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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남미의 마지막 보루' 파라과이 너마저…"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68> 페르난도 루고는 누구?

전통적으로 친미를 바탕으로 한 군부와 보수우파 정치세력이 1세기 가까이 득세했던 파라과이에 좌파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와 칠레, 우루과이에 뒤이어 파라과이에서도 군정의 과거사청산이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했다.

파라과이의 '진실과정의위원회'(CVJ)는 최근 군정 당시 인권유린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선언하고 증인 2000명 확보 운동에 들어갔다. 파라과이는 독재자였던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너 장군의 35년간 철권통치 기간 동안 약 40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실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친미파 장교였던 스트로에스너는 1954년 5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미국 정부와 세계은행 등 서방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아 고질적인 환율불안을 막고 경제를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그는 좌파 정치인들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정부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해 '남미판 소모사 정권'이라는 악명을 남겼다.

35년간 공포정치를 폈던 그도 자신의 추종세력이었던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에 밀려 1989년 2월 브라질로 망명을 떠난다. 장기 독재정치 청산과 부정부패 척결이 군사 쿠데타의 명분이었다. 스트로에스너는 믿었던 부하 장군들에게 배신당해 권좌를 빼앗겼지만 35년 동안 치부했던 2억 달러 이상의 돈을 챙겼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현금 재산을 소유한 그였지만 고령으로 인한 병마를 이기지 못해 망명지였던 브라질에서 지난 2006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칠레가 피노체트의 생전에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듯 파라과이 역시 스트로에스너가 8번에 거쳐 장기집권을 했고, 60여 년 동안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재정권에 대한 과거청산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군정 당시 사망 실종된 피해자 가족들과 좌파 야당 정치인들, 인권단체들이 과거 청산을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과거 청산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것이다.

파라과이 의회는 군정 당시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 지난 2003년 '진실과정의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여권의 압력과 스트로에스너 지지자들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된 조사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론과 정치권의 분위기가 과거사 진실규명 쪽으로 바뀌면서 '진실과정의위원회'의 활동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최근 1350여명의 증인들을 만나 군정 당시 자행된 인권유린에 대한 실상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청산 위해 정권교체 이루어야'

파라과이의 군정 당시 과거청산이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하자 남미 현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좌파 정치세력들과 야권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전직 주교이자 대선 후보인 페르난도 루고다.
▲ 파라과이 대선에서 승리가 유력시 되는 페르난도 루고 후보 ⓒ아르헨티나 <인디미디어>

루고 후보는 1951년 5월 30일, 군정에 반기를 든 야당 성향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이었던 기제르모 루고는 반정부활동 때문에 수차례에 걸쳐 투옥 되는 등 파라과이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었다.

1970년 파라과이 가톨릭대학에 진학한 루고는 1977년 신부 서품을 받아 에콰도르로 파송됐다. 루고는 에콰도르 현지에서 원주민들과 농부들의 비참한 생활과 인권유린 상황을 목격하고 '억압받는 자의 해방을 위하여 혁명운동에 적극참여 해야 한다'는 해방신학 이론에 눈을 뜨게 된다.

1982년 파라과이로 돌아온 루고는 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로마로 유학, 종교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주교로 임명된 그는 본격적으로 빈농 돕기와 빈민촌 구호사업에 뛰어든다. 이때부터 그는 60년 동안이나 여당이었던 콜로라도당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면서 정권교체를 주도한다.

극빈자 돕기와 부정부패 추방에 앞장서던 루고 신부는 성직자라는 직분에 한계를 느끼고 2006년 12월 주교와 신부라는 성직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정치가로서의 활동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물론 로마 교황청과 파라과이 천주교 본부는 그의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는 하다. 이는 파라과이 선거법에 천주교 신부는 대통령이나 부통령에 출마할 수 없다는 조항을 염두에 둔 조처라는 평가를 받는다. 교황청이 그의 정치활동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루고는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성직자가 아닌 정치가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최근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오는 2008년 4월 파라과이 대선에서 승리를 염두에 둔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가 아르헨티나에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르헨 거주 파라과이인들의 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중남미 대다수국가들은 해외거주 교민들에게도 대선과 총선 투표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25만 명 이상의 아르헨 거주 파라과이 이민자들이 영주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르헨 정부에 사의를 표하고 파라과이 교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협조를 부탁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를 두고 파라과이 이민자들의 숫자가 파라과이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라는 평가하기도 했다.

남미 전체 '좌파집권시대' 오나

루고 후보는 파라과이 국내 극빈서민들과 농민들, 그리고 신세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그가 추진 중인 '청년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운동은 파라과이에서 장래를 보장받지 못해 해외로 떠돌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국 파라과이를 재건하자'는 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파라과이 전역을 휩쓸고 있는 그에 대한 인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야권과 시민단체들의 루고 후보에 대한 지지성명이 줄을 잇고 있다. 또한 최근 파라과이 현지 언론들인 <ABC꼴로르>, <라 나시온> 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루고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57.6%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라과이 민심은 이미 루고 후보의 승리와 정권교체를 대세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아르헨티나 등 남미 대다수 언론들도 루고가 오는 2008년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 6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어낼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는 남미 전체가 좌파정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만일 파라과이까지 좌파정치인이 집권한다면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예에서 보듯 군정의 과거청산이 어떤 식으로건 매듭이 지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져 나올 독재자 스트로에스너와 미국과의 유착관계가 군정 피해자 가족들을 자극해 반미감정을 유발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미국은 남미의 마지막 보루이자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던 파라과이마저 친미에서 반미국가로 바뀌는 것을 지켜봐야할 상황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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