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창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지 소인배들의 득세를 걱정하며 이날부터 곡기를 끊었다. 한 알의 곡식과 한 모금의 물마저 입에 넣기를 거부했다. 도학자로 살아 온 자신을 단 한순간도 후회해 본 적이 없던 정여창은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영가(靈駕)의 옷자락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장차 불어 닥칠 사화의 참극을 도심(道心)의 힘으로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순천에서 유배중인 김굉필도 마찬가지였다. 김굉필은 자신을 찾아 온 최충성 같은 제자들에게 도학을 강의할 때마다 마지막 강의라는 느낌이 들어 '이제 너희들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허공을 응시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래도 김굉필은 종성에 있는 정여창이 곡기를 끊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펄이 발달한 순천의 낮은 바다에서 제자들이 잡아온 숭어와 전어를 상에 올릴 때는 반드시 정여창과 함께 음미하지 못하는 처지를 딱하게 여겼던 것이다.
한편, 이때 서울의 임사홍은 성종의 명으로 사약을 받고 죽은 폐비 윤 씨의 어머니인 신(申) 씨에게 뇌물을 받고 연산주를 만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연산주는 아직도 폐비 윤 씨가 자신의 생모인 줄 모르고 있었는데, 신씨는 임사홍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을 연산주에게 데려가 주거나 모녀의 억울함을 연산주에게 고해달라고 부탁하였던 것이다.
이때까지 연산주가 폐비 윤 씨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은 성종이 폐비 윤 씨에게 사약을 내리면서 군주로서 신하들에게 '이 문제는 앞으로 백 년 동안 누구도 입 밖에 내어서는 안된다'고 엄명을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임사홍은 입궐의 허락을 받아 궁문을 넘어서면서 수문장에게 거드름을 피웠다.
"내금위장은 어디 계신가."
"저녁을 드시러 갔습니다요. 나으리, 지금 불러올까요."
"아닐세."
임사홍은 관복 자락을 펄럭이며 대궐 뜰로 나아갔다. 그런 임사홍의 위세를 제지할 어영청의 군관은 아무도 없었다. 일찍이 채홍사로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여 연산주의 신임을 받아 온 임사홍이었으므로 어영청이나 내금위의 무관들이 벼락승진을 하기 위해 그에게 줄을 서고 있는 형편이었다. 임사홍은 자신의 뾰쪽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금위장이 허기를 달래는데 이 임사홍이 넓은 도량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임사홍은 퇴궐하는 당상, 당하관들을 마주칠 때마다 '어흠' 하고 갈지자걸음을 느리게 걷다가도 그들이 사라지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소리 내어 웃었다.
"움하하. 나는 너희들이 저지른 죄를 알고 있지. 전하의 어머니를 죽이고 방관한 너희들의 죄상을 낱낱이 알고 있어. 전하께서 그것을 알게 된다면 도대체 살아남을 인간이 몇 놈이나 될꼬. 그것이 궁금하군 그래."
지금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것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연산주에게 신 씨를 소개하는 동시에 고자질하는 대가로 신 씨에게 받은 뇌물로 정치 자금이 넉넉해진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윤 씨를 폐비시키는 데 간여한 성종 때의 늙은 상신들을 머잖아 한판승으로 물리치게 되었고, 세 번째는 연산주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생각하는 사림들을 일거에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고자질로 성종 때의 상신과 도학의 사림들이 제거되면 임사홍은 말 그대로 연산주의 비호 아래 제일의 권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임사홍.
중국어에 뛰어났던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 있는 곳을 좇아 아부하고 술수를 부리며 살았던 인물이었다. 왕실의 권력을 좇아 그 자신이 먼저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의 사위가 되었다. 그리고 세 아들 중 두 명을 왕실의 사위가 되게 하였다. 광재(光載)는 예종의 딸 현숙공주의 남편으로 풍천위(豊川尉)가 되고, 숭재(崇載)는 성종의 딸 휘숙옹주에게 장가들어 풍원위(豊原尉)가 되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홍문관 교리에서 여러 관직을 거쳐 훗날에는 이조판서에 이르렀고, 중국말을 잘하여 중국사신으로 다녀왔으며 숭문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유자광과 손을 잡고 성종의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효령대군의 손자 서원군의 사위인 도승지 현석규(玄錫圭)를 왕안석과 같은 소인이라고 하여 탄핵의 여론을 부추겼다. 도승지와 승지 간의 충성경쟁으로서 성종의 총애를 더 받기 위한 궁중의 암투였다.
