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6주년을 맞아 세 번째에 해당하는 빈 라덴의 이번 메시지는 미국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페레즈 무샤라프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무샤라프는 미국의 알카에다 소탕 등 대테러 작전에 적극 협력하는 친미정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키스탄은 알카에다가 국경 부근 산악지대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샤라프 정권 각료들과 병사들은 무슬림 살해한 공범"
<AP> 통신 등 외신들이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빈 라덴은 이번 테이프에서 "무샤라프가 '붉은 사원(Lal Masjid)'을 점거했던 시위대를 군대를 동원해 유혈 진압함으로써 이단자로 전락했다"며 민중봉기를 촉구했다.
파키스탄 군부는 지난 7월 수도 이슬라마바드 '붉은 사원'을 점거하고 있던 알 카에다 추종 세력을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사살했다.
빈 라덴은 붉은 사원을 유혈 진압한 것은 무샤라프가 무슬림을 적으로 돌리고 미국에 대한 충성과 복종, 협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빈 라덴은 "무샤라프 정권의 각료들과 병사들은 무슬림들을 살해한 공범들"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무샤라프를 의도적으로 돕는 자는 그와 마찬가지로 배신자"라고 경고했다.
빈 라덴이 무샤라프 정권을 전복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하지만 <BBC>의 안보전문기자 롭 왓슨은 "파키스탄 정국이 혼란스러운 최근 상황과 무샤라프에 대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이 때를 적절한 시점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파키스탄 주민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무샤라프는 빈 라덴보다도 지지율이 낮았다.
또한 이번 메시지가 나온 시점이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가 차기 대선 날짜를 10월 6일로 발표한 직후라는 점에서 대선에 대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오는 11월 15일 임기가 끝나는 무샤라프는 의회에서 뽑는 이번 대선에서 다시 선출되면 그동안 법을 어기면서 유지해왔다는 비판에 시달린 군 참모총장직을 내놓을 것이라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런 공약은 재선이 확실시 되는 이번 대선에서 무샤라프가 또다시 군 통수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무샤라프는 1999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 군 통수권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번복한 바 있으며, 군인을 포함한 공무원은 선출직에 출마할 수 없고 출마하기 위해서는 퇴임 후 2년이 넘어야 한다는 조항으로 정통성 시비에 시달려 왔다.
무샤라프, 군 통수권 유지하며 재집권 노려
하지만 파키스탄 선관위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유지하면서 차기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 규정의 주요 조항을 수정했으며 무샤라프는 이를 즉각 승인한 상태다.
앞서 무샤라프는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망명 7년 만에 귀국을 시도한 정적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를 입국 4시간 만에 '돈세탁' 혐의로 사우디 아라비아로 재추방하며 재집권의 야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야당과 최근 무샤라프와 권력 분점을 위한 협상을 벌여온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대선을 앞두고 파키스탄 정국은 극심한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이미 두 번이나 총리를 지낸 부토는 세번 이상 총리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바꾸기 위해 무샤라프와 협상을 벌여왔으나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망명 9년 만에 다음달 18일 귀국할 예정이었던 부토 전 총리는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야당과 합류해 대선 보이콧을 진행할 것이라고 선언해 귀국 일정도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무샤라프는 대통령의 군 참모총장 겸직을 허용하는 개헌안에 반대하다가 지난 3월 해임된 이프티카르 초드리 대법원장의 복귀를 요구하고 있는 법조계가 선관위의 결정을 반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정파, 종교, 지역 여부를 초월하고 모든 정당들이 법조계의 움직임을 지지해야 한다"며 정국을 반전시킬 힘을 결집하고 있다. 부토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재선을 저지하는 한편 내년 1월 실시될 총선을 통해 사실상의 정권교체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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