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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사태 고조…스님들, 마침내 시위 대열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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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사태 고조…스님들, 마침내 시위 대열 가담

<긴급기고> 군사 쿠데타 19주년…총파업 잇따를 듯

지난 8월 이후 한 달째 계속되고 있는 버마의 시위 사태가 중대한 전기를 맞고 있다. (1989년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버마의 국호가 '미얀마'로 바뀌었으나, 민주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버마'로 부르고 있다. 편집자) 18일 버마 스님들의 전국적 총파업이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파업은 스님들은 물론 민주화운동가들, 학생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국적인 거리 시위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간 버마에서 벌어진 시위는 연료값 폭등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반 시민 중심의 시위였고, 거기에 민주화운동가들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고문 중단, 정치범 석방 등의 요구가 곁들여지는 정도에 그쳤었다. 그러나 지난 5일 이후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바로 스님들이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 8888 항쟁 당시 버마 승려들의 시위 모습 ⓒ버마 정치범 지원모임(appb.org)

처음에는 일반 시민들의 시위에 몇몇 스님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정도였지만, 5일 파콕꾸(Pakkhoku)시에서는 500여 명의 스님들이 집단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군인들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허공에 총격을 가했는데, 이날 발포는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10명 이상의 스님들이 군인들에 의해 연행됐는데, 2000명 이상의 일반 시민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자 3명의 스님들이 그날 저녁 석방됐다. 석방된 3명의 스님들 중 한 사람은 DVB(Democratic Voice of Burma, 버마 민주화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봇대에 묶여서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은 후 연행된 스님도 있었다"고 밝혔다.

전국승려회연합은 9일 나흘 전의 사건에 대해 군부의 공식적인 사과, 경제 문제 해결, 체포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국승려회연합은 17일까지 이에 대한 답이 없으면 18일에 전국 승려들의 총파업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재 민주화운동을 지도하고 있는 태이 쫴(Htay Kywe) 또한 "모든 스님들은 총파업에 동참해 달라. 우리 시민들도 스님들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승려들의 총파업은 무엇을 의미하나

과거 독재정권 시절 대한민국에서 교수나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불교 국가인 버마에서 스님들은 특별히 존경받는 존재다. 버마에서는 '경배해야 하는 다섯 가지 존재'가 있다. 부처님, 부처님의 말, 스님, 선생님, 부모님이 존재들이다. 여기서 스님들은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스님들의 말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군부도 지난 5일 체포된 스님들에게 승복 대신 일반인들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감옥에 넣었다. 스님들을 체포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버마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는 언제나 스님들이 있었다. 대영 독립투쟁과 항일 운동, 그리고 8888 민중항쟁(1988년 8월 8일 버마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군사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 당시 최소 200여 명이 사망했다)에서 늘 스님들이 선봉에 서왔다. 시민들이 시주해준 양식으로 식사를 하는 스님들은 "나의 코는 시민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숨 쉴 수 있는 것도 시민들 덕분이라는 뜻이다.
▲ 8888 항쟁 당시 버마 승려들의 시위 모습 ⓒ버마 정치범 지원모임(appb.org)

지난 1990년에도 스님들의 파업이 있었다. 8888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1988년 3월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90년 3월 13일 버마의 두 번째 수도 만드레(Mandalay)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군인들은 총을 난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과 승려들이 희생당했다. 이에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스님들은 총파업을 했다. 당시 군부 지도자인 서마웅(Saw Maung)은 이를 아무렇지 않게 여겼지만, 스님들의 총파업으로 인해 군부의 이미지는 더 나빠지게 되었다.

군부가 버마 시민들을 통치하는 방식은 총과 불교 두 가지다. 버마 신문의 1면에는 절에 기원을 하거나 시주를 하는 군인들 사진이 매일같이 실려 있다. 시민들은 군인들이 싸움을 자주해서 싫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 헛갈리게 된다.

그러나 승려들의 파업이 있자 시민들은 군인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고, 군인들도 불교를 통해 시민들을 통치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서마웅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하나는 큰스님한테 가서 나라의 평화를 위해 파업을 끝내도록 도와주시라고 부탁하는 방법이었다. 파업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큰스님은 젊은 스님들에게 파업을 끝내도록 부탁했다. 하지만 군부는 뒤돌아 서서는 승려들을 체포하고 폭력을 가하는 등 평화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했었다.
▲ 최근 시위 사태에서 승려들이 당한 고문을 형상화한 그림 ⓒ버마 인터넷 신문 irrawaddy.org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90년 3월에는 큰스님들이 상황을 잘 몰라 총파업이 실패했지만, 현재는 큰스님들이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 DVB 등 현지 방송들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큰 스님들도 "이런 상황이라면 총파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버마 군부는 깡패들을 고용해 시위대를 저지하고 있다. 깡패들은 시민들을 대나무로 폭행하고,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경찰 대신 시위자를 체포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다. 뒤에서 경찰과 군인이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에 마음껏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군인과 경찰이 앞장서지 않고 깡패들만 나서는 상황이 혼란스러워 시위에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상적인 반정부 시위에 400~500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데 비해 스님들의 체포에 대한 항의로 벌어진 지난 5일의 시위에 2000명 이상이 모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님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일반 시민들도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게 된 것이다.

18일은 버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19년이 되는 날이다. 스님들의 총파업에 맞춰 민주화운동가들도 시위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군부는 총파업을 강력하게 탄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스님들이 체포되거나 폭력을 당하는 보게 된다면 그동안 구경만 하고 있었던 일반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난 5일의 시위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군부가 평화적으로 협상하지 않으면 '8888 민주항쟁'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 마웅저 씨 ⓒ프레시안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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