당시 도승지는 현석규였고, 승지는 임사홍, 한간, 손순효 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종은 각자의 직무를 꼬투리 삼아 권모술수가 벌어지는 것을 간파하고는 편을 들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했다.
"석규와 사홍은 모두 종친의 사위이고, 한간은 나의 사촌이니 어찌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할 수 있으리오. 다만 논란을 부른 당사자들의 벼슬을 바꾸리라."
논란의 불똥은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지평 김언신이 도승지에서 이조판서로 자리를 바꾼 현석규의 아름답지 못한 이전의 처신을 다시 문제 삼아서 탄핵한 일을 두고 성종이 화를 냈던 것이다.
"네가 석규를 소인이라 하고 당나라의 난신 노기(盧杞)와 송나라의 난신 왕안석에 비유하였느냐. 마땅히 의정부와 이조에 두루 물어서 만약 그러한 사실이 석규에게 없다면 임금을 속인 죄를 받겠는가."
"신은 마땅히 극형을 받겠습니다."
이 일을 두고 혹자는 김언신이 임사홍이나 유자광의 사주를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석규는 부당하게 일을 처리한 일이 있고, 권력을 남용하여 휘둘렀으므로 대간(臺諫)의 논박을 받을 만했다.
대간의 품계는 비록 정 5품 정도로 낮았으나 정 3품 이상의 당상관을 임금에게 가차 없이 논박할 수 있는 언로(言路)의 역할을 했다. 난신과 간신들, 즉 소인배들이 판치는 조정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대간들의 굽히지 않는 직언 때문이었다.
성종은 의정부와 이조에 물었으나 현석규의 눈치를 보는 답변만 돌아왔다.
"현석규가 소인인 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김언신이 성종을 속였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종은 노하여 김언신을 의금부에 가두어 국문케 하였다. 그러자 의금부에서는 바른 말을 한 김언신을 기망률(欺罔律; 임금을 속인 죄)로써 곤장 1백대에 도형(徒刑; 복역) 3년을 논하였다.
그러나 성종은 의금부에서 내린 형량에 불만을 터뜨렸다.
"마땅히 죽을죄인데 어찌 형벌이 가벼운 것이냐. 언신이 과인에게 약속하기를 극형도 마다하지 않았느니라."
성종은 대궐 뜰로 김언신을 잡아오게 하였다. 친국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지중추부사(종 2품) 김뉴(金紐)가 소를 올려 성종의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대간은 임금의 눈과 귀입니다, 하는 말이 전하께 미치더라도 전하께서는 얼굴빛을 고치셔야 합니다. 논박하는 일이 의정부에 관계되면 재상도 처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 석규가 군자인지 소인인지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령 석규가 군자인데 언신이 그를 가리켜 소인이라 했더라도 잘못 추측하고 그릇 고집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물며 석규는 갑자기 등급을 뛰어 벼슬이 판서에 이른 혁혁한 대신이라 할 수 있사온데, 언신은 미관(微官)으로서 마음속에 생각한 그대로를 감히 전하의 엄한 위엄 앞에 아뢰었으니, 말이 비록 맞지 않았더라도 옛 사람의 강직한 기풍이 있지 않습니까. 마땅히 이를 표창하여 선비들에게 권장해야 될 일이온데, 도리어 죄를 주게 되니 신은 앞으로 대간의 마음이 풀어질까 염려됩니다.>
성종은 바로 느낀 바가 있었으나 소를 올리고 엎드려 있는 김뉴를 물러가게 했다.
"언신이 스스로 극형을 받겠다고 말했으니 내가 마땅히 알아서 결정할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물러가시오."
김언신이 대궐 뜰에 잡혀 와 있다는 말을 들은 성종은 추관들을 거느리고 나와 대뜸 김언신을 꾸짖었다.
