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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군은 '살인면허'를 가졌나?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80> 아르헨의 반(反) 이스라엘 기류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전쟁의 불똥이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까지 튀고 있다. 평소 반유대인 정서가 강한 아르헨티나에서 최근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한 레바논 공습에 대해 중동계 이민자들은 물론 현지 언론까지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유대인총연맹 지도자들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무장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며 테러방지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다. 세계 각국의 유대인 지도자 100여 명은 레바논 사태 발생 직후인 지난 17일 현지 내외신 기자단을 초청해, 이미 10여 년 전에 발생한 유대인 상조회관 폭파사건을 새삼스레 거론하며 "테러행위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라도 지구상에 더 이상 뿌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이어 아르헨티나 정부를 향해 유대인 상조회관 폭탄테러 책임자 색출과 재발 방지를 강력하게 주문하기도 했다. (유대인 상조회관 폭탄테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상권의 중심지역에서 지난 1994년 7월 18일 발생한 차량폭탄 테러 사건으로, 회관 안에 있던 90여 명의 직원들이 사망하고 길 가던 시민들을 포함해 100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아랍계 테러단의 소행으로 결론지었으나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 최근 키츠네르 아르헨 대통령을 예방한 세계유대인 연맹 대표단.이들은 이 자리에서 아랍계 테러단에 대한 비난의 목청을 높였다. ⓒ아르헨 대통령궁.

이들이 아르헨티나를 찾은 건 미국 다음으로 유대인 교민사회가 큰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아르헨티나 언론과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눈길은 차갑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헤즈볼라는 테러집단이 아니라 레바논 수비를 위한 지역방위군 성격을 가진 무장세력이라고 보고 있다. 또 현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 폭격이라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군의 행동은 테러행위를 넘어선 잔인한 집단살인 행위라는 반응이다.

나아가 지금 상황에서 과연 유대인 지도자들이 아르헨티나까지 와서 자국민 보호를 내세워 반테러를 외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자국 군인들의 테러에 가까운 무차별한 폭격행위로 인해 수백 명의 무고한 레바논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참상은 애써 외면하면서 헤즈볼라의 무력시위는 테러로 규정한다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 벗어난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 폭격의 명분으로 삼은 2명의 자국 군인 납치에 대해서도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들은 "이스라엘은 이 두 명의 포로 송환을 주장하기에 앞서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 억류 중인 9000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팔레스타인 포로들부터 송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국 군인들의 인명이 중요하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도 존중해주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르헨 현지의 지식층 사이에서는 지난 5년 간 이스라엘 군의 폭격과 공격으로 무참하게 죽어간 5265명의 팔레스타인 출신 민간인들 가운데 대다수는 전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이었다는 사실도 규탄받아 마땅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아르헨티나 유대인 상조회관 테러로 희생된 100여 명의 생명만 귀중하고 중동에서 희생되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천 명의 무고한 아랍계 시민들의 생명은 무시해도 되느냐는 반론인 것이다.

특히 현지 일부 언론들은 비무장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행위는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레바논을 향한 이스라엘 군의 이런 야만적인 공격행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나서서 어떤 방식으로든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군의 레바논 폭격을 지지하고 무기와 각종 폭탄까지 지원해주고 있는 미국정부의 행동은 이스라엘 군에 '살인면허'를 발급해 주는 만용에 가까운 월권행위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역시 아랍국가들의 입장에선 테러가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미국정부가 유엔의 힘까지 무력화시키며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는 모습은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세계 유대인 지도자들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현지 유력 언론사의 한 기자는 "세계를 움직이는 건 미국이지만 미국을 움직이는 건 유대계라는 속설을 실감하는 듯하다"며 "이번 레바논 사태와 겹친 유대인 상조회 테러 사건 규탄대회는 오히려 긁어 부스럼의 모양새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선민사상'을 내세우며 타 민족에 대해선 안하무인 격인 이들의 태도가 오히려 반(反) 유대인 정서를 더욱 부채질할 거라는 설명이다.

한편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레바논 정부의 발표를 인용해 "지난 2주일 간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인해 6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하고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레바논 전역의 병원들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이미 사망한 200여 명은 아직까지도 폭격으로 붕괴된 건물의 잔해 속에서 부패되고 있고 그 시체마저 찾을 길이 막연하다"고 폭격의 참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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