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주검 같은 밤을 지키는 이름 없는 수많은 별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주검 같은 밤을 지키는 이름 없는 수많은 별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3장 天道가 무너진 땅 <17>

정여해는 중풍 기운이 심해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잠시 눈을 붙였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깐 동안 스쳐간 낮꿈에서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들이 해망산 아래로 내려와 정여해를 불렀다. 놀란 채 지석강 쪽으로 뒷걸음질치다 보면 어느새 정여창과 김굉필이 나타나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정여해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샘가로 나아가 찬물을 들이키고 나서는 도리질을 했다.
'이상하구나 이상도 하구나.'
뒤따라 온 제자가 긴장하여 물었다.
"선생님,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소자(小子)도 궁금합니다."
소자란 원래 아들이 부모에게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인데, 당시에는 제자가 스승을 부모처럼 높이 생각하여 자신을 소자라고 여겼던 것이다.
"낮꿈이 수상쩍구나. 낮꿈이 괴이하구나."
"의원 말에 의하면 기운이 쇠할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몸을 보양하심이 어떠하신지요. 마침 저희들이 지석강에서 잡아온 자라가 있사옵니다."
"아니다. 내 염치없이 어찌 보양식을 먹을 수 있겠느냐."
실제로 정여해는 김굉필을 만나고 온 이후부터는 일체 고기를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연산주에게 올리려던 상소문이 불속에서 사라진 후부터는 유배 간 동지들을 생각하여 상 위에 올려진 고기 음식을 금했다. 제자들이 지석강으로 나가 천렵하여 잡은, 능주 사람들이 예부터 보양식으로 즐겨 고아먹는 자라나 가물치 그리고 쏘가리 등은 정여해의 상에 절대로 오르지 못했다. 정여해는 양인들이 끓인 미꾸라지를 갈아 만든 추어탕마저 거절했다.
"선생님께서 건강하셔야 저희들이 의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알았다. 그대들의 정성이 기특하다만 유배 간 동지들을 생각하니 한 점의 비린내도 입에 묻힐 수 없구나."
"용서하십시오. 선생님의 도심(道心)을 헤아리지 못하고 저희들의 비루한 생각을 내보였습니다."
"성균관에 입학한 구두남이 소식을 듣고 있는가."
"잘 있다는 서신을 받았사옵니다. 두남에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부모의 병환이 깊어 서울에 가 있으면서도 수심이 많은 줄 아옵니다."
"그럴 것이야. 두남이는 능성의 효자가 아닌가. 능성 사람 중에 부모에게 조석으로 문안 인사를 한 사람은 두남이 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두남이는 벼슬보다 절효(節孝)로 오래오래 이름을 남길 사람이야."
정여해는 낮꿈의 여진이 가라앉자, 다시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학당에서 제자들의 글 읽는 소리가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들렸다. 해망산의 숲속까지 날아온 꾀꼬리가 꾀꼴꾀꼴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정여해는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었다.
▲ 능주의 옛 전경. ⓒ프레시안

그러나 안도하는 그의 표정은 잠시였다. 그의 입술은 곧 실룩거렸고 얼굴은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검은 도포 차림의 저승사자가 무리 지어 해망산 정상에서 숲을 헤치며 내려오고 있었다. 말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잡아 낚아채 갈 것처럼 낄낄낄 웃곤 했다.
정여해는 눈을 뜨고 망건을 바로 했다. 저승사자 중 한 명이 잽싸게 자신의 망건을 만진 뒤 연기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검은 그림자의 실체가 바로 저승사자였던 것이 분명했다.
'동지 중에 누가 또 변고를 당한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시도 때도 없이 저승사자가 나타날 리 없지. 종성에 있는 일두 형에게 변고가 생긴 것인지, 순천에 있는 대유 형에게 탈이 생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아, 불길한 예감이 흙바람 같이 불어오니 이 일을 어이할꼬.'
정여해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비록 몸은 성치 못했으나 굳은 도심을 지닌 그의 의식은 거울처럼 맑았던 것이다. 정여해가 연산주 10년 갑자년 겨울을 나고서부터 악몽을 자주 꾸는 동안 정여창은 봄을 넘기지 못하고 병이 깊어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의 시신을 운구한 사람들은 종성의 제자들이었다. 함양까지는 2천 리나 됐지만 종성의 제자들은 나무 관을 메고 장맛비를 맞으며 운구하여 함양 승안동(昇安洞)에 반장(返葬)을 했다. 이른바 스승을 흠모한 종성 제자들의 2천리 머나먼 운상 길이었다.
정여해는 정여창의 부음을 뒤늦게 듣고서 자신이 꾼 악몽을 원망했다. 고약한 꿈으로 놀라고 시달린 탓인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정여해는 중풍으로 몸이 몹시 불편했으므로 자신을 대신하여 아들 억령(億齡)을 함양으로 문상 보내기로 했다. 정여해는 침소로 억령을 불렀다.
"내가 왜 너를 불렀는지 알겠느냐."
"네, 아버님."
"네가 내 대신 지금 함양으로 떠나거라. 가서 영구(靈柩) 앞에 곡하고 내 대신 제문을 읽어라."
"제문은 어디 있사옵니까."
"붓과 벼루를 가져오너라. 지금 쓸 터이니라."
정여해는 몸이 불편하여 정좌하지 못하고 베개와 죽부인을 벽과 등 사이에 끼어놓고 억령이 갈고 있는 먹물에 붓을 적셨다.
▲ 옛 능주관아의 정문인 죽수절제아문. 능성현의 동헌이었던 녹의당의 정문이었는데 최초의 건립연대를 확인할 수 없지만 녹의당 건립과 함께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녹의당 건물은 없어졌다. 이러한 아문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되지 않는 문화재다. 능성현에서 능주목으로 승격되어서도 동헌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프레시안

