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논란…이면 거래 여부, 밝혀지기 힘들 듯
우선 몸값 지불 논란이 뜨겁다.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맞교환 요구가 돌연 철회된 배경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외의 조건이 있지 않고서는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조건은 아프간 한국군의 연내 철군과 선교활동 중단이지만, 한국군의 연내 철군은 피랍사태 이전부터 이미 예정됐던 것이며, 선교활동 중단 역시 아프간이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인질전원석방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낼 카드로 보기 어렵다.
한국정부와 탈레반 양측 모두 어떠한 이면거래도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액면 그대로 믿어주기도 힘들다. 납치단체와의 협상 자체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정부로서는 실제로 몸값을 지불했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는 처지이며, 탈레반도 아프간의 정통성을 지닌 정치.군사조직으로서 재집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돈을 받고 인질들을 풀어주었다면 '강도집단'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389억 원? 19억 원?…몸값 규모 추정하는 외신 보도
이미 외신들은 구체적인 몸값 규모를 보도하고 있다. 31일 중동의 위성방송 <알자지라>의 아프간 현지 특파원 앨런 피셔는 "아프간 고위당국자로부터 직접 이번 협상 과정에서 최대 2000만 파운드(약 389억 원)가 지불됐다고 시인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도 이날 <알자지라>가 전한 몸값 규모보다는 적은 200만 달러(약 19억 원)가 몸값으로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은 전원 석방 합의가 나온 28일 대면협상에 앞서 아프가니스탄의 한 중재자가 아프가니스탄 주재 한국대사에게 "몸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조언을 했다고 전했다.
그 외에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BBC> 등 다수의 외신 역시 몸값 지불 가능성을 언급하며 "아프간 현지에서는 몸값이 지불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알자지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몸값이 지불됐을 것이라고 추측"
알 자지라의 한국 특파원 토니 버틀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정부가 몸값을 지불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면서 "인질들이 모두 안전하게 귀국한 뒤에 본격적으로 논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레반에게 납치돼 풀려나면서 몸값이 지불된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특히 이탈리아 정부는 인질과 몸값을 교환해 왔다.
탈레반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사진기자 가브리엘레 토르셀로를 납치했다가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200만 달러를 받고 20여 일 만에 풀어줬다. 올해 3월 발생했던 다니엘레 마스트로자코모 피랍 사건 때도 이탈리아 정부는 탈레반 수감자 5명을 풀어주는 외교적 노력과 함께 수백만 달러의 몸값을 건넸다.
이처럼 이탈리아 정부는 2002년 이라크에서 이탈리아의 언론인 엔조 발도니가 납치.살해된 뒤 인질 구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몸값을 지급해 왔다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피랍사태에서도 몸값 지불 사례가 있다. 2005년 1월 이라크에서 취재 도중 납치돼 5개월 이상 억류됐던 프랑스 리베라시옹지의 여기자 플로랑스 오베나는 1000만 달러에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몸값 차원은 아니지만 현재 피랍사태 해결 과정에 소요된 비용의 일부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보수기독교단체 "봉사활동 계속할 것"
하지만 몸값 지불설의 사실 확인 여부에 따라 논란은 갈수록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등 일부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이제부터는 위험이 발생해도 우리가 알아서 책임질 테니 계속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해 무리한 해외선교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정부가 이번 피랍사태에서도 납치단체와 협상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온국민이 인질이 된 듯한 고통을 안겨준 무분별한 해외선교를 강행해 정부에 그토록 부담을 줬으면 깊이 반성하고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정부가 인질들의 '몸값'을 지불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는 "인질 석방에 몸값이 들어갔다면 그것이 구상권 행사의 핵심일 것"이라는 의견이 속속 올라왔다.
"샘물교회와 정부에 책임 묻겠다"
이번 피랍사태로 살해된 심성민 씨의 부친 심진표씨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샘물교회가 왜 이토록 무신경하게 사람들을 위험한 나라에 보냈는지 의문"이라며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를 그들은 드러내듯이 이동하고 있었다"며 분노했다.
심씨는 조만간 이번 피랍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하게 밝혀지도록 교회와 정부에게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구상권 행사와 별개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도 샘물교회와 한국정부의 협상방법에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피랍사태 이전부터 한국 정부는 아프간에 여행하지 말도록 국민들에게 경고했고, 아프간에 들어가려는 기독교 선교단들이 늘어나자 안전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불허했다"면서 이번 샘물교회 봉사단의 행위에 의문을 표시했다.
'테러집단과의 협상', 외국 정부의 공개적 비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노무현 대통령이 협상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테러단체와 협상 불가'라는 미국 원칙을 포기하라는 국내 의견에 승복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외국 정부의 공개적 비난도 나오고 있다. 아프간에 2500명의 전투병을 파병한 캐나다의 막심 베르니에 외교장관은 30일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의 협상을 통해 납치문제를 해결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테러범과의 협상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으며 이 같은 협상은 결과와 상관 없이 더 많은 테러를 부추길 뿐"이라고 항의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같은날 "탈레반에 납치된 독일인을 석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테러 단체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독일 정부의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못박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온 미국도 인질들의 전원석방 합의 소식이 나온 뒤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테러범과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석방 수단에 대한 정당성 여부는 추후에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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