"기망한 죄는 마땅히 죽일 죄이나 네가 지금도 석규를 소인이라 하겠는가. 아니면, 당초에 말한 것이 그릇된 것이냐."
그러나 김언신은 굽히지 않았다.
"신이 그릇되게 고집하는 것이 아니오며 석규는 실로 소인입니다."
"네가 석규를 노기나 왕안석과 같다 하였으니 나를 당나라의 덕종과 송나라의 신종에 비하는 것이냐."
그래도 김언신은 서릿발 같은 직언을 하여 추관들의 목이 움츠러들게 했다.
"덕종은 노기 하나만을 썼고, 신종은 왕안석 하나만을 썼습니다. 석규는 노기와 왕안석의 음험하고 간사함을 겸했는데도 전하는 그를 쓰시니, 전하께서는 덕종과 신종보다 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추관들이 벌떡 일어나 턱을 떨며 고함을 쳤다.
"언신에게 주리를 틀지 않고 무얼 하는 게냐. 도사는 이러고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나졸들이 주장(朱杖)을 김언신의 양다리 사이에 끼어 넣는 순간까지도 김언신은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나졸들은 김언신의 당당한 기세에 눌려 주리를 틀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임사홍과 유자광 편에서 음모를 꾸미던 박효원(朴孝元)이 다시 소리쳤다.
"전하,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언신은 곧 실토할 것이옵니다."
"아니다. 나졸들은 물러가 있거라."
성종은 무슨 까닭인지 노기를 풀었다. 추관들은 김언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성종의 얼굴빛이 갑자기 온화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귀를 기울였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말을 고치지 않는 것을 신(信)이라 하느니라. 간하는 신하를 죽인 자는 오직 걸주(桀紂)뿐이었느니라. 너를 옥에 가둔 것은 네가 고집이 센 때문이다. 내가 어찌 간하는 신하를 죽이겠느냐. 옛날 당 태종이 처음에는 간하는 말을 잘 듣다가 뒤에 가서 점점 그렇지 못했던 일을 본받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말할 만한 일에 대해서는 있는 말을 다 하여라. 네가 강개(慷慨)하여 끝내 굴하지 않는 것을 나는 매우 칭찬할 것이니라. 가서 너의 직무를 보라."
이 일로 유자광은 동래로, 임사홍은 의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김언신은 성종에게 술을 하사받아 마셨다. 이후, 유자광과 임사홍은 성종이 승하할 때가지 권력에서 멀어졌으나 연산주가 왕위를 잇게 되면서, 여인을 갖다 바치는 채홍사를 하는 등 주군(主君)의 온갖 비위를 다 맞추며 재기하였던 것이다.
임사홍은 신수근이 오는 것을 보고는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신수근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대감, 무엇이 그리 즐거우십니까."
"아니, 지금 즐거울 일이 무에 있겠소. 아니 그렇습니까."
임사홍은 도승지 신수근에게 점잖게 고개를 숙였다. 연산주를 만나는 일도 신수근의 주선으로 독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신수근은 도승지라는 벼슬을 십분 활용하여 적당하게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삶을 즐기는 위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신수근은 특별한 동지도 적도 없었다. 드러나게 거만하지 않았으므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고, 논리 정연한 언변도 있어 사림들에게 함부로 무시당하는 일도 없었다.
신수근은 관모가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흔들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임사홍은 웃음을 참지 못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초상집의 상주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감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분명코 이 두 귀로 들었소이다. 헌데 지금의 대감은 마치 초상집의 상주 같소이다."
"초상집에 염장 지르는 소리 그만 하세요. 어찌 지금의 심정이 즐겁겠습니까. 전하를 뵈올 일을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고 살이 떨립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자리에서는 말 못합니다. 못해요.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선왕 때의 비극입니다."
신수근은 임사홍의 연기에 꼬박 속아 더 묻지 못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연산주를 독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성사시켜 주었던 것이다. 이번뿐만 아니라 자주 있어 왔던 일이기도 하여 군주와 신하 간의 독대를 극도로 경계하는 대간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임사홍은 비선조직의 수장으로서 대감이나 요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의 동태가 그의 입을 통해서 연산주에게 들어간다고 보면 틀림없었다. 신수근은 몇 걸음 걷다 말고 뒤돌아보면서 큰 눈을 껌벅거렸다. 아무 자리에서나 낄낄 웃음을 터뜨리는 임사홍이 참담한 얼굴을 하고 비극 운운한 탓이었다.
