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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병력증파도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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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병력증파도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라크 현장리포트ㆍ①]반군 공격과 종파간 분쟁 공포만 가득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주둔 미군을 하루빨리 철수시키라는 국내외 여론을 일축하고 지난 2월 '2만 명 병력 증파'라는 최후의 승부수를 띄운 지 6개월이 다 돼간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 13일 발표된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미국민 가운데 64%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병력 증파 계획은 실패했다"고 답변할 정도로 미국 내 여론을 싸늘히 식어가고 있다.

마침 영국의 <인디펜던트>의 전쟁전문기자로 이라크 전쟁에 관한 독보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패트릭 콕번이
소위 '병력 증파'(the surge) 전후 이라크 현지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생생한 장문의 리포트를 써냈다.

콕번은 이 기사에서 부시 대통령이 지난 2003년 5월1일에 사실상의 종전을 선언한 이라크 전쟁이 이미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병력 증파' 이후에 이라크 치안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주장이 허구에 가득찬 것임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콕번은 우선 미 국방부 통계를 인용, 지난 6월 기준으로 미군과 이라크군, 시민군, 기반시설 등에 대한 공격이 하루 평균 177.8회로 2003년 5월 말 이후 월별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바그다드를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콕번은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 알카에다 등 수니파 반군들의 공격에 시달리다 못한 미군이 자체적으로 수니파 민병대를 양성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실정을 폭로하기도 했다.

또한 콕번은 결국 실패로 끝난 새로운 전략에 대해 부시가 아직도 기대하는 것은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점을 늦춰주는 효과 뿐이라고 분석했다.

부시가 실패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에게는 재앙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을 내세워 미군 철수를 대선 이후까지 연기할 수 있다면, 네오콘들은 승리가 목전에 와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군대를 철수시키려 한다고 민주당의 등에 비난의 칼을 꽂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지난 7일 <인디펜던트>에 실린 '병력 증파: 데이비드 콕번의 스페셜 리포트'(The surge: a special report by Patrick Cockburn)의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전문 번역본을 2차례에 걸쳐 나눠 소개한다.<편집자>
▲ 이라크 경찰의 검문검색을 돕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는 미군들.ⓒ로이터

이라크 전쟁은 올여름 들어 상당한 의미가 있음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기념일을 보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3년 5월1일 사실상 끝났다고 선언한 이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

거의 1세기 전에 있었던 대전쟁처럼 이라크 전쟁에서도 "상황이 나아지고 있으며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주장이 늘 반복되기는 마찬가지다.

1917년 프랑스군 총사령관 로베르 니벨은 "승리의 방책을 갖고 있다"면서 프랑스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으나 궤멸당했다. 전선으로 투입 명령을 받은 부대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동물의 처지가 되자 거세게 항의하다가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다.

지난 1월10일 부시 대통령도 '승리의 방책'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과시했다.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소위 '병력 증파'(the surge)라는 새로운 이라크 전략을 발표했다. 그는 이라크에 2만 명의 미군을 추가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니벨 장군처럼 부시 대통령도 오판에 물든 열정을 갖고 기존의 바그다드 안정화 정책이 실패한 이유와 새로운 전략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예전에는 미군과 이라크군이 반군을 소탕한 뒤 철수하면 반군이 다시 돌아왔는데, 앞으로는 미 연합군이 계속 주둔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적과 충분히 마주치지 못한 듯이 부시는 이란과 시리아를 반군을 지원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했다. 그는 "이란과 시리아는 테러리스트들과 반군이 이라크를 넘나들도록 그들의 영토를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이란은 미군 공격을 위한 물자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지난 1월23일 국정연설에서 "시아파 극단주의자들은 미국에게 (알카에다만큼)적대적이며, 중동을 지배하려고 작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미군이 이라크 민족주의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강력한 시아파 무장단체 메흐디 민병대를 제거하기 위해 그들의 근거지로 200만 명의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살고 있는 사드르 시티 같은 지역에도 들어갈 것임을 의미했다.

