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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의 키워드는 '균형과 절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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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의 키워드는 '균형과 절제'다

[정상회담, 할 말 있다⑤] 평화와 통일의 'CVID'를 만들자

남북정상회담이 10월 2일로 연기됨에 따라 회담을 내실있게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상회담을 대선에 이용하려 한다는 우려는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회담이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가 이번 회담의 성격과 목표를 종합 분석한 글을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코리아연구원에 게재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코리아연구원 연구기획위원장이기도 한 박순성 교수의 이 글은 지난 13일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과 우리민족서로돕기 평화나눔센터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의 발표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다. 코리아연구원은 연구자, 정책전문가, NGO 활동가 등을 기반으로 한 싱크탱크로 외교안보 및 양극화와 관련한 정책대안과 국가전략 제시를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코리아연구원 바로가기) 연구원의 양해를 구해 글의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두 국가 사이의 정상회담은 그동안 전개되어 온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앞으로 전개될 양국 관계 발전의 기본 방향·목표와 정책의지를 밝히는 데에 일차적 의미를 둔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2차 남북정상회담도 이러한 정상회담의 일반적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실질적 진전을 이루는 노력을 하겠다'는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을 강조하면서도 이 두 가지 목표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대화의 시작'을 제시한 것도 동일한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드러난 이러한 신중함이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잘 반영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에서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의제, 쟁점 등을 글의 짜임새로부터 좀 자유로운 방식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한반도 정세 관련 불균형의 해소와 남북관계 발전의 새로운 동력 형성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남북관계는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특히 2002년 10월 부시 행정부의 주도로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면서 북-미 갈등의 볼모가 되고 말았다. 남한이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던 남북관계 발전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던 한반도 평화 증진의 시기는 끝나고,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반도는 핵무기 비확산이라는 국제적 안보레짐이 도전을 받는, 따라서 군사적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잠재적 분쟁 지역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자연히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남북 중심의 평화·협력 논리를 벗어나 국제안보정치의 논리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6자회담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등장하였다.

이처럼 2차 북핵위기 때문에 북-미 갈등이 한반도 정세를 좌우함에 따라, 그리고 6자회담이 북핵위기와 북-미 갈등을 해결하는 국제적 협상의 장이 됨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통일 정세는 다소 기형적으로 전개되었다. 우선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서 남북 당사자의 주도적 역할보다는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군사·안보 현안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남북관계 발전에서도 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진전이 이루어지지만 군사·안보·정치 분야에서는 진전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군사·안보·정치 분야 관계 개선의 지체가 경제·사회·문화 분야 관계 개선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결과도 낳았다. 끝으로 남북관계 발전에서 민간 차원과 정부 당국 차원 사이에 일정한 괴리가 존재하게 되었다.

