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출에서 얻은 이익을 18개 주가 공평하게 나누어 석유 이권에 배제돼 있던 지역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란 이라크 정부의 '홍보'와 달리, 미국을 위시한 서방 정부의 압력을 받아 통과된 이 법안의 초점은 외국기업의 이라크 석유사업 참여를 대폭 보장하는 대신 이라크 중앙 정부의 석유 통제권은 약화시키는 데 맞춰져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는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라크 유전에 있음을 증명하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메이저 석유 기업들이 금권을 이용해 정책까지 좌지우지 해 온 데서 붙은 '빅 오일'이란 별명 값을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이 의회를 통과해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이권을 위해 '봉사하기'까지는 몇 가지 난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석유법의 덫'에 빠진 이라크, 저항으로 구해내나
일단, 국민의 대다수가 존재조차 몰랐던 석유법의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라크 내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
새 석유법은 미개발 유전에 대해서는 이라크 국영 석유기업(INOC)이나 이라크의 민간기업에 개발 우선권을 주지 않고, 해외 기업들도 동등하게 입찰에 참여하도록 했다. 특히 해외 기업이 개발권을 따낼 경우 이라크 기업을 하청업체로 둘 필요도, 벌어들인 돈을 이라크에 재투자할 필요도 없게 되어 있으며, 이라크 노동자들을 고용할 의무도 없다.
이라크 석유 자원 개발로 얻어낸 수익을 고스란히 해외 기업 주머니에 넣어주는 셈이다.
이에 이라크 노총은 내각이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자랄 탈라바니 대통령에게 법안 재심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외국 회사들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석유법은 이라크 경제를 구속하고 이라크 주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 만큼 이라크가 석유법의 덫에 빠질 것으로 우려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라크 인들의 반발은 유전 개발 관련 계약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쥔 '이라크 연방 석유·가스 위원회'의 심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석유법은 앞으로 구성될 '이라크 연방 석유·가스 위원회'에 계약과 관련한 민감한 조항에 대한 자의적 해석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만큼, "이라크를 셸, 엑손모빌, BP 등 다국적 정유회사들의 노예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정치인, 전문가 등 이라크 엘리트 집단의 의지가 반영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빅 오일' 재가 맡아 IMF가 총대
이라크에 턱없이 불리한 새 석유법이 사실상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과됐음을 알리는 보도들은 법안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키는 요인이다.
미국의 주간 <네이션> 최신호(3월 19일자)는 독소조항이 적잖은 이 법이 별 잡음없이 내각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던 내막을 밝혔다.
석유법의 초안은 다국적 컨설팅 회사 베어링 포인트의 자문 아래 미·영 대사관과의 긴밀한 협의 속에서 만들어 졌으며, 특히 사무엘 보드만 미 에너지 장관은 초안으로 제시된 몇 가지 안을 직접 메이저 석유 회사들에게 갖고 가 재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석유 이용에 관한 법을 미국 정부와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만든 셈이다.
이를 통과시키는 데에는 IMF가 총대를 멨다. 이라크 국가 채무 6% 탕감 약속은 석유법이 통과돼야 실행될 수 있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라크 정부가 석유법을 통과시킨 이튿날 부시 행정부가 이란, 시리아 등과 함께 이라크 안정화를 논의하는 컨퍼런스 개최를 발표한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 정부는 몇 달 전부터 '이라크 컨퍼런스' 개최를 요구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내부 문제에 관한 합의가 도출되기 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를 번번이 거절했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의 공갈에 이라크 정부가 하는 수 없이 석유법안을 통과시켜줬고 그 대가로 오는 10일 컨퍼런스가 확정됐다는 추정은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것이다.
이라크 석유시장은 지금 '무법천지', 새 법인들 통할까
이라크 내 혼란 상황은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과연 '빅 오일'의 입맛대로 시행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라크 사회 전반이 그러하듯 현재 이라크 석유업계도 '좀비(살아있는 시체)'와 다름없는 만큼 이에 대한 정상화 노력 없이 이권 분배 논의부터 들어가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인 것이다.
1991년 걸프전 이전엔 하루에 350만 배럴 생산되던 석유가 미국의 침공 이후 210만 배럴로 떨어졌고 그 중 수출되는 양은 150만 배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수치가 이를 실증한다.
수출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 극도로 불안정해 진 정치적 환경이 석유 생산 체계와 시장을 동시에 교란시켰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 북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송유관에 대한 큰 공격만 400여 건에 이른다. 2006년 한 해 동안 석유 관련 시설과 직원에 관한 공격으로 죽은 사람만 289명이다.
무장단체들이 정유 기술자들을 표적으로 한 암살대를 조직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정유 기술자들은 유전이 없는 이라크 중부에 숨어서 택시를 몰거나 아예 해외로 도피했다.
지난 해 이라크 석유청은 노후 송유관 수리비로 35억 달러를 책정했으나 2006년 8월까지 실제 지출된 예산은 4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운송관 수리를 담당할 인력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운송이 여의치 않아 수입국에 물은 지연 벌금이 1억 달러를 넘었다.
지방 토호 세력들을 중심으로 횡행하고 있는 석유 밀매는 또 하나의 혼란상을 빚고 있다.
쿠르드족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터키와 이라크 국경 지대에서는 서너 줄씩 횡을 맞춘 탱크로리가 8마일가량 늘어 서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뇌물을 받고 이라크 석유를 다른 국가로 운송하기 위해 모인 업자들이다. 한 차에 실린 석유는 약 8400달러에 팔려 나가고 있다.
뇌물을 얹어 주더라도 요르단이나 시리아가 합법적 경로로 들여오는 가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이런 식으로 이라크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석유가 전체 석유 생산량의 10% 가량 될 것으로 추정했다. 2005년 한 해 이런 식으로 도둑맞은 석유로 인한 손실은 42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밀매의 고리에는 정치권이 얽혀 있어 경찰의 단속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시아파 최고 정치지도자인 압둘 아지즈 알 하킴은 요즘 바스라 지역에서 석유를 파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암만의 한 석유상은 "사람들이 알 하킴을 '우다이 알 하킴'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아들인 우다이 사담 후세인의 전횡을 알 하킴이 답습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이다.
이처럼 이라크 석유 업계 전체가 쑥대밭이 돼 새 석유법이 효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이권에만 눈이 먼 다국적 석유 기업들과 그 압력을 받은 부시 행정부는 마지막 승인을 얻기 위해 전방위 의회 압박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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