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카스트로 "미국의 본성은 파괴와 혼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카스트로 "미국의 본성은 파괴와 혼돈"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64> 마이크 대신 펜 잡은 카스트로

자신을 살해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던 미 중앙정보국(CIA)요원들을 향해 '살인기계' 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이번에는 지난 1961년 미국의 피그만 공격 당시의 비사와 미국이 쿠바와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행된 미국의 만행을 일일이 열거한 자서전 형식의 글을 쿠바일간지에 기고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가 모든 인간에게 여러 가지 포기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창조주가 우리에게 부여한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 행복을 누릴 권리가 포함돼있다…."

1776년 선포된 미국독립선언서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 카스트로의 기고문은 "미국 정부는 탄생 때부터 힘을 바탕으로 권리는 주장했지만 의무는 수행하지 않은 비도덕적인 정부"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현지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3시간 이상을 할애해 국민들과 대화하는 카스트로가 이제 마이크 대신 팬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카스트로가 일간 <후벤뚜드 레벨데>에 지난 8일 기고한 주요내용을 요약한다.

카스트로는 이 기고문에서 자신의 지난 1959년 4월 미국방문과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부통령과의 만남을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필자의 남미리포트 4월 16일자 "쿠바 국정의 모든 것은 나를 통해 이뤄진다" 편에서 이미 설명을 했으므로 생략했다.

'미 독립선언문과 루소의 사회계약론 본받아야'

▲ 마이크 대신 펜을 잡은 카스트로 ⓒ쿠바 <후벤뚜드 레벨데>

"231년 전인 1776년 발표된 필라델피아 독립선언문이 상당 부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선언문은 유럽 봉건주의에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작성한 것이며 귀족주의 및 전제주의가 특권을 누리도록 작성된 것이다.

장 자크 루소(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는 자신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라 할지라도 백성들이 의무를 자각하고 스스로 복종하도록 하는 올바른 정치를 펴지 않는다면 백성들을 언제까지나 힘으로 지배할 수 없다고 했다.

루소는 또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남자(사람)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자신의 의무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포기하면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당시 13개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했는데 이후에도 잔인한 노예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남녀노예들이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서 경매를 통해 매매됐다. '청교도 신조'를 내세우며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던 곳에서 말이다.

이 노예제는 미국 독립 후에도 최소한 100년 가까이 지속됐다. 그리고 2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이 거대한 대륙에 거주하는 그 후손들은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진리는 상업적인 선전을 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필라델피아 선언이나 '사회계약론'의 내용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독립선언문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현재 전세계에서 자행되는 폭정에 대한 투쟁의 의무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세계 4분의 3이 더 되는 빈곤한 국가들 내에서 자행되는 약탈전쟁과 도살행위를 그대로 묵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결코 거대한 정치세력과 경제력, 그리고 과학의 힘을 이용해 전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이런 만행을 묵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위선으로 가득 차고 윤리의 실종으로 인해 전 세계의 혼돈을 부추기는 미국 정부의 본성, 즉 평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혼돈과 파괴를 일삼는 미국의 본 모습을 고발하고자 한다.

지난번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미국 정부는 아이젠하워-닉슨-키신저로 이어 지는 오랜 세월 동안 나를 627번이나 암살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쿠바의 정보 담당부서가 확인한 사실만 그렇다는 얘기다. 그들은 나를 암살하려고 노력한 것뿐만 아니라 쿠바 전체를 파괴하기 위해 상상할 수도 없는 사보타지와 직접적인 테러 공격을 감행했다.

우선 지난 1961년 피그만 공격을 살펴보자. 쿠바혁명군은 미국의 전면적인 공격을 우려해 혁명군의 확장과 무장을 서둘렀다. 당시 우리는 아바나와 라스 비쟈스 지역에서 자원해 온 병력을 포함해 약 5만여 명의 혁명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무기 부족을 느낀 우리는 벨기에산 FAL 자동소총으로 혁명군을 무장시키려 했다. 그런데 우리가 구입한 무기를 실은 배가 아바나항에 도착 하자마자 폭발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미 CIA가 사전에 치밀한 계획에 의해 자행된 사고였음이 밝혀졌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의 무기 구입을 포기하고 소련으로부터 직접 무기를 들어와 혁명군을 무장시켰다. 당시 우리군은 85mm 포를 장착한 탱크와 100~122mm 대포 등으로 무장했고 최신형 대 전차포와 체코산 대공포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

쿠바혁명군은 수주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들 신무기 활용법을 숙지해 미국의 공격에 대비했다. 라울 (현 쿠바 국방장관. 카스트로 의장 권한대행)은 동부지역 해안을 맡고 알메이다는 중앙, 체 (게바라)는 빠나르 지역 강 하구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드디어 1961년 4월 15일 새벽 나는 라울의 진지에 대한 미군의 공격이 시작됐다는 보고를 접했다. 미국의 지휘를 받는 반혁명군들은 쿠바혁명군과 똑같이 올리브색 복장을 하고 혼란을 유도하려 했다.

미군 공격선은 맹렬한 포격을 앞세워 상륙을 시도했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에 앞서 미군은 관타나모 기지 혹은 미 본토에서 날아 온 정찰기가 동부지역 해안을 순회비행하고 있다는 보고를 나는 이미 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레이더가 없어 이 정찰기들의 정확한 발진기지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무력공격이 실패하자 미국은 잘 훈련된 70여명의 군인과 19명의 라디오 전파 전문가들을 은밀하게 쿠바로 침투시켜 비밀 방송국을 운영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체포됐고 방송장비 등도 회수됐다.

그 후 미국은 항공기를 통한 게릴라 세력의 침투를 27번 가까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항공기 침투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선박을 통한 게릴라 침투와 무기, 폭약 등의 공급을 계속한다. 해안을 통해 미국은 400여명의 게릴라를 침투시켰고 40톤 이상의 무기와 폭약을 공급했다.

이렇게 해서 미군의 사주를 받고 쿠바로 침투된 게릴라들은 800번 이상의 인위적인 화재를 일으켜 30만 톤 이상의 설탕수수를 불태웠고 42개 이상의 잎담배 저장소를 재로 만들었다.

또한 제지공장, 설탕정제공장, 낙농공장, 공산당 간부들의 개인 집들을 무차별적으로 불태우기도 했다.

쿠바의 산업활동을 마비시키기 위한 파괴활동만 한 게 아니다. 쿠바 공산당사 폭파, 발전소 파괴, 기차역, 시외버스역 등 무차별적인 폭파활동이 110여 차례 이상이나 지속됐다. 이 외에도 아바나 전역에서 자행된 폭탄 테러사건은 200여건이 넘는다.

미국은 게릴라들의 파괴활동을 통해 조그마한 섬나라인 쿠바의 산업과 정치 활동을 마비시키려고 혼돈과 파괴를 일삼는 사회불안을 끊임없이 유도했던 것이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이 글을 마친다.

피델 카스트로 루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