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평화체제? '평화 프로세스'로 가야한다
이런 의미를 갖는 남북정상회담의 국민적 합의 조성을 위한 건설적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 평화가 있다. 어떤 이는 평화는 오로지 북핵 폐기만을 의미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전쟁 없는 상태를 상정한다.
이 문제는 북핵 문제(불능화, 폐기)와 한반도 평화 문제(평화체제, 종전선언, 평화협정)를 선택의 문제로 단순화 시켜버리는데서 출발한다. 한반도에 있어서 평화의 문제는 '프로세스(과정, 단계)'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때 '평화 프로세스'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북핵 문제를 배척한다'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분단의 긴 세월만큼이나 한반도에 있어서 평화정착의 과정은 결코 간단치도, 단기적인 해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과정을 공유하고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틀을 이용해 순차적으로 이행해 나가는 복합적인 '프로세스'이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선언적 조치, 실질적 조치 이행, 그리고 법·제도적 조치의 과정을 통해 진행될 것이다.
첫째, 남과 북이 한반도 평화선언을 통해 선언적 조치를 이행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야 한다.
둘째, 완전한 한반도 평화·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보장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핵심은 한반도 비핵화, 그와 병행된 '북미 안전보장', 그리고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인 '남과 북의 군비통제'를 의미한다.
셋째로, 평화·안전 보장체제 아래 법·제도적 조치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순차적으로 완결되어 갔을 때 비로소 우리는 통일의 결정적 단계에 들어섰음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북정상회담은 결코 일회성이거나 이벤트성이 될 수 없다. 헌법이 엄중히 명령하고 있는 평화통일 의무에 대한 헌법적 실천이다. 이는 대통령의 취임선서에서도 명령하고 있는 바다.
한반도에 있어서 평화 문제를 북핵과 평화정착 모두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프로세스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당연히 북핵 문제 해결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는 6자회담의 성공 기반을 조성하는 회담이다. 북핵 문제가 의제가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렇다고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완결짓고 오라는 요구가 무리하다는 것은 그런 요구를 하는 이들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정상회담은 6자회담을 뒷받침하고 6자회담과 건설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합리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해소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북한의 기존 입장이 하루아침에 변할 리도 만무하다. 이미 북핵 문제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닌 다자화되어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자.
남북정상회담의 정쟁화에 반대한다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 방북단에도 불참한다.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합의하든 마치 차기 정부에 과도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도 얘기한다. 남북문제를 이번 대선에 끌어들여 범여권의 승리를 꿈꾸는 것이라고 홍보한다.
물론 이런 수준의 견제와 조정은 야당의 몫이기에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헌법적 차원에 입각한 순수한 의도일 때만 그렇다.
한나라당의 정상회담 반대는 1차 정상회담 때부터 상투적이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남북문제가 자칫 국내정치의 도구로 악용되고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도 2월 6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 예비후보는 "대통령이 임기를 1년 앞두고 정상회담을 하려는 것은 반대한다"고 했다.
2차 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전후해 한나라당이 보여준 혼란은 굳이 되새기고 싶지 않다. 현재까지의 한나라당의 입장을 굳이 정리하자면 이런 식이다.
'지금 시점에서 정상회담은 하지 않는 게 옳다. 그렇다고 개최까지 약속한 마당에 내 놓고 반대할 수는 없다. 기왕 한다니까 어쩔 수 없지만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의 과제를 걸어 언제라도 정상회담이 실패했음을 선언하고 이를 공격의 소재로 삼아보자.'
지나친 왜곡이라 할 것인가? 남북문제는 헌법 차원의 문제이다. 또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는 헌법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또한 정치는 솥단지에 밥을 채우는 과정이다. 권력기구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것이 정치이고 헌법이다. 그렇다면 남북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자하는 행태는 대단히 반헌법적이고 몰역사적이다.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한 과정이다. 그리고 늘 계속되어야 될 과정이다. 최고 지도자가 사실상 모든 걸 결정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더더욱 그렇다.
정상회담을 두고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한미동맹을 제쳐두고 남북이 '우리민족끼리'에 나서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불신의 장벽이 가득한 한반도에 일관성 있는 대북접근과 개입정책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있어서 필수 요소라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한나라당 '한반도 평화비전'의 진정성을 보여라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역사적 소명이다. 얼마 전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신한반도 구상'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기왕 열린다고 하니까 (정상회담이)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다음 정권에서도 정상회담은 계속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나는 사정권에 있는 북한의 장사정포를 뒤로 물리거나 양쪽 군대를 줄이는 등 실용적 회담을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지난 7월 정형근 의원이 발표한 '한반도 평화 비전'의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이 시점에서 정부와 범여권은 한나라당의 이런 변화를 관심있게 지켜봄과 동시에 공통분모를 확인해 실천가능한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막연히 한나라당의 이런 정책을 '수구세력의 평화공세'로 매도하고 또 다른 정쟁을 만들기 보다는 합의의 틀을 넓히고 굳혀 후퇴할 수 있는 고리를 차단함과 동시에, '평화 프로세스'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공통의 틀을 견인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개성과 금강산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는 끊임없는 남북교류와 통일 실습이 계속되고 있다. 개성과 금강산 지역의 장사정포와 전차는 후방 배치됐다. 개성에서는 남측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만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이 실험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보다도 더한 실험일 수 있다.
남한은 한강의 기적으로 일어섰는데, 남북은 이제 공동으로 임진강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는 당연히 이런 단계도 포함된다. 임진강의 기적을 넘어 대동강의 기적으로, 다시 청천강의 기적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기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통일의 과정이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섬나라에서 대륙국가로 웅비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의 생존권 차원에서나 헌법질서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라도 건설적 논쟁을 빗겨난 정략적 공방은 몰역사적이고 반헌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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