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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新밀월시대' 개막, 한반도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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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新밀월시대' 개막, 한반도의 선택은?

[기고] "미국 위협이 중-러 반목의 역사 마감케 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공식방문 일정이 시작된 지난 26일 월요일. 러시아에서 '중국의 해' 선포를 축하하는 공연이 끄레믈(크레믈린) 궁전에서 개최됐다. 블라지미르 뿌찐(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연방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그리고 양국 고위 관료들이 참석하고, 러시아 국영방송인 라씨야(러시아)에서 실황 중계한 이 축하공연은 밤 11시에 시작해 자정을 넘겨 0시 45분에야 끝이 났다.

뿌찐 대통령은 가끔 피곤한 듯한 인상을 보이긴 했으나, 후 주석과 더불어 중국의 전통예술과 현대예술로 채워진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고 가끔씩은 바로 뒷자리에 배석한 통역사들의 도움을 받아 양국 정상들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2006년을 '러시아의 해'로 선포했던 중국에 러시아가 화답하는 성격으로, 양국 상호 협력에 대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크레믈린 궁전에서 열린 2007년 '중국의 해' 선포식에서 악수를 나누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로이터=뉴시스

중-러 관계, 호혜와 반목의 역사


1957년 11월 16~1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 세계 64개국 공산당 및 노동당 대표 회의에서는 사회주의 수립 및 대미 관계에 있어 전향적인 내용을 담은 '평화선언'이 채택됐다. 서방과의 발전적 관계 수립을 인정하는 이 선언이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각자의 길로 접어드는,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소련의 공산주의 종주국 지위를 부인하고 독자노선을 걷는 계기가 됐다.

수립 초기 중화인민공화국에 있어 소련은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자 지지자였다. 일개 지방 군벌 세력 정도에 불과했던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 세력이 미국 및 서방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장제스(장개석)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성공요인들 중 하나는 소련의 지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장제스 정권의 가장 큰 상대는, 공산당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었다. 서방 나라들과 더불어 소련 정부는 국민당 정부의 대일항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관계로 장제스는 소련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련은 이러한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마오쩌둥의 공산당 세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으며, 그럼으로써 인민군이 중국을 공산화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중국의 공산화는 국민당 정권에 의한 중국 통일을 지원하고 있던 서방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 간섭을 시도했으며, 서방 국가들은 타이완(대만)으로 패주한 장제스 세력을 중국의 정통 권력으로 인정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을 외교 및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시기에 일련의 군사 활동을 통해 미국의 직접 개입을 견제하고, 마오쩌둥의 공산정권을 지지한 것이 소련이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이라는 이념적 위치나 외교적 지지뿐 아니라, 군사-경제-교육 등 사회 전반의 (재)구성에 있어서도 소련은 중국의 선행모델이자 적극적인 지원국가였다. 중국은 소련의 기술 및 기자재 지원을 받아 사회 기반시설을 닦고, 지원 받은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학생을 보내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는 계획경제를 실행하면서, 필요한 소련의 물품을 소련으로부터 차관을 받아 지불하는 형식으로 대금결제를 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전쟁이 공산당 정권 하의 중국 경제 및 군사력에 미친 영향이다. 한국전쟁에서 일본이 이승만 정권을 지지하는 미국 주도 하의 유엔군 투입으로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면, 김일성 정권을 지지하는 소련의 (간접적인) 지원으로 군사 및 경제적 이득을 챙겼던 것이 중화인민공화국이었다. 즉, 소련이 제시한 북한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원조 및 한국전쟁 개입 요구에 동의하면서 공산 중국은 상당한 양의 무기를 (무상으로) 지원 받아 자국의 군비확충에 사용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제 지원을 조건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한 박정희 정권과도 비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중-소의 밀월관계,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마오쩌둥 정권의 스딸린(스탈린) 통치 하의 소련 추종 관계는 중국이 점차 안정화되어 가고 경제개발에 속도를 올려가면서 점차 변화됐다. 1953년 3월 스딸린의 사망과 이에 뒤이은 흐루쇼프(흐루시쵸프)의 스딸린 비판은 이념적인 면에서도 사회주의 강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던 중국에게는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장개석 정권과의 대립 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오쩌둥에 대한 스딸린의 박대가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내막을 알 수야 없지만, 어쨌든 중국공산당 정권은 1957년 11월의 '평화선언'을 비판하며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된다.