지난 2월 중순 미군의 증파가 개시된 지 6개월이 지난 후 이 작전은 1차 세계대전의 수많은 공세작전처럼 참담하게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력 증파 후 오히려 반군 공격 사상 최고치로 증가

미 국방부는 지난 6월 기준으로 미군과 이라크군, 시민군, 기반시설 등에 대한 공격이 하루 평균 177.8회로 2003년 5월 말 이후 월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바그다드를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매일 아침 거두는 시체들의 숫자는 작전 초기에는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했다. 대부분의 시아파 자살부대를 공급하는 메흐디 민병대가 사드르의 명령에 의해 해산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다드에서 그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부시가 뭐라고 말하든, 이라크 주둔 미군 지휘관들은 수니파에 대한 진압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메흐디 민병대와 시아파 거주지를 공격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병력 증파 작전도 지난 52개월 동안 미군이 (뒤따라 얼쩡거리던 영국과 함께) 이라크에서 실패로 끝난 성공의 방책과 꾸며낸 승리의 전환점 목록에 추가되는 모양새다.

2003년 12월 사담 후세인이 체포됐다. 6개월 뒤인 2004년 6월 이라크의 주권이 회복되었다. 부시는 "자유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며 한껏 고양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지껏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미국의 허락 없이는 몇 명의 병사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라고 한탄하고 있다.

2005년 시아파와 쿠르드 정당이 낙승을 거둔 두 번의 선거가 있었다. 부시는 "백주대낮에 살해위협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1200만 명의 이라크 주민들이 희망과 연대를 찾아가는 모습으로 투표에 임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그 감동을 금세 잊어버렸다. 1년 뒤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초대 시아파 총리 이브라힘 알-자파리를 축출했다. 당시 미국의 잘마이 할릴자드 이라크 대사는 "부시는 자파리가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으며,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새로운 구상을 펼치면 그때마다 6개월 정도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이번 병력증파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할 무렵 안바르 주에서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수니파 부족들이 알카에다에 대항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알카에다가 이라크 이슬람국가로 불리는 반군 산하조직을 설립하는 등 지나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수니파 지역에서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이유로 청소부를 살해하거나, 덮개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살해했으며, 한 집에서 젊은 남자 한 명씩을 병사로 차출하려 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수니파 부족 민병대가 라마디 같은 반군 거점에 있는 알카에다와 싸우자 이 곳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알카에다의 공격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미 행정부는 이런 양상을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았을 수도 있었다. 이라크에서의 반란은 알카에다가 주로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이라크 전문가 앤서니 코즈먼은 자살폭탄 공격의 80~90%는 알카에다의 소행이지만 이라크 전체에서 벌어지는 공격에서 알카에다의 비중은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수니파 정권 축출 후 수니파 민병대 양성하는 미국

미 백악관이 사태 진전의 조짐으로 내세우는 이라크의 여러가지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수니파 부족 민병대를 모집하는 것도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사실 위험을 동반한 전술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내무부에 따르면 수니파 민병대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경찰은 갈수록 더 많은 시체들을 발견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단순히 시아파 주민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많다.
▲ 반군의 총격을 받고 긴장 속에 대응 사격에 나선 이라크 주둔 미군. ⓒ로이터

수니파 부족 민병대원들은 미군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미국이 강화하려는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 정부와 군, 경찰의 권위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수니파 민병대가 저지르는 잔인한 장면이 휴대폰에 찍혀 이라크 웹사이트들에 게시되기도 했는데, 이 영상물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겁에 질려있는 조그만 몸집의 남자 한 명을 총을 든 남자들이 수갑을 채우고 때리면서 차에서 끌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지휘자로 보이는 한 남자는 잡혀 있는 남자에게 '할리드'라고 불리는 사람을 그가 죽였는지 자백하라고 다그쳤다. 몇 분 뒤, 그는 두 남자에 의해 끌려가 쓰레기 투기장에서 가슴에 총알 세례를 받고 처형되었다.

이것은 백악관이 병력 증파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니파 전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 중에는 1920 혁명여단과 이슬람군처럼 반미 저항조직 출신들이 적지 않은데, 부시는 지난 4년 동안 이런 조직들을 이라크 국민의 적인 살인집단이라고 맹비난해 왔다.

