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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주일미군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 맘대로 안 됐다"

[분석] "한국은 대다수 수용"…동북아안보협력은 어떻게?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22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면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배치와 미사일방어망(MD) 구축까지도 허용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청와대 측의 우려가 담긴 문건을 공개하면서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논란이 3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다음은 소장 사회과학자들의 싱크탱크인 '코리아연구원'과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20일부터 공동기획으로 진행중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동북아 평화' 시리즈의 일환으로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국제관계연구센터장이 한국과 일본에서 자국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비교하는 글이다.

〈프레시안〉은 주최측의 동의를 받아 이 글을 전재한다. 21일 발표된 이 칼럼은 참여연대(http://www.peoplepower21.org)와 코리아연구원(http://knsi.org/~knsiorg/knsi/kor/index)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편집자〉

***Ⅰ. 주일미군의 재편 경과**

미국은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과 해외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일미군의 재조정작업에 착수하였다. 미국이 구상했던 주일미군 재조정의 당초목표는 중앙아시아에서 뱅골만을 거쳐 동해에 이르는 이른바 '불안정한 활꼴'을 총지휘할 광역사령부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미국내 일본전문가들이 초당파적으로 작성한 '아미티지-나이보고서'(2000)에 따른 것으로, 미일동맹을 영일동맹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에 기초하고 있다.

2002년 12월 16일 미ㆍ일 양국은 외무 및 국방 장관급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SCC, 이하 '2+2전략회의')를 갖고 국제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주일미군의 재조정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 하였다. 이 자리에서 양국 장관들은 새로운 안보환경에서 미ㆍ일 양국의 역할과 병력구성 등 방위태세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합의했다.

그리하여 2003년 봄 양국은 이 문제를 논의할 심의관급 방위정책재검토구상(DPRI, Defense Policy Review Initiative)회의를 설치하기로 하고, 미사일방어(MD), 해군전력의 바람직한 방향, 주일미군기지 재배치 등의 협의에 착수하였다. 몇 차례 회의에도 불구하고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2004년 10월 '2+2전략회의'에서 미일동맹 재조정문제를 △정세인식 및 전략목표에 대한 합의, △미군과 자위대 간의 역할분담, △개별적 기지 재조정문제에 대한 협상 등 3단계로 진행키로 합의했다.

그 결과, 2005년 2월 19일 '2+2전략회의'는 새로 정의된 미일동맹의 공통전략목표를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그 뒤 미 1군단의 자마기지 이전, 항공자위대와 미 제5공군의 통합운용 등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 간의 역할분담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마침내 2005년 10월 29일 주일미군 기지의 이전ㆍ통폐합에 관한 합의를 담은「중간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최종합의문은 오는 3월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국빈방문 때 미ㆍ일 정상의 '신ㆍ신안보공동선언'의 형태로 발표될 예정이다.

주일미군의 재조정과정은 미ㆍ일 정부간의 협의가 거의 끝나고, 일본정부와 지방자치체간의 협의만 남겨놓고 있다. 지난 1월 기지이전 예정지인 나고(名護)시의 시장선거에서 기지이전을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이전작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Ⅱ.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① 미일안보의 공통전략목표가 된 대만안전

이번에 합의된 주일미군 재조정의 목표는 미국과 일본이 서로 달랐다. 미국의 재조정 논의 목표는 앞서 언급한 대로 미 본토에 있는 제1군사령부를 일본 내 자마(座間)기지로 옮겨와 '불안정한 활꼴' 지역의 광역사령부로 삼는 것이었다. 반면, 일본정부는 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주일미군 기지의 축소조정을 통해 일본의 부담을 경감하는 데 협상의 목표를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1년 반 동안 양국의 심의관급 논의는 진전을 보지 못해, 결국 '2+2전략회의'를 통해 2004년 말부터 본격화될 수 있었다.

DPRI회의에서 양국은 '공통전략목표'에 쉽게 합의했다. 2005년 2월 19일 '2+2전략회의'에서 '대만안전'을 미일안보의 공통전략목표로 설정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지난 1995년 '미일 신안보 공동선언' 때부터 대만안전을 미일안보의 공통전략목표로 삼기를 원했으나, 중국의 반발을 우려한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아 '주변사태'라는 개념으로 모호하게 처리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도 대중 포위망 구축의 일환에서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같이 미일 양국은 동맹의 목표에 관해서는 쉽게 합의했다. 그러나 제2단계인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역할ㆍ임무 분담문제에 관해서는 좀처럼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다. 군사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일본방위청은 대체로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나, 일본 외무성은 '미일안보조약'을 내세워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양국간 가장 큰 쟁점은 '일본판 전략적 유연성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다음 두 가지 문제들이다. 첫째는 미 제1군단 사령부의 임무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미 5공군(요코다)과 미 13공군(괌) 사령부를 요코다 기지로 통합하는 것이다.

