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위원장은 2005년 2월 22일 언론과 인테넷 게시판을 통해 삼성을 비방했다는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습니다. 그 뒤 2005년 12월부터는 역시 2003년 삼성규탄 시위로 3년 징역형 받았던 것이 집행유예가 취소됨에 따라 현재까지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인 상태입니다.
김성환 위원장은 이제 '삼성 무노조 경영'의 상징이 되었으며, 2007년 국제엠네스티는 국가보안법 이외의 혐의로, 그것도 노동자로서는 처음으로 김 위원장을 '올해의 양심수'로 선정했습니다. 국제엠네스티는 김 위원장을 양심수로 선정하면서 석방을 위해 국제적 탄원운동을 벌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최근 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힘든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성환 위원장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김 위원장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은 분들은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삶이 보이는 창, 2007)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찰과 연대야말로 깜깜한 밤하늘의 별빛들입니다. 김 위원장의 주소는 '(153-600)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13 김성환'입니다. <편집자>
지금부터 20년전 1987년 6월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과 본격적인 투쟁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수많은 현장노동자들이 잔업을 마치고 퇴근하고 나서 야간에 또는 아예 조퇴를 하면서까지 길거리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짱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싸웠다.
나도 그때 그렇게 싸웠다. 그리고 당시 인천 한독금속에 다니고 있던 나는 연이은 가두투쟁으로 지치고 퀭한 눈으로 다음 날 출근을 하면서도,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그리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한 옥상 점거 투쟁을 동료들과 함께 계획하고 결의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반역과 환희의 시절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부평 철마산 자락 청천동 공동묘지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해고와 구속을 각오하고 6월 10일 옥상점거 투쟁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마침 그 날이 월급날인 관계로 그 다음날인 1987년 6월 11일 오전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옥상을 점거하고 임금인상 투쟁을 전개하였다.
투쟁선언문을 낭독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구사대의 침탈을 막아내고 현장노동자들의 무언의 지지와 격려 속에, 결국 한나절만에 임금인상 투쟁은 승리하였다. 그것은 당시 민주항쟁의 힘을 받은 농성노동자들이 한 몸이 되어 싸워 승리한 쾌거였다.
그리고 한 달 후인 1987년 7월 11일 회사식당에서 100여 명에 가까운 한독금속 노동자들이 모여 인천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자주적인 '한독금속노동조합'을 건설하였다.
다시 거듭 강조하거니와 당시 옥상 투쟁에 앞장 선 노동자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당당한 주역들이었다. 그리고 한독금속 노동조합 건설은 민주주의를 위한 민중항쟁의 연장선상에서 노동자들이 쟁취한 구체적인 투쟁의 성과였고, 이어진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한편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이 시련과 단련의 시작이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평등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고난과 투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6월 지금 나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세 번째 초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 날의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함성을 독방에서 나홀로 들으며 나홀로 기념하고 있다.
1996년 11월 이천전기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삼성재벌에 의해 해고된 이후 내 삶은 삼성재벌의 폭행으로 얼룩져 왔다. 폭행으로 구속된 어느 재벌 총수와는 거꾸로 도리어 내가 구속되어 있지만 말이다. 인간 중심의 경영을 한다며 자칭 초일류 세계기업임을 선전하는 삼성족벌의 무노조 유지를 위한 노동자 탄압과 노동자 인권유린의 실상을 폭로, 규탄하고 사회에 알린 것이 삼성재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2005년 2월 22일 법정구속당하고, 앞으로 2008년 10월 7일까지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옥중에서 2005년 4월과 8월에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징역살이 24개월만에 노동자로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제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2007년 2월 15일 영등포교도소를 방문한 엠네스티 한국지부를 통해 구두로 전달받았다.
지금은 20년 전 군부독재정권 시절도 아니다. 그런데도 삼성재벌은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되었다는 지금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위해 노동자를 미행 감시 감금 탄압하고 있다. 핸드폰으로 노동자의 위치를 불법으로 추적하고 돈으로 회유하고 온갖 방법으로 노동자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이런 반사회적인 범죄집단 삼성족벌에 맞서 싸우며,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건설을 위해 활동한 것이 내 죄다. 그리고 지금 28개월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국제 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되어도…
이 나라 최고의 권력집단 삼성재벌이 죄가 있다며 고소한 노동자를 검찰은 기소하고 판사는 실형을 판결하여 구속하였다. 그런데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에서는 죄가 없다며 2007년 2월 3일 국제양심수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국제엠네스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양심수 선정 4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활동이 없고 구명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고 한다.
최근에 만난 한국지부 사무국장은 6월에 방문한다던 본부 담당자도 언제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황당한 경우가 아닌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이 땅 노동자의 자존심까지 유린당한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국제엠네스티에서 이 나라 노동자를 양심수로 선정한 것은, 무슨 생색내기 위한 것은 아닐 터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4개월도 그렇고 이후에도 활동계획이 없다는 한국지부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양심수 선정은 나와 삼성재벌, 그리고 국제엠네스티 간의 개별적인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세계 11위라는 경제대국인 이 땅에서 벌어지는 노동기본권의 유린과 공권력의 탄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억울하게 차디 찬 감방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든 구속노동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일 수도 있다.
이런 기대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지부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책임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국제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이 되어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시간만 질질 끌며 허송세월만 하다가, 만약 이번 8.15 특사로 허망하게 석방이 된다면, 이것이 국제엠네스티와 한국지부의 공이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에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양심수 선정은 기만이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거대공룡 삼성재벌에 맞서 싸운 노동자를 양심수로 선정하고 나서 부담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에 국제엠네스티가 양심수 선정만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더 이상 구명활동도 없이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쳐다만 본다면, 그것은 양심수로 선정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이 국제엠네스티의 본모습이라면, 나는 이런 엠네스티의 양심수 선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 상황이 변할 기미가 없다면, 당장 국제엠네스티 양심수 선정을 거부하고 반납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국제엠네스티의 권위를 위한 일이고 이 땅 구속노동자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본이 지구화, 세계화되어 신자유주의는 이제 모든 자본가들의 신앙이 되었다. 이제 모든 삶의 가치판단 기준은 효율성과 경쟁을 통한 극대이윤 추구가 되어버린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물신의 세상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고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위해 싸우다 자본의 하수인인 정치권력의 공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구속되어 감옥에 갇혀있는 이 나라 구속노동자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세계노동자들의 문제이고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돈이 판을 치고 물신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국제엠네스티가 이 땅 노동자를 양심수로 선정한 것은 그 자체만 해도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노동기본권의 문제뿐 아니라 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삶의 질을 위한 노동인권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속된 노동자들의 감옥에서의 하루하루는 피와 살이 녹아나는 고통의 세월이다. 국제엠네스티와 한국지부는 지금부터라도 노동자 양심수 선정을 계기로 그 의의를 살려 노동인권의 신장과 구속노동자 구명활동에 최선을 다 해주기를 바란다.
2007년 6월 14일 나무
영등포교도소에서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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