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고는 1957년 미국의 조사전문회사 J. M. 비카리가 실험했다. 영화 장면 사이사이에 코카콜라와 팝콘 사진을 3000분의 1초 동안 5초 간격으로 169회 반복 삽입해서 관객에게 보여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코카콜라는 18.1%, 팝콘은 57.7% 매상이 늘었다고 한다. 훗날 이 결과는 조작된 것이며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 기법의 효과를 믿는 학자들도 일부 있어 심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용어부터가 잘못되었다. 이 실험이 사실이라 가정할 때 명칭은 잠재의식광고가 아닌 '역치하(閾値下)지각광고'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쉽게 말해 무엇을 지각하자면 일정 시간 이상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최소 시간을 역치라고 한다. 역치보다 짧게 보여주었으니 역치하 광고, 줄여서 역하지각광고라고 불러야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잠재의식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만약 이 실험 결과가 사실이라면 그 중요성은 광고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역하지각이 의식에 영향을 준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과학적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인간의 눈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재빠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우리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그래서 우리의 머리는 잘 모르지만 눈은 알고 있을 수가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좀 설명이 복잡하다. 시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일단 시상이라는 뇌의 부위를 거친다. 이 때 우리가 특별하게 주의를 하지 않은 정보들은 걸러진다. 그런데 역하 지각된 내용이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했다면 시상에서 걸러지지 않고 그렇다고 의식되는 것도 아니면서 대뇌 어디론가 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이런 과학적 의미에 비하면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했다는 광고효과는 사소한 것이다.
두 번째 설명과 관련된 사례가 축구시합 때 운동장 주변에 둘러쳐진 광고들이다. 게임에 열중하는 관객들은 이 광고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광고에도 자주 반복 노출되면 '반복발화'에 의해 광고된 브랜드에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이 경우는 비카리의 실험과 상황이 다르다. 관객은 운동장의 광고에 주목하지 않은 것이지 지각이 되지 않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필자가 요청받았던 모 방송국의 인터뷰는 심리학적 지식이 과장되게 해석되어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끈 또 다른 사례라 할 수 있다. 담당 PD는 매장의 좌측에 상품을 배치하면 매출이 늘어난다는 속설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상품을 좌측에 배치하면 감성적인 우뇌가 활성화되어 충동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는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흔히 좌뇌는 논리적이고 우뇌는 감성적이라고 단순화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감성과 관련된 뇌 부위, 예컨대 편도체와 같은 것은 대뇌의 좌우측에 모두 있다. 좌, 우뇌가 함께 감성적 정보를 처리한다는 말이다. 물론 감성적인 상태일 때 우뇌가 더 활성화되는 등의 특징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좌, 우뇌가 칼처럼 갈라져 우측은 감성정보를 처리하고 좌뇌는 이성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왼쪽 마케팅" 관련 서적이 제법 팔리고 있었고 방송국 PD는 이를 특집프로그램으로 꾸미려 기획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 홈쇼핑 채널에서는 가격과 같은 상품관련 정보를 획기적으로 화면의 오른쪽에 배치해 시청자들을 이성적인 좌뇌중심 상태로 유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충동구매가 줄어들어 반품률이 낮아졌다는 성공사례도 소개했지만 필자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간 이러저런 사정을 설명한 끝에 프로그램을 취소시킬 수 있었다.
나중에 해당 홈쇼핑에 확인해본 바 가격 등의 주요 정보를 오른쪽으로 옮겨 배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필요한 정보를 보기 좋게 배치하려고 한 일이지 좌, 우뇌의 기능차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한다(지금은 또 바뀌어 하단에 배치하고 있다). 물론 판매에 어떤 변화가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매장의 좌측에 상품을 배치하면, 예컨대 에스컬레이터 진행방향의 좌측에 상품을 배치하면 매상이 늘어난다는 속설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 좀 억지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심이 있는 상품이 좌측에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눈이나 고개를 돌려 상품을 두 눈으로 응시한다. 그래서 응시하는 대상은 두 반구 모두로 전달된다. 특별히 우측 뇌만 작동할 까닭이 없다.
