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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도 대화할 줄 모르는 정부가 무슨 협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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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과도 대화할 줄 모르는 정부가 무슨 협상을…'

[기자의 눈] '의사표시'에 대한 '과잉대응'

"너네 왜 그러냐…. 너네 왜 자꾸 그래!"

10일 장충체육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시민단체 회원은 경찰이 방패를 앞세워 밀치고 들어와 기자회견을 방해하자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이미 그는 기자회견과 1인시위를 못하게 하려는 경찰에 맞서 수차례 몸싸움을 벌인 터였다. 사실 이 기자회견도 같은 자리에서 열리기로 되어있던 시민사회단체연석회의의 '한미 FTA 2차 협상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경찰의 방해로 무산된 것을 규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경찰의 경계 태도는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한미 FTA 2차 협상이 벌어지는 서울 신라호텔 주변에 29개 중대 3000여 명의 병력을 배치한 경찰은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협상장 안으로 새어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시종일관 강경한 자세였다. 때문에 이날 장충체육관 옆 신라호텔 입구에선 기자회견을 열려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전경의 몸싸움이 연거푸 일어났고, 그 와중에 양운모 영화평론가 협회장이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는 등 위험한 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다.

경찰은 기자회견만 봉쇄한 것이 아니었다. 이날 신라호텔 입구에서 1인시위를 하려던 한신대 이해영 교수와 미 반전단체 '앤써'의 브라이언 베커 대표도 경찰의 방패에 밀려나고 말았다.

'지킬 것은 지켜주는 센스와 여유' 어디 갔나?

이날 경찰이 왜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지난 1차 협상 때 '한미 FTA 반대 원정투쟁단'이 미국 워싱턴으로 가 기자회견은 물론 미국 의회 앞에서부터 백악관 근처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음에도 미국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경찰의 강경대응이 불필요한 갈등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FTA 범국본)의 주제준 상황실장은 이날 경찰의 태도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다. 그는 한미 FTA 반대 원정투쟁단에 참가해 모든 일정을 함께하고 돌아왔고, 이날 오전 경찰과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현장에도 있었다.

주제준 상황실장은 "미국에서 원정투쟁단은 백악관이나 통상교섭본부 등 어떤 장소에서도 제한 없이 집회를 열 수 있었고, 심지어는 항의집회 도중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만나 직접 항의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어떤 합의된 '틀' 안에서 보장되는 집회의 자유가 있었다"면서 "물론 그 틀을 넘으면 강력한 제지가 있을 것이나 일단 그 안에서는 자유로운 집회가 가능했다"고 덧붙엿다.

그러나 이와 뚜렷히 대조되는 한국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두 나라 사이에 집회, 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던 자리에는 이미 경찰 병력이 가득 서 있었으며, 경찰이 기자회견을 하라고 제안한 자리는 경찰차로 둘러싸인 폐쇄된 공간이었다"면서 "갇힌 공간에서 기자회견을 하라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조치냐"고 반문했다.

사실 한미 두 나라의 차이는 정부 간 도덕성의 차이가 아니다. 한미 FTA 원정단의 시위를 평화롭게 보장한 미국 정부에게서 영악함을 읽을 수 있다. 만약 워싱턴 DC의 경찰이 워싱턴에서 이날 우리나라 경찰처럼 행동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주제준 상황실장의 표현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한국 정부의 모습은 분노를 넘어 연민을 느끼게 하는 수준"이다. 그는 이날 경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11%라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등을 돌리려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 제한할 합리적 근거 없는데도"

과연 한국에는 '이 만큼만 지키면 평화로운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틀이 존재하는가? 있다면 한국의 정부는 그 틀을 지켜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할 의지가 있는가? 이날 경찰들의 막무가내식 대응은 이러한 의문이 들게끔 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상 신고서를 내야 하는 집회와 달리 기자회견과 1인시위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불법 집회'는 현행법 상 성립할 수 있지만 '불법 기자회견'이나 '불법 1인시위'는 성립하지 않으며 경찰이 막고 나설 근거 또한 없다는 이야기다.

서울 중부경찰서의 관계자는 기자회견과 1인시위를 막은 근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름만 기자회견이었을 뿐 집회나 시위의 성격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각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활동가 등은 "경찰은 우리가 기자회견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 일대를 가득 메우고 우리의 활동을 가로막았다"며 " 경찰은 우리가 집회를 할지, 기자회견을 할지 판단할 근거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황정아 변호사 역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경찰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이날은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부터 원천봉쇄했을 뿐 아니라 장소도 실제 한미 FTA 협상이 벌어지는 곳과는 떨어진 곳이어서 심각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황정아 변호사는 "이날 경찰의 행동에 대해서는 충분히 위법성을 따질 수 있으며, 손해배상이나 불법체포에 대한 형사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2001년 참여연대가 진행하는 릴레이 1인시위를 경찰이 물리력으로 제재한 데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참여연대 측이 승소한 사례가 있다"고 말해 이날 1인시위에 대해서도 위법성을 다툴 수 있음을 시사했다.

"평화시위를 보장할 마음 있는 건가"

지난 7일 정부는 6개 부처 장관 공동명의로 '제2차 한미 FTA 협상 반대시위 관련 정부 공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공동담화문에서 한덕수 부총리는 "정부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를 존중하지만 의사표시는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폭력시위로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며 "정부는 폭력시위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우려와 달리 '한미 FTA 제2차 협상을 저지하려는 일부 단체'가 평화시위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FTA 범국본은 이날 활동이 모두 경찰의 방해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음에도 앞으로 계속 평화시위를 견지할 생각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날 신라호텔 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본 시민들은 과연 정부가 국민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를 보장할 마음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날의 행사는 비교적 사람이 적은 기자회견과 1인시위였지만 12일 10만 명이 참여할 것이라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대회 등에서도 경찰이 같은 태도로 나온다면 물리적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 와중에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특히 담화문에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걱정을 했는데, 과연 평화시위에 강경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주지 않는 것인지 자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헌법 상 기본권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가 국민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는 협상을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는 정부가 어떤 협상을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의 불신은 커질 것이다. 정부는 멀리 내다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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