<족형(族兄) 일두 선생이 갑자년 4월 초하루에 종성의 유배지에서 돌아가시어 함양의 선영 아래로 반장함에 있어, 족제(族弟) 여해는 호남지방에 병들어 누워 달려가 곡하지 못하고, 삼가 눈물을 거두고 글을 엮어 아자(兒子) 억령을 대신 보내어 영구 앞에 두 번 절하여 슬픔을 아룁니다.
아아, 공(公)은 세상에 드문 정기가 뭉쳐 뛰어난 슬기를 자질로 받았습니다. 좋은 옥(玉)과 정순한 금(金)과 같아서 조졸한 빛에 아무 흠이 없었으며 명나라 사신이 사랑하여서 이름을 지어주며 마지 않았습니다.
지극한 효도는 천성(天性)이어서 깊은 사랑이 몸가짐과 얼굴에 나타났고, 아버지가 죽어 자식의 영화가 되려 하매 어찌 그 녹을 받을 것인가 하고 사양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죽어 자식이 영화가 되려 하매'란 정여창의 아버지 정육을(鄭六乙)이, 세조 13년 함길도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병마우후(兵馬虞侯)란 군직을 가지고 싸우다 무공을 세우고 전사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때 정여창은 18세였는데, 순절한 사람의 자식에게도 군직을 주는 규례에 따라 나라에서 벼슬을 주려 하였지만 정여창은 혈기 왕성한 18세의 나이답지 않게 명리(名利)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며 벼슬을 사양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해를 받았는데 아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영예를 받으니 국가의 은덕이 비록 중하나 차마 하지 못할 일입니다. 아버지는 무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예라는 것은 당대에 그치는 것이지 결코 후손으로서는 받을 수가 없겠습니다."
정여해는 아들 억령에게 정여창의 효성도 덧붙여 말하였다.
"족형께서는 전사한 아버지를 찾으러 마을의 두 장정과 하인 둘, 그리고 말 두 필을 거느리고 함길도 북청, 길주까지의 2천리 길을 올라 갔느리라. 마침 때는 여름이라 전사자의 쌓인 시체더미에서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느니라. 이윽고 시체 더미 속에서 아버지를 찾아 목이 끊어질 듯이 호곡하고 집을 떠난 지 꼭 한 달 만에 함양에 도착했으니 이때부터 족형의 효성스러운 이야기는 온 나라에 퍼졌느니라."
정여해는 다시 붓에 먹을 묻혀 제문(祭文)을 써나갔다.

<서당에 나아가서 수학하는 데 영특한 재주가 우뚝하였으며, 경(敬)으로써 몸을 단속하였고, 독실한 믿음으로 뜻을 굳게 하였습니다. 학문이 날로 진보하여서 기초와 근본이 자립하였습니다.
점필재 문하에 명함을 바치자 포장(襃獎)과 허여(許與)함을 크게 받았고, 고기가 냇물을 만난 듯, 새가 구름을 만난 듯 서로의 만남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주자가 묻고 대답하는데, 계통(季通; 蔡元定의 자, 주자의 老友)만이 서로 이야기한 것처럼 했으며, 스승을 같이하고, 덕을 같이 한 이로 한훤당 같은 벗이 있었습니다.
나아가서 묻고, 물러나서 변론하여 그 즐거움이 지극하였고, 한 벌의 소학 책으로 함양해서 순숙하였으며, 그 다음에 네 가지의 자서(子書 ; 四書)를 읽어 학문의 길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성과 천리를 탐색하여서 깊은 경지에 도달하였고, 큰 줄기가 정정(亭亭)하여서 바른 도맥(道脈)에 줄을 이었습니다.
경치 좋은 자연을 사랑하는 뜻이 깊어서 진산(晉山)의 악양에 터를 잡아 집을 지으셨습니다. 땅과 사람이 서로 만나서 읊조리며 스스로 즐거워하였습니다. 섬진강이 일렁거리고, 두류산이 우뚝 했는데 다 보고는 내려와서는 외로운 배에 몸을 실어 태연자약했습니다.
홀로 밝고 넓은 도체(道體)를 보아 관찰했으니 가슴에는 속기가 없었습니다. 체(體)가 있고 용(用)도 있어서 대인의 일이 갖추어졌으니 백리 되는 고을이 작기는 해도 재주를 펼치기에는 또한 넉넉하였습니다. 광풍루(光風樓) 제월당(霽月堂)의 옛집을 길가는 사람마다 손으로 가리킵니다.>