② '일본판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싼 논란

먼저, 미국은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 있는 제1군단 사령부를 자마(座間)기지로 이전한 후 중앙아시아~벵골만~동남아~동해에 이르는 불안정한 활꼴을 담당할 광역사령부(UEy)로 규정하고, 거기에 4성 장군을 임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내부 논란이 있기는 했으나, 미일안보의 범위를 필리핀 이북지역으로 제한하는 '미일안보조약' 제6조의 '극동조항'을 들어 난색을 표하였다. 오키나와기지의 미 해병 원정대는 1971년 반환협정 체결시 미공개각서를 통해 '극동조항'에 제약을 받지 않고 신속기동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열도에 주둔하고 있는 주일미군의 경우는 '미일안보조약'에 작전범위가 규정되어 있으며, 역외작전에 출동하기 위해서는 일본정부와 '사전협의'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작년 4월말 미국정부는 기존 입장에서 후퇴하여 일본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주일미군의 작전을 원활히 하기 위해 괌에 있는 미 13공군 사령부를 미 5공군 사령부가 있는 요코다 기지로 통합하려던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에 대해 일본정부는 제1군단 사령부의 경우와 같이 '미일안보조약' 제6조를 근거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결국 미국 정부는 제13공군 사령부를 요코다기지로 옮기려던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그 대신 괌 사령부 기능을 하와이 소재 히캄기지로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미 공군과 항공자위대의 통합작전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항공자위대 사령부의 요코다 이전은 실현되었다.

이처럼 미일간의 임무와 역할분담 협상은 일본측의 완강한 자세로 미국이 요구했던 '전략적 유연성'이 관철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작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아시아안보회의에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오노(大野) 일본 방위청 장관에게 "일본이 역할확대보다 분담축소만 꾀한다"며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다. 또한 럼즈펠드 장관이 당초 10월 29일의 '2+2전략회의'에 참석한 뒤 한미 연례안보회의(SCM)에 참석하고 중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갑자기 바꿔 일본을 방문대상에서 제외시킨 것도 불만의 표시였다.

***Ⅲ. 주일미군과 주한미군 재편의 비교**

동북아지역에서는 미국의 해외미군재배치(GPR) 계획에 따라 주일미군의 재편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재편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상 한국과 일본이 같은 특수전구에 속하기 때문에 주일미군의 사례는 주한미군의 재조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시기적으로도 2002년 말 동시에 제기되었으며, 공통전략목표(공동비전), 임무분담, 기지 재조정 등 재편 내용도 비슷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재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한·일 양국의 미국과의 관계는 한ㆍ일 양국의 전략적 위상, 협상전술, 협상결과 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한ㆍ일 양국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도 일정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① 한국과 일본의 대미 협상구조

미국과의 전략적 위상이 다른 한국과 일본은 대미 협상틀에서 차이가 났으며 이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영향을 주었다. 미ㆍ일간의 협상주체는 국방장관과 외무장관이 동시에 참여하는 전략대화 성격의 '안전보장협의위원회' (SCC)인 반면, 한ㆍ미는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안보협의회회의'(SCM)이다. 다시 말해, 미ㆍ일간에는 안보전략 차원에서 주일미군 재편논의가 진행된 반면, 한미간에는 그 하위인 군사전략 차원에서만 주한미군 재편논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2005년 11월 17일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선언에 따라 외무장관급 '동맹 동반자관계를 위한 전략협의회(SCAP)'가 설치되어 2006년 1월 19일에 첫 전략회의가 개최되었다. 한ㆍ미동맹의 격상을 상징하는 한미 전략회의의 첫 회의에서 그 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한ㆍ미간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합의되었다. 이것은 심의관급의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안보정책구상(SPI) 회의를 통해 실무급 협의에서 논의되어 온 것을 마지막에 와서 추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동안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을 전제로 휴전선 부근의 붙박이군에서 벗어나 항구에 가깝고 오산 미 공군기지와 인접한 평택지역으로 이전하기로 이미 합의가 되었다. 또한 주한미군은 작년 6월에 해외미군 중 최초로 미 2사단이 미래형 사단인 '운용부대 X(UEx)'로, 예하 1여단도 새로운 편제인 '작전부대'(UA)로 개편을 완료하여 신속기동군 체제를 갖추었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에 알맞은 형태로 이미 바뀐 마당에, 새삼스럽게 한미 전략회의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②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재편 추진순서