'선왕 때의 비극이라…. 그걸 고자질하겠다는 말인가. 선왕 때의 비극을 다시 끄집어내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신수근은 더 이상 머리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지밀내시를 통해 임사홍이 왔음을 알렸다. 그런 다음 다시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승지회의 준비를 서둘렀다.
임사홍은 연산주 앞에 나아가 엎드리자마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하, 폐비 윤 씨는 엄숙의와 정숙의 두 사람의 참소로 성종께서 사약을 내려 죽이었습니다."
"폐비라니, 폐비의 죽음이 과인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이때까지도 연산주는 폐비 윤 씨가 자신의 생모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폐비 윤 씨 이야기를 어린 시절에 듣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고 믿어 왔던 것이다. 임사홍은 조정이 한 순간에 박살이 날 수 있는 사건이었으므로 막상 입을 열었으나 숨이 막혔다.
"왜 말을 못하는가. 폐비가 과인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소상히 말하시오."
"엄숙의와 정숙의가 무함하여 성종께서 사약을 내리신 것입니다."
"과인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소. 엄숙의와 정숙의를 처벌해달라는 말인 것도 같고. 아,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구나."
연산주는 본능적으로 무엇이 짚이는지 현기증을 호소했다. 칼을 끌어당겨 잡은 후에야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연산주는 엎드려 있는 임사홍의 목을 벨 것처럼 칼을 빼어들고 소리쳤다.
"어서 말해 보시오. 과인을 기망할 때는 이 칼이 용서치 않으리라. 어서 말해 보시오."
"전하. 망극하옵니다."
임사홍은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죄인인 듯 머리를 마루바닥에 찧었다.
"전하, 망극하옵니다. 폐비께서는 전하의 생모이십니다."
"그 말이 사실이오."
"신은 그때 왕비의 폐위를 만류하였사옵니다만 일개 승지로서 역부족이었사옵니다. 폐비의 어머니인 신 씨를 불러들여 자세한 전말을 들어보시면 제 말이 사실인 것을 믿으실 것이옵니다."
연산주는 의외로 냉정하고 침착했다. 병사를 신 씨의 사저로 보내 대궐로 불러들이는 명을 즉시 내렸다. 임사홍은 더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말했다.
"전하, 눈물이 앞을 가려 전하께 무슨 말로 위로의 말씀을 드릴지 생각나지 않사옵니다. 다만 전하의 다급한 마음을 헤아려 폐비의 어머니인 신 씨를 벌써 대궐 밖에 대기시켜 놓았나이다."
"알겠소. 과인은 그대의 충정을 잊지 않을 것이니라. 물러가 있으시오."
임사홍은 궐 밖으로 나와 가마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퇴궐하는 벼슬아치들이 자신을 경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치자, '똥물에 튀겨죽일 놈들!' 하면서 수염을 만지곤 했다.
다음날 일찍 연산주 앞에 나아간 신 씨는 임사홍이 예견한 대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폐비가 왜 사약을 받고 죽었는지를 다 얘기했다. 더구나 신 씨는 보따리를 풀어 폐비가 사약을 마신 뒤 죽어가면서 피를 흘린 저고리를 내보이면서 통곡했다.
"전하, 폐비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폐비의 고혼이 아직도 구천에서 떠돌고 있을 것이옵니다. 폐비의 고혼이 편히 눈감게 해주옵소서."
"사홍이 말하기는 엄숙의와 정숙의가 폐비를 죽였다는데 사실입니까."
"두 숙의가 선왕(성종)의 사랑을 믿고 투기를 일삼사옵니다."
"으음!"
연산주의 눈은 금세 붉게 충혈이 되었다.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연산주는 두 숙의가 머물고 있는 궁으로 달려갔다. 내시들이 뒤따라오면서 만류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 씨가 고해바친 얘기와 달리 윤 씨가 폐비가 된 것은 사납고 질투심 많고 공순하지 못한 그녀의 거친 성품이 무엇보다도 큰 이유였었다.