최근 6자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와 그 이후의 합의 실천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남북관계 발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평화·통일에서 남북의 주도적 역할이 위축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았다. 따라서 이러한 불균형의 해소가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였으며,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에로 확대 발전"(2차 정상회담 합의서)시킬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통일 정세에서 발생한 불균형을 바로잡는 주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개선된 국제환경의 변화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통일 정세를 남북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국내·외에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국제환경의 변화보다 한 걸음 앞서가는 모습을 남북의 정상이 보일 때,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서 남북한의 발언권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통일을 남북이 주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남북정상 사이의 상호 이해를 통한 정치적 신뢰 증진 및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의 확인은 남북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통일을 향한 평화'를 확인하는 '남북 평화선언'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될 공동합의문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평화선언'의 성격을 띠는 것이 적절하다. 해석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6·15공동선언은 '통일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공동선언에 분명하게 명시된 통일원칙의 확인과 남북한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은 인도적 문제 해결, 교류협력의 활성화 등에 대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두 정상이 '평화적 통일'에 강조점을 두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평화적 통일'의 과정에서 '평화'가 일차적 가치가 될 수밖에 없으며, '평화'가 현재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대내·외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2차 남북정상회담의 첫 번째 성과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남북정상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 되어야 한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핵위기 해소와 북미관계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2차 남북정상회담 역시 '통일회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정착'을 핵심 의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하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남북 두 정상은 현 단계 민족사의 핵심 과제인 민족통일 문제에서 한 단계 높은 성취를 달성하고 싶어 할 것이다. 사실 정상회담 합의서에서도 남북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뿐만 아니라 '조국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 정상은 남북이 통일과정에서 한 단계 높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였음을 선포하는 역사적 순간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의 근본 쟁점은 평화문제(군사·안보문제)와 통일문제(민족문제)로 구분되어 왔다. 좀 거칠게 말해서, 전통적으로 남측은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강조해 왔으며, 북측은 남측과의 협상에서 전 분야에 걸친 포괄적 접근을 강조하면서도 '군사·안보문제는 미국, 민족문제는 남측과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담 합의서에서 남북이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한 것은 북측의 기존 입장과 관련해서 상당히 진전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과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국면'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남북 정상이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난 7년간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또한 현 단계 남북관계의 성격과 과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해결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만일 남북이 그동안 6·15공동선언의 합의에 따라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입각해서 통일로 향한 노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한다면, 남북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연합 또는 낮은 단계 연방으로의 진입'을 '남북관계의 보다 높은 단계' 또는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으로 설정하는 데에 합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2차 남북정상회담 역시 통일회담이 되면서, 자주와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공동선언문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와 달리, 두 정상이 현 단계 남북관계를 '화해는 상당 정도 진전되었지만, 협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남북 정상은 현 단계 남북관계 과제를 '실질적인 협력단계 진입'으로 설정하고, 협력의 양적·질적 발전을 위해 군사·안보 분야에서 한 단계 높은 관계개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자연히 2차 남북정상회담은 '안정적 협력을 위한 평화회담'의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통일회담·선언과 평화회담·선언이 성격에서 분명 차이가 나고 현 정세에서 평화회담·선언이 더 시의적절하다고 판단되지만, 남북정상이 반드시 이분법적 구분에 기초하여 평화회담·선언을 추구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평화회담·선언을 강조할 때, 그 근본 취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상관관계, 또는 연속성을 동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남북이 한반도 평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의지가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명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통일 문제도 남북이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역량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사실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이 분리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를 통해서만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은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는 남북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평화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결국 회담과 선언의 성격 차원에서 바라볼 때, 2차 정상회담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공존과 협력증대를 통한 실질적인 통일과정의 제도적 정착'이라고 하겠다. 만일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한반도에서의 '적극적 평화'의 실천이라고 할 이러한 목표를 분명히 천명한다면, 남북 모두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일정한 정책적 자율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남북 평화선언'은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 번영, 조국통일이라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들 사이의 상호 연계성과 균형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안보의 CVID'에서 '평화·통일의 CVID'로

2차 북핵위기 이후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안보담론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요구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에 기초한 안보만이 현실적이라는 미국의 패권적 안보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관·안보관은 반제·선군사상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의 대미관·안보관과 정면으로 충돌하였으며, 미국과 북한 사이의 갈등 관계는 쉽게 풀릴 수 없었다. 아울러 양국의 안보관은 한국 정부의 안보관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한반도 정세는 안보담론이 지배하는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제 2차 남북정상회담은 2·13합의가 실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안보담론의 지배로부터 한반도가 벗어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공존과 협력증대를 통한 실질적인 통일과정의 제도적 정착'이라는 2차 정상회담의 목표는 남북관계에서 '포괄적이고 실행 가능하며 상호 이익에 기초한 발전(Comprehensive, Viable, Interest-based Development)'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도록 만드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안보담론의 지배가 끝나고 평화·협력담론이 우위에 서게 될 때, 평화통일의 과정은 되돌릴 수 없을(irreversible) 것이다.

평화와 협력, 통일을 추구하는 남북관계의 CVID에 대해 간단한 두 가지 주석을 달아두자. '실행 가능성(viability)'은 한편으로는 정책 목표의 현실성과 관계 발전의 지속성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 강대국의 개입으로부터 자율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방어할 수 있는(veto-proof) 남북간 상호신뢰 확보를 의미한다. '상호 이익에 기초한(interest-based)' 남북관계 발전은 남북경협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상호 이익의 증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최근 많이 강조되고 있는 '남북경협이 남한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연결된다.