억령은 아버지의 붓끝에서 족형에 대한 그리움을 물씬 느꼈다. 나이가 동갑이었으므로 족형, 족제가 아니라 서로가 친구처럼 토론하고 때로는 씨름판을 벌이며 나뒹구는 죽마고우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붓끝이 칼날처럼 변하여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가슴 속에 품었던 평소의 한이 붓끝에 번져 나오고 있었다. 유교의 도가 액운을 당한 처지와 소인배들이 판치는 세상을 원망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 영벽정 안에 있는 김종직의 시액. ⓒ프레시안

<조정에서 국정에 참여하게 했으면 임금과 백성들을 요순시대와 같이 했을 터인데, 유도(儒道)가 액운을 당하여 여러 간사한 무리들이 독을 빚어 스승의 무함을 해명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유배를 당했습니다. 7년 동안 복조부(鵩鳥賦)를 읊으면서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떠나 유유자적하심이 공의 처지에서는 뜻대로 된 일이오나, 다만 우리 후학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유도는 누구에게 계승되겠으며, 이 세상은 누구에게 부식(扶植)되겠습니까. 가장 심한 것은, 평생에 원한이 그지없다는 것입니다.>

억령은 이를 악물고 먹을 갈았다. 아버지 정여해의 눈에서는 살기와 결기가 함께 느껴졌다. 그러나 정여창과의 정리(情理)를 펼치는 다음 문장부터는 정여해의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가시고 봄바람이 이는 듯 훈훈한 온기가 돌았다.

<사적으로는 같은 친족이요, 또 스승과 배움의 자리를 같이하여 일마다 의논하지 않음이 없었고, 의심나는 것마다 질정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내가 학문에 뜻을 둔 것을 보고는 서신을 보내어 나를 발전케 하였고, 내가 갈 방향을 잡지 못한 것을 보고는 인도하여 함께 갔습니다.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호남이 지척인 양 여겼으며, 방장산 쌍계사에서 존귀한 발자취를 따라 의지할 적에, 하나에도 우리 형이요, 둘에도 우리 형이었습니다. 한평생을 의지하고 믿으니 이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억령은 아버지의 붓끝이 떨고 있음을 보았다. 정여해의 얼굴에는 어느새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억령도 참지 못하고 으으으 신음을 뱉어내면서 통곡을 했다. 그러나 정여해의 호통소리에 억령은 울음을 삼켰다.
"못난 놈 같으니라고!, 사내는 감상에 젖어 눈물을 욕보여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정여해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는 붓에 먹물을 묻혔다. 정여창의 혼령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자못 냉정하여져서 마무리 짓는 <제문> 한 자 한 획에 정성을 다하였다.

<천 리나 떨어진 종성에, 산과 강이 멀고 아득한데, 서신을 보내어 나를 경계하니, 지극한 생각과 간절한 정성을 쏟았는데, 어찌된 일로 하루아침에 부음이 날아와 나를 놀라게 하는가. 아아, 모든 일이 황량할 뿐입니다. 고향의 산언덕에 반장하게 되니, 황천에 문이 닫긴 것을 영원히 안타까워하면서도, 신병으로 달려가서 영결(永訣)하지 못하니 지극한 정곡(情曲)을 다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대신 보내어 충정을 아뢰오니 산과 강이 아득할 뿐입니다. 혼령이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바라옵건대 살피시어 흠향(歆饗)하소서.>