백화점에 가보면 에스컬레이터의 좌측에 세일 상품들을 배치해 놓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건물의 구조 때문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굳이 뇌의 구조에서 이유를 찾는다면 다른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가 본 대상은 응시점을 기준으로 좌측 것은 우뇌에서, 우측 대상들은 좌뇌에서 처리된다. 그런데 오른손잡이의 경우 우뇌는 대상들의 전체적 특징들을 파악하는 데 우세하고 좌뇌는 작고 세밀한 정보들을 처리하는데 우세하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좌뇌는 작게 보고 우뇌는 크게 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이 사진이나 그림에서 주제가 되는 작고 세세한 대상들이 우측에 많이 배치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레비라는 신경생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아래 그림처럼 좌우가 뒤바뀐 사진들을 보여주고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 물어보면 오른손잡이의 경우 좌측 것, 즉 세밀한 대상들이 우측에 배치된 그림들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레비의 연구가 아니더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글자나 주제가 되는 작은 대상들은 대체로 우측에 배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각탐색의 방향이다. 처음 보는 장소를 둘러볼 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흐른다. 예컨대 교실 안이나 운동장을 둘러본다거나 산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감상할 때 좌측에서 우측으로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다. 매사가 그렇듯 시각에서도 먼저 큰 구조를 파악하고 세세한 것들을 처리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풍경의 전체적인 특징을 파악하려는 무의식적 동기가 생기는 순간 우측 시각피질이 활발해지면서 좌측시야에 대한 주의편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좌측을 보고 점차 우측으로 시야가 옮겨가게 된다고 추론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오른손잡이에서 두드러질 뿐이고 오른손잡이에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하여간 이런 이유 때문인지 카메라 교본을 보면 패닝이라는 기법을 역(逆)패닝과 순(順)패닝으로 나누고 있다. 순패닝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역패닝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카메라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향할 때 시선의 흐름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카메라맨들은 경험에서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대부분의 TV광고를 보면 좌측에서 우측으로 카메라가 이동하고 글자를 우측에 배치한다.
이를 역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역패닝을 하면 자연스럽고 안정된 시선을 유도하는 데는 불리하지만 다이내믹하고 순치되지 않은 움직임 혹은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하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도전적이고 활달한 사람이나 스포츠카의 광고에서는 역패닝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도그빌'이라는 영화의 장면이다. 배타적인 낯선 도시에 막 도착한 주인공과 주민들 간의 어긋난 마음을 연출하기 위해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느리게 역패닝 했다.
이렇게 디자이너나 미술가들이 사용하는 기법들에는 인간의 정보처리 방식과 잘 들어맞는 것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그렇게 획기적인 것도 아니고 대단한 유용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디자이너들이 이미 경험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기법과 정보처리방식이 잘 들어맞는다고 해도 그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아름다움과 같은 특정한 감성적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익히 알고 있던 기법을 더 깊게 이해하게 해주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디자인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아름다움과 같은 감성의 작동원리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답답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 학문과의 통섭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적 지식과 방법론을 개발하는 일은 작은 걸음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
'왼쪽 마케팅'이나 '역하지각광고'에서처럼 요술방망이 같은 획기적인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지식은 어느 분야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고 오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주변학문과 통섭하는 자세가 로또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는 듯한 것이어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는 '잠재의식광고'나 '왼쪽 마케팅'의 사례에서는 지식을 결정화하고 파편화하여 받아들이려는 태도도 발견할 수 있다. 지식을 받아들일 때에는 배후에 있는 전후 맥락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지식이 어느 정도의 진실을 갖고 있으며 나의 맥락에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응용할 수 있는지가 비교적 명확해진다.
다른 분야의 지식을 디자인에 맞게 가공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순수 심리학자들의 관점에서는 그런 상상력을 과학적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가짜 과학이라 할 만큼 기존의 과학적 사실과 상치되는 것이 아니라면 디자인에서의 유용성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명한 미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심리학과 역사를 같이 하는 미술심리학 분야가 다른 분야에 비해 발전이 더딘 이유로 지나친 계량화에 대한 압박을 들었다. 순수 심리학자들은 계량화를 위해 연구대상을 잘게 쪼갤 수 있었지만 미술심리학에서는 그러기 힘들다. 미술심리학의 주제를 계량 가능한 연구 단위로 잘게 쪼개기 시작하는 순간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에 대한 유용성은 기약할 수 없는 먼 미래의 것이 될 것이다.
물론 가짜 과학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과학적 엄밀성에 매몰되지도 않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디자인은 문화 혹은 예술과 과학의 접점에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말은 수정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짜과학과 진짜과학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줄타기를 하는 일을 예술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여간 디자인이 이런 것들을 감당하며 폭과 깊이를 더해갈 때 비로소 미래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과학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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