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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정상회담 핵심 이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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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핵, 정상회담 핵심 이슈 맞다"

[정상회담 전망과 과제] ⑩·끝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의 남북정상회담 '전망과 과제' 시리즈 마지막 편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의 인터뷰다. 이종석 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NSC 상임위원장 겸임)을 역임하며 4년여 동안 현 정부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담당자로 일했다.

이 전 장관은 27일 세종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6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의제와 각 의제별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명했다. 다음은 이날 있었던 인터뷰 전문이다.

■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뤄야 하는지 설왕설래가 많다. 현실적으로 어떤 수준의 목표를 잡을 수 있나?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의제가 특정하게 제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정상의 개인적인 스타일도 그렇고, 정상회담이 갖는 특성도 그렇다. 북핵 문제가 한반도 평화의 핵심 이슈라는 점에서 양 정상간 비핵화 논의가 허심탄회하고 폭넓게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런 논의가 비핵화의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그리고 정상회담 합의문이 만들어진다고 할 때 얼마나 담길지가 문제다.

정상간 비핵화 논의는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고 특히 6자회담 진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핵시설 불능화에 합의하고 이행하는 것에나, 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하는 포럼이 구성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는 남북 양자를 넘어 국제적인 사안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특히 우리도 핵 문제에 이해관계가 있지만, 미국과 북한이 핵심 당사자라는 점에서, 또 그걸 해결하기 위한 틀로 6자회담이 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문에 비핵화 관련한 구체적인 시행방법이나 일정을 명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걸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 남북 정상이 비핵화를 협의할 때 2005년 9.19공동성명보다는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재확인하는 게 어울릴 것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9.19공동성명이나 2.13합의는 차관(보)급에서 합의한 것이지만 각각 주권국가 최고 지도자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위임 받아 합의한 것이다. 또 9.19공동성명은 동북아의 불안정한 안보 구조를 협력 구조로 전환시키자는 아주 중대한 장전이다. 따라서 9.19공동성명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보다 서명자의 급이 낮다고 해서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남북 정상이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북핵 문제는 이미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6자회담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를 위해 특정 합의를 거론한다면 9.19공동성명이 오히려 어울릴 수 있다. 또 비핵화공동선언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전 불거진 플루토늄 문제와 작년 핵실험을 거치면서 어찌 보면 상당 부분 유린된 것이다. 그러한 선언을 재확인하는 게 의미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걸 새삼 확인한다는 것이 적절할지 의문이다."

■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평화라고 한다. 왜 그런가?

"2000년 6.15공동선언은 적대와 대결의 남북관계를 화해협력의 관계로 바꾸자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합의한 것이다. 그 후 2년 반 동안 관계 재설정 작업이 이뤄졌다. 그리고 들어선 참여정부는 화해협력으로의 관계 재설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평화를 증진하고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를 추구했다. 그게 바로 평화번영정책이다. 적대관계에서 화해협력 관계로 완전히 넘어간 건 아니지만 그런 전기를 마련했으니, 그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뭘 할 건지 물었을 때, 물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 국가지만, 그 중간 단계로 평화를 공고히 하고 공동번영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관계의 일대 전환도 필요하지만 북미관계의 해소도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바로 그 때 북핵 문제가 불거져서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즉 평화체제 구축 이슈를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9.19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명기됐다.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9.19성명을 계기로 북핵 해결 위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고 나아가 동북아 다자협력체제 만든다는 자기전망 갖게 됐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우리의 당면한 문제의식을 공론화할 계기가 포착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평화체제가 논의되는 것이고, 현 단계에서 당장 실현될 가능성이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목표에 두겠다는 것이다."

■ 그건 남측의 개념과 로드맵에 따른 것 아닌가? 북측이 '우선 미국과 문제를 풀어야 한다. 평화는 그 뒤에 얘기하자'고 하면 어쩌나?

