 압승을 거두었고, 내친 김에 의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직에도 사상 최초로 이슬람 성향의 압둘라 굴을 당선시키며 기염을 토했다.

AKP는 이처럼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터키 정부는 미국의 파병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미국의 중동전략에서 '행동대장' 격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터키 정부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반면 터키 정부는 이스라엘의 천적인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부와 거래를 맺고,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관계를 강화했다.

이라크에 이어 이란에 대한 공격을 노리던 미국 입장에서는, 터키가 미국의 이라크 전략과는 거리를 두고 중동 이슬람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태도를 취하고,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이 강화되는 등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드라쿠마르는 "미국이 이란에 대해 머지 않은 장래에 군사공격을 벌이게 된다면 중동과 흑해 주변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한 터키에 대해 시급하게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세계의 안보체계에 터키는 불가분의 관계"

그는 "PKK가 이라크 북부로부터 터키에 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력이 터키에게 생존을 위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그 보이지 않는 손이 터키에게 서구 진영으로 다시 돌아와 미국에 도움을 청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드라쿠마르는 "터키는 서방세계의 안보체제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가톨릭 신자끼리의 결혼과 같은 결합을 하고 있다"면서 "이혼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터키의 국민 여론은 현재 친이란, 반미로 치우쳐 있다(☞관련기사: 터키의 반미감정이 세계 최고인 이유).터키 정부로서도 이러한 여론을 무시하고 미국의 의도에 따르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터키의 분열을 의미하는 쿠르드 반군의 득세를 용납할 수 없으며, 터키는 최근 미국 상원이 '쿠르디스탄'의 독립국가 성립을 촉발시킬 '이라크 3분할 방안'을 결의한 것에 충격을 받고 있다.

이 결의안은 이라크를 쿠르드, 시아파, 수니파로 분할하는 것이 미국이 수렁에 빠진 이라크에서 탈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진단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실현되면 그야말로 터키는 국가 붕괴의 운명에 노출되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관련기사. 이런 이유로 터키에서는 미국의 중동정책에 터키가 협조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에르도간 총리도 "미국이 수만 km나 떨어진 이라크까지 온 이유와 목적을 모르겠다"면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수십만 명이 죽고, 이라크가 철저하게 파괴되었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바드라쿠마르는 이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경우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를 했지만, 터키가 미국의 의도에 따를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바드라쿠마르는 11월 5일로 예정된 에르도간 총리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미국과 터키의 관계를 가늠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이 회담에서 에르도간 총리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새로운 이라크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바르자니와 PKK를 확실하게 통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려고 할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란 역시 이 회담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라면서 "이란으로서는 이 회담에서 3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부시와 에르도간이 밀약을 맺을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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