아니러니하게도, 그 이후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냉전시기로 접어든 반면, 중국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실패 후, 1971년 키신저의 방중, 1973년 닉슨의 방중, 1979년 중-미 국교정상화로 이어지며 대미 외교에 있어 유화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미국 중심의 한 축과 소련 중심의 한 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는 중국 외교정책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압박, 중-러의 신 밀월시대 여나

중-소관계 정상화는 고르바쵸프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유화무드를 타게 된다. 소련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던 중-소 국경의 주둔군 수를 감축하고, 경제, 문화, 기술 분야에서의 상호 협력에 합의한다. 그러던 1991년 12월 소연방이 해체된다. 중국은 소련이 붕괴한 자리에 새로이 등장한 러시아 연방을 비롯한 신생 국가들을 추인하고 이들과 국교를 수립하며 적극적으로 협력관계 강화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러시아 연방과 중국의 관계가 항상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러시아 언론 매체가 중국을 보는 시선은 경외와 경계의 그것이었다. 한편으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옐찐[옐친] 정권 때는 물론이고 현 뿌찐 정권 하에서도) 러시아가 따랐어야만 했던 본보기로 언급되곤 한다. 자본주의 러시아는 나라의 붕괴를 막지 못하고 자본주의 서방에 모든 것을 내어 준 비판의 대상인 반면, 공산주의 중국은 착실한 준비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며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심심치 않게 터지곤 하는 (주로 첨단과학기술과 관련된) 중국 스파이 스캔들은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연해주를 비롯한 러시아의 동아시아 영토로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있는 중국인들은 작게는 지역 불법이민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동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중국인들의 실질적인 점거라는, 나아가 연해주 지역의 중국화, 중국 복속이라는 공포를 낳았다. 소련시절부터 내려오는 국경지역에서의 영토분쟁은 양국 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더불어 중국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는 러시아의 또 다른 고민거리였다. 소련의 붕괴 후, 중국은 껄끄러운 경쟁상대가 사라진 공백기를 이용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였다. 러시아가 CIS라는 정치-군사적인 틀 속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였다면, 중국은 막강한 자본을 동원하여 실질적인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이 지역에 급속하게 파고들었다.

이러한 여러 악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중-러관계는 지속적인 협력체제로 강화돼 가는 모습을 보인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견제보다는 상호협력체제 구축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결정체이자 연결고리가 상하이협력기구(SCO)다.

무엇이 이 두 거대 세력들로 하여금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방에서 조여 오는 서방의 압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들의 협력관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견제에 대한 대응 격이다.
▲ 중-러관계는 지속적인 협력체제로 강화돼 가는 모습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견제보다는 상호협력체제 구축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결정체이자 연결고리가 상하이협력기구(SCO)다. 사진은 2006년 SCO 회의에 참석한 회원국 정상들.ⓒ로이터=뉴시스

동성상응, 동기상구

동성상응, 동기상구 (同聲相應, 同氣相求: 같은 소리끼리는 서로 응하며, 같은 기운끼리는 서로 구한다. «주역», <중천건(重天乾)>.)