"평화는 상당히 추상적인 말이다. 그게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된다면 하나는 분명 핵문제가 될 것이고, 하나는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가 될 것이다. 남북 정상이 합의할 영역은 후자다. 또 '평화 문제를 얘기합시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핵문제가 될 것이고, 또 하나는 평화체제와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거듭 말하지만 그 내용이 합의문에 담기는 것은 현실적인 여건을 감할 때 별개의 문제다."
▲ ⓒ프레시안

■ 평화체제, 평화협정, 종전선언 등 개념이 혼란스럽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실현된다는 것은 남북의 군사적인 대치·대결 상태, 적대관계가 다 해소되고 정치·군사·경제적으로도 우호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뜻한다. 물론 거기에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핵문제 해결이라는 전제도 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으로 가는 한 점에 평화협정이 있다. 기존의 정전협정으로는 평화체제 구축이 안 되니까 그걸 해소해야 하고,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무언가를 평화협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평화협정의 내용이다. 평화협정에 북핵 해결,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간 완전한 군비통제까지를 다 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따라서 그런 시각은 평화협정 체결 시간을 상당히 길게 잡고 있고, 남북이 주체가 되고 미중이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핵을 해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평화협정의 내용이 아니라 기본조건이다. 그를 위해서는 긴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완전한' 군비통제까지 평화협정에 담아야 한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게 되면 정전협정을 해소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4개 당사국간 모임이 장기화될 수 있다. 그것은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스스로 초래하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간 군비통제는 '완전히'가 아니라, 예를 들어, 휴전선을 평화선으로 바꾸고 그에 필요한 군사적 조치에 합의하는 정도로 한계를 규정한 뒤 평화협정을 맺고, 그 이후 군비통제나 축소는 남북이 하도록 하면 된다. 그게 평화협정의 임무라고 본다.

종전선언은 이벤트성이다. 한반도 평화 증진에 도움은 되겠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앞으로 남북이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평화선언이 더 적실한 개념이 아닌가 싶다."

■ 평화문제에서 북방한계선(NLL) 이슈를 빼놓을 수 없다. 정상회담에서는 어느 정도로 합의하는 게 바람직한가?

"정상회담에서 NLL을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부가 보다 명료하게 처음부터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 10조에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계속 협의한다. 확정될 때까지는 기존의 구역을 준수한다'고 되어 있다. 이 합의는 노태우 정부 시절 이뤄졌고, 그 후 모든 정부가 이 조항을 포함한 남북기본합의서 전체를 이행하라고 북한에 촉구해 왔다.

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이 서로 새로운 경계선을 확정하기 위해 다시 협의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합의 전까지는 이 선을 꼭 지켜야만 한다. 남북 정상은 그걸 재확인하면 된다. 그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고, 그렇다면 이후 서해상에서의 원천적인 분쟁 원인은 해소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위에 공동어로구역을 어떻게 설정하건, 즉, NLL이 북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으니까 북쪽이 상대적으로 적게 포함되고 남쪽이 많이 포함된 공동어로구역이 된다한 들 평화가 증진되고 우리 어민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우리가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NLL을 거론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고, 기본합의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돌파해야한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고 본다. 기본합의서에 기초해 양 정상이 원칙을 재확인한 바탕 위에서 서해상 공동이익의 추구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면, 실무진에서 공동어로구역도 설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간단명료하다."

■ 통일문제에 관한 논의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될 것으로 보나?

"북한은 정치적인 명분을 굉장히 중시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통일방안이나 통일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고 중심적인 화두가 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남북은 이미 6.15공동선언 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식을 같이 했다. 그 후 7년 동안 이 공통점을 얼마만큼 실현시켜 왔는가? 사실 실현하지 못한 게 많다. 정상회담 정례화나 연락사무소 설치 같은 게 이뤄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협력하고, 군비통제 및 외교 협력으로 나가는 것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할 일은 그 '2항'에 기초해 남북관계를 보다 제도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방안을 자꾸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참여정부는 구체적인 통일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등에서 이어져 온 기술적인 방식을 포함한 모든 내용을 다 받아들이기 보다는 남북연합이라는 기본 개념과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라는 경로만 받아들였다.