정여해는 심신이 극도로 피곤하였으므로 <제문>을 반복해서 읽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누운 채 억령에게 말했다.
"틀린 글자나 운(韻)이 서툰 것을 나에게 알려다오."
그러나 정여해는 피곤하여 곧 곯아떨어졌고, 억령은 놀랍게도 단 한 자도 거슬린 글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정여해는 도학의 입장에서 시문을 멀리했으나 타고난 문재(文才)가 있어 마음을 시문으로 표현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병으로 불편한 육신임에도 불구하고 누에가 비단실을 뽑아내듯 심금을 울리는 글을 남긴 것이었다.
정여해의 건강은 자식들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큰 걱정거리였다.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서울로 올라가 성균관에 입학한 구두남도 정여해의 건강을 누구보다도 걱정을 했다. 그러던 차에 구두남은 노환으로 고생하던 아버지의 병이 악화되자, 성균관을 휴학하고 미련없이 내려와 버렸다.
▲ 옛 능주향교의 모습. ⓒ프레시안

그러나 실제적인 낙향의 이유는 성균관 유생들마저 도학보다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패거리가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유생들 중에는 연산주의 측근인 임사홍에게 줄을 선 사람도 있었고, 훈구대신에게 줄을 선 사람도 많았다. 그런가 하면 그들 모두를 비판하는 청류 사림을 좇아 몰려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일찍이 스승인 정여해에게 도학을 배운 구두남은 그런 패거리 문화에 구역질을 느꼈다. 그래서 구두남은 능성의 아버지와 스승인 정여해의 건강의 악화를 핑계로 성균관을 휴학하고 낙향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 구두남을 정여해는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구두남의 용기 있는 행동을 격려하고 칭찬했다.
"그래, 어두운 시대에 벼슬을 탐해서 무엇하겠나. 뭇 소인배들과 함께 조정에 있는 것도 부끄러운 노릇이지. 나도 일찍이 사헌부 지평 벼슬을 제수받았을 때 사양하지 않았는가.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양해서 점필재 선생 같은 도학자가 되는 것이 생을 빛나게 하는 일이지 않겠나. 이제부터는 먼지 풀풀 날리는 지석강을 넘어가지 말고 나와 함께 도심(道心)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살도록 하세."
"부모님께서 몸이 위태로우십니다."
"예를 다해 모시면 후회가 없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 상례란 사람이 죽어서 치르는 예가 아닐세. 살아 생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례란 말이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예를 다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지."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합니다. 역시 성균관을 휴학하고 내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서 잡담이나 하고 부질없이 정치 얘기나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낼 뻔했습니다."
"유생들과 어울리며 탁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곁가지에 불과하지. 그대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유도(儒道)가 아닌가. 그러니 유도만 붙들고 있으면 패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야. 참 스승이 있다면 이 정여해가 아니라 하나도 유도요, 두 번째도 유도가 아니겠나. 공부하는 데 지름길은 한눈 팔지 않고 곁가지에 속지 않는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난 요즘 악몽을 자주 꾸고 있어. 우리나라 기운이 음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검은 그림자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네."
"몸이 고단하시니까 그러지 않겠습니까."
정여해가 갑자기 구두남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를 바로 보게나."
"네, 선생님."
그러자 정여해는 짧게 한 마디 뱉어냈다.
"자네는 내게 숨긴 게 있어."
"선생님, 제가 숨긴 것이 있다니요."
"갑자년의 화가 무오년보다 더 지독하고 참혹할 것이야. 자네도 알 것이지만 일두 공(公)의 돌연한 죽음이 그것을 예고하고 있어. 그러지 않는가. 아아, 이 일을 어이할꼬."
"사실은 선생님의 마음이 무거워지실 것 같아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언가."
"서울에서는 임사홍이 전하를 속여 재앙을 불러들이는 화매(禍妹)가 될 것이라고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바로 그 얘기네. 올해가 갑자년이 아닌가. 지난 무오년보다 더 참혹한 화가 미칠 것이야. 지금 우리나라는 태풍전야나 다름없어. 소인배들이 하늘의 도를 무너뜨리고 날뛰니 선비들이 또 무사하지 못할 것이야."
"선생님, 이런 때는 어찌 살아야 합니까."
정여해는 손을 뻗어 구두남에게 방문을 열게 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달이 아직 뜨지 않은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자. 저 밤하늘을 보게나."
정여해는 서울에서 내려온 구두남에게 연산주의 시대를 캄캄한 밤하늘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캄캄한 밤하늘에는 크고 작은 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정여해는 다시 입을 열어 구두남에게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반짝이는 별이 되라고 말했다. 주검 같은 밤을 지키는 것은 이름 없는 수많은 별들이라는 얘기도 했다.
정여해는 숨이 가쁜 듯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해가 뜨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별일망정 새벽과 해를 기다리는 별과 같은 존재가 되라고 말했다. 그것이 하늘의 도(道)를 밝히는 도학자의 길이라고 중얼거렸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 화순군 홈페이지 바로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