지난 26일 '중국의 해' 개막식 축하연설에서 뿌찐 대통령은 현 중러관계의 진전을 주역의 "동성상응, 동기상구"라는 구절을 인용해 설명했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이 처해 있는 상황과 이에 대한 양국의 협력강화를 응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천 년을 이어갈 것 같던 '철의 장막'이 걷히자, 미국은 새로운 '가상의 적'이 필요하게 됐다. 이제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었지만, 자신의 권력을 보다 자유롭게 휘두르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신생 러시아 연방은 세계 2위의 핵 강국이자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외교 및 군사 상의 위상강화라는 점에서 미국과 서방의 새로운 경계대상이 되었으며, 이는 다시 중-러의 협력강화를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양대 세력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자원외교 및 미군주둔 문제, 이란 핵 문제에 대한 양 진영의 견해차, 반 러시아 성향의 구소련 국가들을 통한 서방의 견제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를 통한 반격, 미일 동맹 및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대 중국 압박과 중국의 북한 카드 활용 등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양국은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다. 러시아는 중국에 무기 및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을 전수해 주면서 중국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이 발사됐을 때, 러시아 방송의 진단 프로그램들에 출연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은 전적으로 러시아의 기술이 이전된 결과라는 것이었다.

자원수출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은 러시아의 훌륭한 협력상대다. (동-서) 유럽이 에너지 자원 공급에 있어 대 러시아 의존 율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게도 현재까지 에너지 수출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유럽이다. 2005년 기준으로, 러시아의 석유 및 가스 수출에서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석유가 84.4%, 가스는 78.4%다. (BP.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June 2006. 9, 12, 21, 24, 27, 30쪽)

즉, 에너지 자원 수출에 국가 수입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러시아의 대 서방 자원 무기화는 어느 정도는 자기발등 찍기의 성격이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우끄라이나(우크라이나)와의 가스분쟁에서 서방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타협을 본 것처럼 완강히 자기 주장만 밀고 나갈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에게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시장은 훌륭한 대체 시장이자, 서방과의 에너지 분쟁 시 자신에게 보다 유리하게 협상을 지속할 수 있는 버팀목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역으로 중국에게 있어 러시아 첨단 과학기술과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협력상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방러를 계기로 양국은 모든 분야에서 보다 긴밀한 교류 및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문제가 빠질 리 없다. 26일자 까메르쌍뜨(코메르상트) 지는 27일에 러시아 로스네프찌(로스네프티)와 중국 3대 국영석유회사 중 하나인 UNIPEC 사이에 철로를 이용한 연간 300만 톤 규모의 석유 수출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대 러시아 및 대 중국 정책이 큰 변화의 징조를 보이고 있지 않는 현 시점에서, 정치-외교적 필요와 기술-경제적 이점이라는 상호교류의 동기들은, 여러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중-러관계를 상호유대 강화로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

중-러 결속의 강화와 한반도의 미래

미-일과 중-러라는 두 경쟁 세력이 맞부딪치는 중요한 접점들 중 한 곳이 한반도다. 따라서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현 상황에서뿐 아니라, 때가 돼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는 주변 4강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 것이냐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미, 해방 후 주 교류 대상이었던 미-일은 물론이고, 90년 대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의 주요 교역 상대로 등장했다. 중국과의 연간 무역 총액은 대미 무역수지를 이미 넘어섰으며, 러시아로부터는 가스 및 석유를 직접 수입하려는 시도들이 지속되고 있다.

중-러 간의 결속 강화는 한참 한국을 달구고 있는 한미FTA 이슈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 노무현 정부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 경제의 미국화, 한국 경제의 미국 편입(종속)이 과연 장기적인 관점으로 왔을 때 올바른 선택이 될 것인지를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살폈듯이 경제 관계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국식 경제로의 일방적 편입을 선택하는 그 순간, 동시에 우리는 한반도 판 '우끄라이나 가스전쟁'을 선택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의 한미FTA는 결국 다른 한 쪽으로부터 경계를 사는 일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 허용된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팬더와 러시아를 상징하는 곰이 굳건히 손 잡은 걸개그림을 보며 한국 정부는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강대국이 미국과 그 우방만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들은 도전해서 다 성공했다"는 식의 섣부르고 무책임한 도박을 멈추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체적 그림을 그려본다면 질주하는 협상에 제동이 불가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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