통일방안이 없어서 통일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또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나오기 전 있었던 통일방안은 대결의 시대에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게 목적이었지 정말 실천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구체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장밋빛 청사진 같은 착시현상만 줄 수 있다.

참여정부가 통일방안 대신 평화를 얘기한 것은 통일을 꺼려해서도, 통일방안을 몰라서도 아니고, 과거 통일방안을 그대로 답습해서도 아니다. '경로로서의 통일'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화해협력을 통해 평화가 정착되고 심화되면 구체적인 남북연합에 대해서는 다음 사람들이 논의하면 된다. 연구의 영역에서 준비하되, 정부는 그 경로와 전략을 갖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참여정부 통일방안이라고 얘기할 수도 없다."
▲ ⓒ프레시안

■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얘기도 쏟아졌는데, 개성공단도 겨우 초보 단계다.

"참여정부가 생각하는 경협의 원칙은 남북이 공동으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원칙이 가능하다는 필요성을 넘어 실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남북 모두가 어느 정도 가진 단계다. 개성공단은 그 원칙을 초보적으로 실행하는 장이다. 그러나 경협이 꽃을 피우는 단계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공단 몇 개를 어디에 더 만들고 하는 문제는 비전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합의될지 모르겠지만, 경제공동체 형성이라는 비전에 대한 논의도 있을 것이고, 그 틀 내에서 구체적인 얘기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개성공단만 해도 굉장히 큰 사업이다. 1단계 100만 평만 해도, 거기에 7~8만의 북한 노동자가 투입되고 그 가족까지 따지면 30~40만 명 가까운 주민들이 개성공단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 그와 관련된 제반 서비스 산업까지 포함하면 현재 개성 인구 가지고도 안 된다. 또 공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주거 문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해결할 것도 많고, 제도적으로도 발전시킬 과제가 많다.

정상회담에서 꼭 합의돼야 할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성공단을 보다 공고하고 역동성 있게 발전시키는 것은 다음 공단을 만드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새 공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새 공단을 구체적으로 착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국가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라서 쉽지 않은데 문제를 풀기 위한 원칙은 무엇인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됐거나, 국가가 방치했었던 우리 국민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문제다. 통일부 장관 시절 관련 지원법을 만들고 북에 대해서도 아주 솔직하게 얘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두 가지 기본 원칙 가지고 임하면 성과를 비관할 필요가 없다. 첫째, 실효성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원칙이다. 국군 포로나 납북자의 상봉, 생사확인, 소환에 이르는 과정을 실제로 만들어내는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제압하고, 과거 잘못을 야단치고 호통치는 게 아니라, 실제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둘째,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체면을 깎지 않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나름대로 경제적 보상을 할 결심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빨리 진척되어야 한다."

■ 최근 정세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지난해 11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얘기하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전환됐다. 그러나 그 후에도 우리 정부는 쌀 차관 제공 재개를 2.13합의 이행과 사실상 연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의 정책전환을 제대로 읽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풀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정상회담도 좀 더 빨리 성사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는데…

"2003년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바꾸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진보진영에서는 우리 군과 한미연합사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 왜 빨리 파악하지 못했냐고 청와대를 비난했다. 정부는 오랫동안 최선을 다해 그 문제를 파악하려 노력했었다. 그런데 '왜 더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너무나 엄격하고, 어찌 보면 상상력까지 동원된 잣대를 들이대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나타난 미국의 정책 전환을 읽지 못했다는 비판 역시 비슷하다. 정부는 미 의회 중간선거 후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 정책을 전환하려는 미국의 강한 의지를 읽었다. 노 대통령은 당선 후 거의 4년 동안 '북핵에 전념해라', '북미간 직접대화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등의 말로 미국을 간곡히 설득했다. 부시 대통령이 '나는 결심했다'며 종전선언을 얘기한 것은 노 대통령의 그런 설득에 따른 결실이었다. 그에 앞서 4년간 우리는 미국에 상식적인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미국은 '아니다. 북한은 사기꾼 같은 집단이라 (직접대화) 못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또 그런 정부를 보고 한미동맹 깨뜨린다고 비판하고…우리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 4년을 보냈다. 그런데 미국이 대전환을 했고 2.13합의가 이뤄졌다.