윤 씨가 숙의 때 성종의 사랑을 받아 원자(元子; 연산주)를 낳게 되자, 윤 씨는 왕비로 책봉되었는데, 이때부터 윤비(尹妃)는 후궁이 되려는 엄 씨와 정 씨를 투기하고 심지어는 성종에게도 공순하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기까지 하여 성종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졌고,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도 크게 노했다. 이때 대신 윤필상 등이 성종의 심중을 헤아려 폐비를 논하게 되었고, 성종은 윤비를 빈(嬪)으로 강등시켰다가 아예 폐위시켜 사저로 보내버렸다.
폐위된 윤 씨는 밤낮으로 울다가 끝내는 피눈물을 흘렸는데 궁중에서는 윤 씨를 중상함이 날로 더했다. 특히 인수대비는 성종의 지시로 윤 씨를 염탐하는 내시를 불러 '윤 씨가 죄인답지 않게 머리를 빗고 낯을 씻어 예쁘게 단장하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없다'고 성종에게 보고하게 했다. 이에 성종은 내시의 참소를 믿고 죄를 더 주어 사약을 내렸던 것이다. 성종이 폐비에게 사약을 내리는 전지(傳旨)는 다음과 같았는데, 전지는 사약을 들고 간 승지 이세좌가 읽었다.
<폐비 윤 씨는 성품이 본래 음험하고 행실이 패역함이 많았다. 전일 궁중에 있을 때 포악함이 날로 심하여 이미 삼전(三殿; 성종의 조모 정희왕후, 생모인 소혜왕후, 양모인 안순왕후)에게 공순하지 못하고, 또 나에게도 행패를 부리며 노예처럼 대우하여 발자국까지 깎아버리겠다고까지 말한 일이 있었으나, 오히려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폐비 윤 씨는 일찍이 역대 모후(母后)들이 어린 임금을 끼고 정사를 마음대로 하였던 일을 보면 반드시 기뻐하고, 또 항상 독한 약을 품속에 지니기도 하고 혹은 상자 속에 방술 서책을 간수하기도 했으니, 그것은 다만 그가 시기하는 사람만 제거하는 것만이 아니고 장차 나에게도 이롭지 못한 것이었다. 일찍이 혼자 말하기를 '내가 오래 살게 되면 장차 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하니 이것은 종묘와 사직에 관계되는 부도(不道)의 죄인데도 오히려 차마 대의로 처단하지 않고 다만 폐하여 서인(庶人)을 삼아 사제(私第; 사택)에 있게 하였더니, 지금 외부 사람들이 원자가 점점 커가는 것을 보고는 앞뒤로 시끄럽게 이 문제로 말을 하니 비록 지금은 그다지 걱정할 것이 못되지만 훗날의 화(禍)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만약 후일에 그의 흉험한 성질로 국권을 잡게 된다면 원자가 비록 현명하더라도 중간에서 어찌 할 수 없게 되고 발호하는 마음은 날로 방자하게 될 것이니, 한나라 여후(呂后)와 당나라의 무후(武后)의 화를 멀지 않아 보게 될 것이므로 나는 생각이 이에 미치면 매우 한심하다. 지금 만약 이럭저럭 넘겨 큰 계획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후일 나라 일이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뉘우쳐도 어찌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의 무제도 오히려 만세의 계획을 위하여 죄 없는 구익부인(鉤弋夫人)을 죽였는데 하물며 이 음험한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음에랴. 이에 이달 16일에 사제에서 죽게 하노라.>
여기서 폐비 윤 씨가 '품속에 독약을 넣고 다니고 상자 속에 방술 서책을 간수하기도 했다'는 것은 성종이 윤 씨의 방에서 본 사실이었다. 성종은 폐비가 되기 전의 윤비 방에서 작은 주머니에 든 비상(砒霜)과 상자 속에 간수된 방술 서책을 보았던 것이다. 그때 윤비는 방술 서책을 여종 삼월이가 친잠(親蠶; 누에를 길러 옷을 만드는 일) 할 때 올린 것이라고 했으나 공초(供招)에서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고 하였던 것이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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