'남북 평화선언'과 6자회담, 북핵문제

한반도 평화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쟁점들이라고 할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 또는 통일을 향한 평화, 북핵위기를 둘러싼 북-미 갈등의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그리고 동북아 지역전체의 군축과 협력안보 등은 한반도 평화의 복잡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남북 평화선언'은 이러한 한반도 평화의 복잡한 내용 중에서 남북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한정해서 남북 정상이 국제사회에 분명한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구태여 '한반도 평화선언'이라는 표현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 그러한 표현을 용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당연히 사용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 차원에서 남북 정상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두 가지 문제를 다루어보자. 하나는 한반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의 관계이고, 또 하나는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관계이다.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은 과정과 성과에서 분명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분단의 역사에서 볼 때, 민족의 자주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비록 지구공간정치에서 한반도 질서가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남북이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책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의 안정적 보장을 위해 동북아 평화에 대해서도 남북이 일정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남북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남북 평화선언'을 채택한다면, 이는 한편으로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남북의 정책적 자율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평화로부터 동북아 평화로 나아가려는 남북의 정책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북 평화선언'은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6자회담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더욱이 '남북 평화선언'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채택되었던 화해와 불가침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또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통해 한반도의 통일을 넘어 동북아의 협력에 기여할 것임을 밝히는 내용을 담는다면, 장차 실현될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한반도 평화선언' 또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질적인 내용은 남북 또는 한반도 내부 차원에서는 이미 확보한 것이 된다.

'남북 평화선언'은 남북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국제사회에 천명하는 선언이기 때문에, 단순한 불가침 선언을 넘어서 '한반도의 궁극적 평화를 위해 통일을 지향한다'는 내용과 '평화 증진을 위해 군사 분야 협력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군사 분야 협력의 핵심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신뢰 관계 구축, 중장기적인 군축 등이다. 이런 관점에서 남북 정상은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한층 진전된 합의를 도출하거나 북핵포기의 선언적 재확인을 이루는 데에 만족하지 말고,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 또는 비핵지대화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남북간 군사적 신뢰 관계 구축과 군축을 실질적으로 다루어나갈 제도적 장치(국방장관 회담의 정례화, 또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가동)를 마련하는 데에 합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북 정상이 이러한 정도의 합의를 이룬다면, 이는 6자회담의 성과를 내용적으로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제협력 분야에서 퍼주기논쟁을 넘어선 질적·양적 도약은 가능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민족공동 번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문구를 경제협력과 관련된 조항에 담아야 한다. 6·15공동선언이 경제협력과 관련하여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강조하였다면, 2차 정상회담의 합의문은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는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3장 15조)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경제협력과 관련한 부분에서 '민족경제의 통일적 발전'을 강조한다면, '남북 평화선언'은 자연스럽게 평화선언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통일선언의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을 한 단계 진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언급해 두자. 먼저 지금까지 강조되어온 '선 북한 개혁개방, 후 남한 대규모 경제지원'의 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이미 북한 지도부는 개혁개방정책을 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경제체제는 실질적인 체제 전환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으로 다양한 새로운 사업의 제안·합의·추진도 중요하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경협 사업의 규모를 확대하고 속도를 증진시키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끝으로 경제협력의 제도적 차원에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명칭을 남북경제협력이 한 단계 발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명칭(예를 들면,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또는 민족경제발전공동위원회)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대 근본문제는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

2005년 이후 북한이 남북관계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할 정치·군사 부문의 문제로 제기한 서해 해상경계선 설정,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또는 주한미군 철수, 참관지 제한 철폐, 국가보안법 철폐 등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군사 문제는 분단 상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본질적으로 '국내 정치의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남북 정상이 4대 근본문제에 대해 신중하지만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노력을 하겠다고 합의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서해 해상경계선 설정과 한미군사합동훈련 중지 문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또는 국방장관회담에서, 참관지 제한 철폐 및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는 '남북화해공동위원회' 또는 '남북법률실무협의회'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근본문제 해결 노력 자체는 남한 사회 내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서해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는 한반도 평화에 직접 관련된 문제이다. 다른 모든 문제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해상경계선 설정은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에 충실하게 입각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관련 부속합의서에 명시된 것처럼, 해상경계선은 지상경계선과 다른 성격을 지닌다. 잠깐 이를 살펴보자.

