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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이후 '전인미답'의 길을 준비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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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이후 '전인미답'의 길을 준비해도 좋다

한반도브리핑 <66> 스쳐지나갈 수 없는 낙관의 근거들

북한의 수해로 10월 초로 연기됐던 남북정상회담 준비가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정상회담의 의제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윤곽은 확정된 듯하다. 비핵화란 묵직한 사안부터 인도주의적인 이산가족 문제까지 남측의 요구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북측이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면서 어떤 의제와 제안을 내놓을지는 아직 막연한 것 같다. 다만 최근 북한의 몇 가지 조치와 '상징'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평양 수해 복구 마무리, 아리랑 공연 재개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승용차를 타고 경의선 도로를 달려 평양에 간다. 지난 7년 간 남북관계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로이다. 북한은 남측대표단의 의전과 참관지 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여줬다. 또 북한은 평양지역의 수해복구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최근 잠정 중단했던 '아리랑' 공연을 재개했다.
▲ 수해 복구가 끝나고 깔끔하게 정비돼 있는 최근 평양시내의 모습. 새롭게 펼쳐질 미래를 준비하는 듯하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운이 따르는 것 같다. 몇 달 사이에 국제적 외부 상황이 더욱 호전됐기 때문이다. 실무협의에서 합의된 정상회담 의제는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 번영, 조국통일의 새 국면 등 3가지이다. 그런데 6자회담이 순항하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평화조약'(peace treaty)을 언급함으로써 대통령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의제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게 됐다.

지난 7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핵폐기→한국전 종전선언→평화조약 체결→북미수교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이에 앞서 북한과 미국은 9월 1일과 2일 제네바에서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 회의를 갖고 연내에 북한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미국은 그에 대한 정치·경제적 상응조치를 취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9월 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차기 6자회담에서는 '2.13합의'에 버금가는 합의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로써 남북정상회담에서 명실상부하게 민족공동 번영과 통일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국제적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더구나 북한은 9월 말 6자회담과 10월 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국가'로 전환하고,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려는 확고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측 인사와 접촉한 남측 인사들은 "북측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근 6자회담과 북미대화에서 조성된 화해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북한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보는 이같은 북한의 정책기조를 잘 보여준다.

北, 정상회담 이후 준비

먼저 북한은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올해 안에 핵시설을 불능화(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시사했다. 북한은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관계 실무그룹회의 관련해 지난 3일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다음 단계 목표들이 토의됐으며 일련의 합의들이 이룩됐다"며 "앞으로 열리게 될 6자회담 전원회의에서 진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은 11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는 미·중·러 핵 전문가 실사단의 대표를 미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하고, 이들이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는 것을 승인했다. 두 가지 사안 모두 이례적인 조치다.

북한과 미국은 공식적 채널의 신뢰구축을 비공식적 교류로 다지는 '행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오는 10월에 북한 태권도 선수단이 미국 시범공연을 펼친 예정이고, 시카고에서 열리는 세계권투선수권대회에도 북한 선수 3명이 출전할 예정이다. 북한은 또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추진하겠다는 초청 의사를 밝혔고, 미 국무부는 뉴욕 필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겠다며 지지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지금까지 공개된 행사 외에도 북미간 상호 신뢰 구축에 도움을 될 수 있는 전문가포럼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미국측과 논의 중이거나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 나아가 북한은 올해 안에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이뤄질 것에 대비해 외부 투자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대북 SOC(사회간접자본) 건설 등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북미대화에서 북한은 이를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는 곧 해외에서 북한으로 돈이 흘러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 이후를 대비한 북한의 포석은 지난 5일 두바이 신화의 주인공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국영개발업체 에마르부동산의 회장이자 두바이 경제개발장관을 맡고 있는 알리 라시드 알라바르(51)의 방북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그가 현재 공사가 중단된 105층 류경호텔을 둘러 본 것은 그냥 스쳐버릴 사안이 아니다. 미국계 화교인 세계화상연합회 총회장 장이청(張一成) 미국 마더리(馬得利)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제3회 동북아투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창춘(長春)에서 훈춘(琿春)시 둥린(東林)경무유한공사와 북한 라진항 부두 및 도로, 공단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협의서를 체결한 것도 주목된다.
▲ 두바이 경제개발장관을 맡고 있는 알리 라시드 알라바르 아랍에미리트연합 국영 에마르부동산 회장(중앙)이 지난 5일 평양을 방문했다. 그가 현재 공사가 중단된 105층 류경호텔을 둘러 본 것은 그냥 스쳐버릴 사안이 아니다. ⓒ연합뉴스

이에 북한 조선상업회의소 윤영석 서기장은 지난 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핵문제가 진전이 되니까 국제적인 환경도 유리해졌다"며 "유럽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우리와 경제무역 관계를 심화발전시키려는 열의가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北, 한반도 평화와 경제공동체 관련 파격 제안 준비

둘째로 북측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측이 중점의제로 제기할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경제공동체' 형성 제안에 대해 남측의 예상을 뛰어넘는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북측이 남측 당국과 의견을 주고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북측이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두 가지 시범적 제안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남측에서 그동안 꾸준히 제기했던 사안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 될 것이다.

북측의 제안이 합의되고 실천될 경우 한반도의 군사·경제적 지형은 크게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경협 논의와 관련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남측의 선(先) 투자가 북측의 경제발전을 이끌고 결국에는 남측 경제발전의 신(新)동력으로 이어지는 남북상생의 구조를 창출하도록 생산적인 대화를 해나갈 것"이라며 "남북경협을 현재보다 경제원칙에 입각한 상호보완적인 지속적 투자와 협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북한은 남북경협 창구인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조직을 정비·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평화체제와 경제공동체 형성과 관련된 파격 제안을 지렛대로 그동안 남북장관급회담, 남북장성급회담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서해 해상경계선(NLL) 재설정 문제를 비롯해 한미 군사훈련 중지, 참관지 제한 철폐,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근본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다.

셋째로 북한은 2000년 6.15공동선언 2항 합의보다 진전된 통일방안을 제안하고 남측과 협상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에서 우려하는 어느 일방의 주장만 담긴 합의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떤 형태로 귀결되든 남북 간에 통일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될 것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양 정상 간에 협의해서 하나 만들어 낼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피력했다. 이 장관은 "제1차 정상회담에서 이뤄졌던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측의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다'는 합의가 일정 정도 통일의 기초를 놓은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으며 이 기초 위에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이 뭐냐는 것을 우리도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는 통일방안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재정 장관도 "(통일방안 합의가)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통일방안 합의는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난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북 정상간에 치열한 논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는 2.13합의의 1단계 조치들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북핵의 연내 불능화'가 확실해 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통일방안 협의도 국제적인 외부 상황이 뒷받침되고, 올해 '2.13합의' 이후 남북이 오랜 기간 준비했기 때문에 예상을 뛰어넘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상회담의 정례화와 남북대화를 논의하는 새로운 상설기구 설치에 남북 정상이 합의할 경우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화해와 협력단계에 진입하는 결정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인미답의 길

냉전체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정세 속에서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틀에만 갇힌 '우물안 사고'와 아전인수식의 '정파적 이해'에서 벗어나 동북아의 틀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과연 될 수 있을까?'란 회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되겠구나'라는 낙관적 인식을 가지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관계 정상화 흐름을 주시하고, 그 이후를 준비할 시점이다.

지금 남과 북, 북과 미국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여러 우여곡절이 수반되겠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완성을 위해 한 번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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