이라크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시아파와 쿠르드 주민들 앞에서 미국은 자체적으로 수니파 민병대를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전을 방지(미군이 이라크에 주둔하는 주된 명분)하기는커녕 미국은 이라크를 분열시킨 살륙에 가담한 분파주의 살인자들을 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은 아직 병력 증파가 성공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기라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장군과 라이언 크로커 이라크 주재 대사가 다음달 제출할 치안보고서를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새로운 전략이 이라크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전략이 부시에게 가져다 주는 주된 효과는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점을 늦춰주는 것이다. 부시가 실패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에게는 재앙이 되는 일이다. 따라서 미군 철수를 대선 이후까지 연기할 수 있다면 네오콘들은 승리가 목전에 와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군대를 철수시키려 한다고 민주당의 등에 비난의 칼을 꽂을 수 있을 것이다.

부시가 병력 증파 계획을 담은 국정연설을 한 지난 1월, 필자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이라크인들은 처음부터 병력 증파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이스말리라는 한 친구는 어두운 표정으로 "1만 6000명 정도 증파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니파인 그는 당시 바그다드 서쪽에 있는 그의 집에서 빠져나왔는데, 대부분의 수니파 주민들처럼 그는 제복을 입은 시아파 자살부대로 여겨지는 무장요원들에게 체포돼 고문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종파간 분쟁으로 공포에 질린 이라크 주민들

바그다드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운전수들은 임시검문을 받을까 공포에 떨었다.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차에서 끌려나와 살해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바그다드는 온통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하는 얘기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상황에 따라 수니파나 시아파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도록 적어도 가짜 신분증 하나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신분증만으로는 충분한 대비가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일부 시아파 검문소는 주민들을 심문하기 위해 신학자가 작성한 종교적 질문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미군과 이라크군이 수도 중심부조차 거의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린존 북쪽 수니파 거리인 하이파 스트리트는 미군이 장악하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한 곳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안회사 블랙워터 소속 헬리콥터가 격추되었는지 바그다드 중심지인 알-파드힐 지역에 떨어졌는데, 반군은 미군이 그들을 잡으러 오기 전에 생존자들을 처형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적 분쟁은 알카에다 자살폭탄대원들이 수니파 주민들을 표적으로 삼았던 2003년 8월에 시작됐다. 그 후 2년에 걸쳐 이 분쟁은 격화되었지만, 바그다드에서 시아파가 수니파를 며칠 만에 1300명을 살해한 대학살을 불러일으킨 것은 2006년 2월22일 사마라에 있는 시아파 사원을 파괴한 폭탄이 터진 사건이었다.

두 종파가 이후 바그다드를 장악하려는 투쟁을 벌인 끝에 지난 1월 무렵에는 시아파가 거의 장악했었다. 살아남은 몇몇 수니파 친구들은 메흐디 민병대로 통칭되는 시아파 무장대원들이 남아있는 수니파 거주지들을 완전히 소탕하는 '최후의 바그다드 전투'를 전개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라크 주둔 미국의 취약점은 항상 자기들의 힘은 과대평가하면서 적의 힘은 과소평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쿠르디스탄을 벗어나면 미군이 의지할 우군이 없다. 시아파건 수니파건 이라크 아랍인들은 미군의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최근 미군이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반군이 미군 병사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한 무기들 대부분이 미국이 이라크군에 공급한 최신식 무기들이라는 충격적인 결론이 나왔다. 이들 무기들은 반군에게 빼돌려졌거나 팔린 것으로 추정됐다.

미군 지휘관들은 발 밑에서 땅이 꺼져가고 있는데도 스스로의 선전에 도취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그다드 북서쪽 주도인 바쿠바에서 미군과 이라크군 지휘관들은 화상 회의를 열고 그들의 전과를 자랑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들은 일부 언론들의 비관적 전망을 일축하면서 "바쿠바의 상황은 고무적이며, 통제되고 있는데도 나쁜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자화자찬하는 이런 소리에 역겨웠는지 수니파 반군들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쿠바로 쳐들어와 시장을 납치하고 관사를 폭파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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