제9조 남과 북의 지상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제10조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10조에 대한 해석이 매우 상이할 수 있겠지만, 9조와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이 조항의 기본 전제는 '해상경계선은 아직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과 '쌍방의 현재 관할 구역을 서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쌍방 관할 구역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인데, 최근 북측은 남측의 '합참 작전통제선 구역'까지를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합참 작전통제선이 대체로 북방한계선(NLL) 이남 10km 지점이라는 사실이다. 영토와 안보에 관한 복잡한 논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기본 방향만을 간단하게 제시한다면, 남북은 해상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의 문제를 평화와 협력의 원칙에 기초해서 협의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하여 보수진영은 남북관계에서 무조건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영토 논리'에 집착하지 말고, 정전협정과 기본합의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북한이 주장한 4대 근본문제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남한 사회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남북 정상이 일정한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1차 정상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에 합의하였던 전례에 비추어, 2차 정상회담에서 남측이 제기하는 인도적 사안에 대해 북측이 성의를 보인다면 남북관계 진전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 때문에 민족구성원을 포함하여 모든 관련된 사람들이 겪었고 또한 현재도 겪고 있는 고통을 남북 정상이 함께 인정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다면, 그보다 더 좋은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대선으로부터 중립적인 남북정상회담은 가능한가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는 지금까지 모든 정권의 주요 정책 영역·과제 중의 하나였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반공과 안보의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초반부터 통일담론·정책은 모든 정권의 핵심 관심사항 중의 하나였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는 통일방안과 대북정책이 국민적 지지를 얻는 주요 정책수단의 하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2차 정상회담의 개최 및 결과와 관련하여 '완벽한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현재 남한 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대선 과정에서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2차 남북정상회담'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개념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가능한가? '정쟁'을 비생산적·파괴적 정책논쟁이라고 한다면, 비현실적인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정쟁'을 피하면서 평화·통일 문제를 '올바른 정책경쟁' 또는 '민주적 수권 경쟁'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평화·통일 문제가 2007년 대선에서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과제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형태로 던져질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의미가 있는 질문이다.

만일 현재 우리 사회에서 평화·통일 문제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면, 평화·통일 문제는 제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미래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나 전망에 기초해서, 평화·통일 문제에 대해 적절한 비중을 부여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지적·감성적 능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면, 우리는 일반 국민, 여론주도층, 전문가, 언론, 정치권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무엇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진정한 의제인가'를 현명하게 판단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2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정부와 여권은 국민적 합의 수준이나 여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실, 성공적 개최만으로도 현 정권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야당과 보수진영은 국민들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바람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정책기조를 선택하고 대정부 협력과 견제를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나친 견제가 오히려 정치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적절한 협력을 통해 성과를 나누어 갖는 전략이 유리할 수 있다.

몇 가지 우려를 넘어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의미 부여와 낙관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요인을 극복해야 한다. 남한 사회 내부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정쟁적 상황',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북한 지도부의 북미협상을 겨냥한 공세적 회담 전략, 그리고 그에 대응한 미국의 대북·대남 압박 등이 우려되는 요소들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실패를 대선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남한 정치권의 전략은 노무현 대통령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으며, 남한 대통령의 협상력 저하가 북한 지도부의 공세적 태도 및 미국의 견제와 결합될 경우 정상회담의 성과는 예상할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의 수재로 10월 초로 연기됨으로 해서, 한편으로는 회담 준비에 여유가 생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내·외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발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정상회담 일정이 대통령 선거일에 더욱 가까워졌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대선 국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과 대선 국면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우리 정부는 국내·외 정세와 우리 사회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지나친 목표 설정으로 잘못된 결과를 낳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과도한 의욕은 논란과 정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회담의 성과를 희석시킬 가능성도 있다. 참여정부는 실질적 내용에서는 큰 성취를 추구하면서도, 선언과 형식에서는 절제를 통해 야당과 일반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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