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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문화와 특권의식이 브라질 정치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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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문화와 특권의식이 브라질 정치를 죽였다"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65> 어느 상원의원의 고백

밑도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브라질 정치권과 행정부의 부정부패 사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가족과 관련된 비리 의혹을 두고 "브라질 정치권은 이미 사망했다"는 평가가 브라질 상원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크리스토밤 보아르케(Cristovam Buarque) 상원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브라질 정치권은 붕괴된 건물 안에 묻힌 사망자와 의식을 잃은 피해자들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라는 글을 올려 부정과 담합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질타했다.

보아르케 의원은 룰라 정부의 핵심 부처인 에너지부의 실라스 론데아우 장관이 국책사업 입찰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의혹을 받고 사퇴했으며, 레난 칼례이로스 상원의장은 건설업체 관계자로부터 뇌물을 받아온 혐의로 상원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칼례이로스 상원의 장은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직권을 남용하고 있는데도 동료의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브라질 정치권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보아르케 의원의 글을 요약한다. 보아르케는 브라질리아 연방지구 주지사를 거쳐 룰라 행정부에 입각,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그는 브라질 연방 상원의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 크리스토밤 보아르케 브라질 상원의원 ⓒ브라질 상원

"건물이 붕괴되어 그 안에 갇힌 피해자들 중 사망자들이나 의식을 잃은 부상자가 구조의 손길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이는 아주 불행한 일이다. 그들을 구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불행한 사태가 브라질 상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브라질 정치권은 각종 부정부패로 인해 마치 붕괴된 건물 속에 파묻힌 형국인데도 상원은 의식을 잃은 피해자들이나 사망자들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브라질 상원의 최대무기는 국민들에 대한 신뢰였다. 그런데 현재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권과 상원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동료 의원들간에도 서로 그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국민들은 이미 드러난 정치권의 부정 혐의와는 별도로 정치권 전체가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들 대다수가 상원 윤리위가 부패한 동료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상원 윤리위는 부정부패에 연루된 의원들을 철저히 조사해 그 몸통을 밝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반대와 위협에 굴복, 수박겉핥기식의 조사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된 상원 의장의 경우 한술 더 뜨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상원 의장은 자신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무를 상원을 올바르게 이끄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비리를 감추는데 활용하고 있어 의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런대도 상원은 칼례이로스 상원 의장의 직권남용을 묵인하고 있다. 최소한 비리 조사기간 동안만이라도 그의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폐허 속에 파묻힌 피해자들이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든 의혹에 초연하는 윤리위가 필요하다. 또한 윤리위 위원들은 과거가 깨끗하고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가진 인사여야 한다. 신뢰와 도덕성을 겸비한 깨끗한 의원이 이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의장이나 다른 동료들의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브라질 정치권의 붕괴는 상원 의장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원 모두의 책임이다. 정치권의 부정부패 문제와 이로 인한 사임 사태 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그렇다고 마지막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정치권 내에서 지속적으로 부정부패 의혹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상원의 위기는 몇몇 의원들의 부정의혹과 이미 밝혀진 증거의 냄새만 풍기는 게 아니다. 일부 양심 있는 의원들은 브라질 정치권은 붕괴된 건물에서 나는 '악취'를 연상시킨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썩은 악취를 풍기며 브라질 의회는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윤리위는 부정을 척결할 의지가 부족하고 그저 일정에 쫓겨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낼만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브라질 상원은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 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원은 단순한 정치활동에 억매이고 당면한 문제 해결에만 집착, 국가 장래에 대한 정책을 전혀 내놓지 못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브라질은 귀족 엘리트층들과 극빈자라는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상원은 '의원님'이라는 존칭보다는 '각하'(Excelencias)라는 왕정 시대의 호칭을 즐겨 일반 국민들과 차별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특권의식들이 우리의 타락을 부추겼고 부정부패로 얼룩져 정치권 전체가 악취를 풍기게 된 것이다. 상원은 120년 전 세워진 민주공화국을 그대로 이어받지 못했으며 이를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우리는 정치권이 부정부패로 인해 붕괴되고 있었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민주공화국의 기초부터 다시 세우고 새로운 정치체계를 잡아가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브라질 상원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만연된 부정부패로 인해 이미 붕괴된 건물 안에 묻힌 시체들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 정치권은 모두가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부패로 인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 상원의장을 억누르고 있는 뇌물 사태보다 더 심각한 건 전체의원들의 도덕성 결여다.

이미 관행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세비 외의 비공식 '봉투'(집권당이 각종입법 활동에서 야당의 표를 사오는 대가로 지불하는 정기적인 뇌물성 돈봉투) 등 상원의 부패는 동료 의원들간에도 악취가 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상원의 윤리위원회는 이런 부정들을 조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 이다.

상원 윤리위는 이제부터라도 악취를 풍기는 정치인들의 거짓증언들을 밝혀내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들을 사법의 준엄한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이 길만이 브라질 정치권이 잃어버렸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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