내가 장관 시절 쌀 지원을 중단하면서 지원 재개의 명분으로 내놓은 것이 북측의 6자회담 복귀였다. 북은 작년 말부터 6자회담에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2.13합의까지 했다. 그래서 나도 퇴임 뒤였으나 개인적으로 이제는 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부가 조금 유보했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이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6년 동안 그토록 완고하게 변하지 않았던 부시의 대북정책이 대전환을 했고, 그것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엄청난 기회였다. 그럴 때 미국의 정책 변화가 확고하게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대미협조가 필요한 시기라고 노 대통령은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올 봄 국면에 우리 정부가 일차적으로 방점을 찍은 것은 한미협조였다. 남북관계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미국의 정책전환을 확실히 하는데 우리 나름의 역할을 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부시의 변화는 철학의 변화가 아니다. 국내정치적인 요구, 중간선거 결과, 퇴임 전 무엇인가를 이뤄야 한다는 필요성 등으로 노선만 바꾼 것이다. 그러면 그걸 공고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를 위해 우리도 미국에 협조해야 했고, 대미 협조노선을 더욱 강하게 가져간 것이다. 올 1~5월 한국 정부가 취한 스탠스는 바로 그것이라고 본다. 미국에 휘둘린 게 아니라, 미국이 변화해서 돌아온 지점, 대한민국 정부가 그동안 주장했던 지점에서 또 다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 ⓒ프레시안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대미협조를 했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대북 송금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미국 내 강온대립 첨예했다. 그 때 부시 대통령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우리가 쌀 지원 재개 시기를 조정했다. 그렇다고 그게 남북관계 신뢰를 엄청나게 크게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그걸 방증한다.

작년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쌀 제공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남북관계의 동력을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심했다. 미사일 발사 후 쌀 중단으로 남북관계가 파탄났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공식 채널은 접촉 가능한 선을 유지했다. 그랬던 게 정상회담을 이룰 수 있는 기본 저력을 축적한 것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는 않으니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없다.

나도 정부가 2.13합의 이후에도 쌀 지원을 조정한 것에 대해 그러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왜 이 정부가 그런 판단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부가 판을 잘못 읽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평화라고 하고 평화체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국방개혁 2020' 같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평화의 흐름과 방향이 다르다는 평가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방 역량은 북한만이 아니라 주변국가의 관계 속에서도 봐야 한다. 그런 고려 에서 국방비를 늘렸는데, 국방개혁 2020을 통해 20만명의 군대를 줄이기도 했다. 일종의 군축이다. 그런데 예컨대 '30만명을 줄였으면 좋았을 텐데 20만을 줄였다. 그러나 병력을 최초로 줄였다는 것은 평가한다. 다만 이렇게까지 군비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면 대화를 할 수 있지만, 그냥 다 매도해버리면 곤란하다. 그러면 공감대가 없어진다.

국방개혁 2020은 군비증강이란 관점에서 추진한 게 아니다. 정예화된 군대를 만들기 위해 20만명을 줄였다. 다만 대북 억지력을 넘어, 모든 면에서 자주국방을 하지는 못하지만 동북아에서 열강들이 패권경쟁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 '전략적 거부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국방비전을 생각해서 국방비를 산출했다. 최소한의 힘이 바탕이 안 된 평화는 허구다. 국방비를 증액시켰다고 해서 평화체제를 얘기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정서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적정한 국방체계를 갖추고 그 과정에서 북한이 군비통제와 군축을 하자고 제기하면 응할 수 있는 것이다. 국방개혁은 동북아 차원과 대북 억지력 차원에서의 비전이 혼합되어 있는데, 대북 억지력에 해당되는 부분은 향후 남북관계가 군비통제와 군축으로 가면 조정할 수 있는 탄력성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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