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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사람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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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사람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긴급기고> 국제사회 비난과 내부 반발 직면한 미얀마 군정

27일로 버마 승려들의 총파업이 10일째에 이르게 된다. 25일의 시위에는 옛 수도 양곤에서만 10만명 이상의 시위대가 쏟아져 나와 시내의 교통이 완전히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에 군부는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경고했으며 향후 2개월간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26일에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했으며 경고사격을 하기도 했다. <DVB>(Democratic Voice of Burma, 버마 민주화의 소리 방송)은 군부의 폭력 진압으로 인해 승려 5명을 포함해 일반 시민 10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국영방송인 <MRTV>(Myanmar Radio & Television)에서도 1명이 사망했고 3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 시민과 승려가 하나된 시위 장면 ⓒ블로그 http://niknayman.blogspot.com

그 외에도 25일 밤에는 유명한 영화배우 자가나(Zarganar)과 정치인 3명이 체포되었다. 이미 3년 전 정치범으로 투옥된 바 있었던 자가나가 다시 체포된 것은 군인들을 비판한 것은 물론 시위하는 스님들에게 음식과 약품을 제공했으며 동료 영화배우들에게 시위 참여를 촉구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승려들의 식사가 끝나는 매일 12시에 각 사찰을 중심으로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저변 확대가 낳은 힘

이번 시위의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지난 8월 19일 시위가 처음 시작될 당시에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가 중심이 되었다. 8월 15일 정부가 갑자기 석유값을 2배로, 천연가스 가격을 4배로 인상하면서 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해졌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연료가격 인상은 버스의 운행까지 마비시켰다.
▲ 전경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는 승려들 ⓒ버마 인터넷 신문 irrawaddy.org

일부 시민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시위가 급속하게 확대된 것은 지난 5일 승려들이 시위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불교 국가인 버마에서 승려들의 시위가 군부에 의해 무력 진압되자 일반 시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련 기사 : 버마 사태 고조…스님들, 마침내 시위 대열 가담)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번 시위가 이렇게 커진 다른 이유는 2000년대 이후 소위 '88년 민중항쟁'의 지도자들의 일부가 일반 시민들의 민주화운동 참여를 중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의 민주화운동은 정치운동 중심이었는데 반해 민중항쟁 지도자들은 기도, 서명운동, 가두행진, 민주화운동 기념행사 등 일반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펼쳐나가 반체제 운동의 저변을 확대했다.
▲ 민주화운동 단체 '88 세대'의 활동 모습. 오른쪽 두번째가 민꼬나잉 씨, 세번째가 꼬꼬지 씨 ⓒbinamojo.org

88년 민중항쟁 당시 학생 지도조직이었던 미얀마 전국학생연합 '민꼬나잉'(Min Ko Naing)의 회장과 '꼬꼬지'(Ko Ko Gyi) 부회장이 2004년 11월과 2005년 1월 각각 석방되면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운동은 더욱 확산되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88년 세대'라고 불렀으며, 그 이름으로 청년단체를 창립했다. 또한 이들은 정치운동 외에 강제노동, 강제이주 등 일반 시민들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인권단체나 AIDS/HIV 환자 지원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시위는 이처럼 2000년대 이후 발전해온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시위 초반 군부는 학생 지도자들만 체포하면 잠잠해질 것으로 판단, 학생지도자들 13명을 비롯해 200여 활동가들을 체포했다. 그러나 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도 시위는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다.

군부 내 불만도 변수될 듯

현재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승려들이다. 학생 지도자들은 승려들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밝혔고, 대표적인 정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4일에야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총파업을 주도한 전국승려연합회는 공식적으로 네 가지 요구를 내걸고 있다. 군부의 공식 사과, 경제 문제 해결, 시위 전후로 체포된 정치범들 석방, 군부와 정치인들 사이의 대화 재개가 그것이다.

현재로서는 군부는 어떤 요구도 수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스님들의 요구를 계속 거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국 어느 정도 타협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식 사과, 경제 문제 해결 약속은 비교적 쉽게 타협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 반면, 정치범 석방이나 정치인들과의 대화 재개는 군부로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군부의 독재권력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승려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구사항은 대화 재개다. 군부가 이 요구를 끝까지 거절한다면 시위는 계속될 것이고,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군부정권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군부 내에서도 강경 대응에 반대하는 입장이 있어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군부 내의 젊은 장교들은 88년 민중항쟁 당시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시위대에 대해 우호적인데다가, 승려들에 대한 무력 사용에 불만을 갖고 있다. 또 군부 지도부의 정실 인사나 부정부패 등으로 인한 군부 내부의 불만도 상당히 쌓여 있는 상태다.
▲ 시위 중 부상당한 스님의 모습 ⓒ블로그 http://niknayman.blogspot.com

과거와 다른 국제사회의 움직임

또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군부에게 매우 불리하다. 88년과 달리 지금은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수단의 발전으로 버마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 정부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달라이 라마 등 국제 사회의 지도자들이 군부의 무력 진압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버마 군부의 탄압을 비판하는 시위도 여러 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27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과거 국제사회는 버마 민주화에 대해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민주화운동가들만이 군부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일반 시민들이 정부에 반대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국제사회도 일반 시민들에 대한 군부의 탄압을 묵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제사회가 눈감아준 덕분에 독재권력을 유지해왔던 군부로서는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군부에 반대하는 일반 시민들의 움직임과 국제 사회의 움직임이 하나가 된다면 군부도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마웅저 씨 ⓒ프레시안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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