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정작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지각색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에 강조점을 두려는 경향, 평화문제가 중요하다고 보는 견해, 또 통일방안이 구체화되어야 되지 않느냐는 입장… 필자 역시 지난 수 년 동안 남북을 오가며 다양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만들어왔던 전문가(?)의 입장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두 정상에게 주문하고픈 사안이 많다.
과도한 정치주의? 균형된 시각으로 보자
지난 수년동안 남북의 교류협력이 더욱 활성화되지 못하는 사정은 많은 부분 왜곡되게 알려져 있다. 북의 과도한 '정치주의'가 시도 때도 없이 남북관계를 차단해버려 남북관계가 불안정해졌다는 게 대표적인 '왜곡'이다. 남북관계에서의 과도한 '정치주의'는 사실 남북 모두 마찬가지이거나, 남쪽이 더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문에 남북공동행사를 중단한 북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이 많지만, 북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외세에 편승해 대북 인도적 지원조차 중단했던 우리 정부의 정책은 제대로 조명된 적이 거의 없다. 또 북이 '상생'보다는 남쪽의 일방적 '지원'만을 종용하고, 또 이에 따른 인적교류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다. 북은 남쪽과 '상생'을 원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철철 넘치는 조건에서 상생의 방법에 대해서 아직 개척되지 않았을 뿐이다.
인적교류에 대해서만 보더라도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납득되기만 하면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남쪽이 원하는 것처럼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그저 가고 오며, 또 그저 만나는' 자유주의적(?) 만남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들을 굳이 되짚어 보는 것은 이제까지 남북관계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북이 더 문호를 열지 않아서'라든가 혹은 '북의 과도한 경직성' 때문만이 아니라, 남북의 사회적 체제의 차이, 조건의 차이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北, 납득할만한 인적 교류 거부 안 해
정작 남쪽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좀 더 자유롭고 전면적인 대북 교류협력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견해다.
누구나 원하듯 비용이 적게 드는 육로 방북을 일상화하고 싶어도 남쪽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여러 협상에 동의하지 않다 보니, 막상 경의선 열차가 시험운행을 하니 어쩌니 해도 '그림의 떡'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또 북에 실질적 도움을 주고 싶어도 북이 원하는 소위 '자력적 경제개발'에 도움이 되는 물자는 거의 보낼 수 없는 현실, 일례로 컴퓨터 한 대도 보내지 못하는 남쪽의 여러 제약이야말로 남북 경제협력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큰 어려움 중에 하나였다. 또 남쪽이 원하는 문화교류에 있어서도 예건대 북측 노래 가사 중에 특정 표현 한마디도 허용할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면서 남북의 공동문화협력을 제안하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1차 정상회담 이후 지난 7년간 남북관계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수많은 불안요인도 있었지만 실제적인 인적교류와 경제협력은 늘어났으며, 남북 사이에 화해협력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었고,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토대가 굳건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성과들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더 희망찬 한반도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교류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여러 근본문제들을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교류 사업이 더 이상 정치상황의 변화에 부침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민간차원의 다양한 교류협력들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급격히 그 소동에 휘말렸던 것은 교류협력의 동력을 죽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은 이런 문제들이 극복되고 교류협력이 일상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육로 방북길을 교류협력의 지름길로 만들기 위해
교류협력의 활성화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육로를 개통해 보다 편리한 인적·물적 교류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육로 개통의 문제는 남북의 군사적 위협 요소를 제거하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단언컨대 NLL 문제 등 현안이 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없이 열차와 육로를 정식으로 개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중국을 통해 돌아가고, 비싼 값의 비행기 전세를 내는 어리석은 일은 이제 정말 관둬야 한다. 이처럼 육로 수송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으로 인해 유라시아 물류중심기지로서의 한반도를 실현하며, 남북공동의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이 관건이다.
또한 남북의 경제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갖가지 요인 중 우선 대북반출물자를 제한하는 문제부터 당장 해결되어야 한다. 남북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북의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가 조성돼야 하며, 남쪽은 북의 자립적 경제건설을 도와주면서 남북이 함께 일구어야 할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의 토대를 쌓아가야 한다.
남쪽의 많은 기업가들이 남북 경제협력이야말로 남한 경제에도 큰 활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남북이 함께 원하는 물자들의 반출을 제한하는 문제부터 해결하지 못한다면 민족경제공동체니, 세계를 향한 물류의 중심 한반도니 하는 문구들은 공허한 공상에 불과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 교류협력만이 아니라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평화의제, 통일의제 등 제반 문제들에 대해 남북이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근본적인 성찰 없이 오로지 '북의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게 될 때 과연 성과 있는 정상회담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남북관계의 발전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남북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신뢰를 형성하며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저런 실무적인 문제들을 논의하는 곳이 아니다. 남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남북의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이며, 그 정신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이런 정신으로 합의된 내용이라면 아마도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공동번영을 위한 7000만 겨레의 마음이 정확하게 반영될 내용임이 틀림없다. 남북 두 정상의 이러한 마음이 모아진다면 아마 이번 2차 정상회담은 1차 정상회담에 비해 훨씬 더 큰 성과를 민족에게 선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남북 정상회담의 의의에 대해 폄하하고 훼손하려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어 여전히 걱정스럽다. 모두들 한결같은 마음으로 두 정상의 상봉을 후원해야 할 때이다.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는 2004년 결성된 대북 지원 NGO로 지난 3년 6개월간 약 200억 원에 달하는 물자를 북한에 지원했고 약 5000명이 이 단체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또 남북 교수들의 학술토론회와 남북 학생들의 통일한마당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북의 집체극 '아리랑' 참관단 모집 사업과 백두산 참관 사업 등을 펼쳤다. 현재 부산, 인천, 울산, 경남, 전북, 전남, 충남, 서울 등 8곳에 지역본부가 활동하고 있으며 북녘 어린이 영양빵공장 사업, 항생제공장 사업, 국수공장 사업 등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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