주한미군의 재조정 추진과정은 주일미군의 경우와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주일미군 재편의 경우 △정세인식 및 공통전략목표의 공유, △미군과 자위대의 역할분담, △개별적 기지 재조정 등 3단계로 진행되었다. 반면, 주한미군 재조정은 FOTA회의에서 △용산기지 및 개별적 기지의 재조정 및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할분담 문제가 먼저 합의되고, 2005년부터 열리는 SPI회의에서 △한미동맹의 공동비전 문제가 협의되는 등 역순으로 협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대미 협상순서는 '전략적 유연성'문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대원칙을 수용하면서 공통전략목표를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일본열도 내 주일미군에 대해서는 '미일안보조약'을 들어 여전히 '전략적 유연성'을 제한하였다. 다시 말해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원칙을 수용하되 오키나와 주둔 해병원정대에게만 완전한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고, 일본열도 내 미 공군이나 미 해군에 대해서는 '사전협의제도'를 통해 제한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2003년 11월에 개최된 제35차 SCM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지속적으로 중요함을 재확인"하였다. 처음 '확인'한 것이 2002년 12월의 제34차 SCM 때였는지 그 뒤의 FOTA회의를 통해서였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핵심내용은 2003년 6월 제2차 FOTA회의에서 "동맹의 강화(Enhance)·조성(Shape)·조정(Align)" 3원칙에 동의함으로써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을 대부분 합의해 주었다.

앞서 밝혔듯이, 이러한 합의에 따라 주한미군은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에 착수했고 용산기지와 산재된 강북지역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할 채비를 갖추었다. 정부 내 최고위 정책결정단위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논란이 벌어지는 동안, 실무급에서는 착착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실질조치를 취해 나갔던 것이다.

③ 기존 방위/안보 조약과의 관계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재조정 협상에서 공통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것은 기존의 상호방위조약과 안보조약과의 관계 문제였다. 일본의 경우, 「미일안보조약」 제6조에 '극동조항'이 있지만, 그 동안 그 범위로 일본열도와 한반도만을 상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제한을 피하기 위해 1996년 클린턴-하시모토 미일정상간에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하여 미일안보의 적용범위를 '주변사태'로 확대하여 대만해협까지도 포괄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정부는 '주변사태'의 의미를 '지리적 개념'이 아닌 '상황적 개념'이라는 해석을 제시하며 중국의 반발을 회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만의 안전을 미일안보의 공통전략목표로 명확히 내걸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열도 내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서는 안보조약을 들어 제한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방어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전문(前文)에 "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지킨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전략적 유연성'이란 태평양지역을 '특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미 상호방위조약」 위반 논란이 일어났다. 실제로 논란 당시 외교통상부 조약국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의 수용이 조약에 위반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인 것이 방위조약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방위조약의 정신에 입각한 정치선언에 근거한 것이지 분명한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아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와 달리,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등 동맹재정의를 담은 한미 양국 정상간의 '공동선언'과 같은 정치적인 합의가 없었다.

***Ⅳ. 동맹과 다자안보협력의 조화 필요성**

언론에 드러난 겉모습으로 볼 때, 주일미군의 재편을 둘러싼 미ㆍ일간의 논의는 아주 원만하게 이루어진 반면, 주한미군 재편논의는 이견과 갈등으로 점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미ㆍ일간에는 심각한 이견이 존재했다. 실제로 합의된 재편내용을 보면 미국측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며 특히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오키나와 미 해병대의 기지이전 문제는 사실상 미국측 주장이 관철되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주일미군의 재편은 겉으로 조용히 진행된 반면, 주한미군의 재편을 둘러싼 한미간의 논의는 매우 시끄럽게 진행되어 마치 한미동맹이 깨지고 주한미군이 완전 철수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한미군 재편은 전략적 유연성이 수용되는 등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주한미군의 철수나 지위강등은커녕 전력보강과 4성장군 체제의 유지를 통해 세계최초의 유동군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처럼 겉으로 들어난 모습과 실제 협상내용이 다르게 나타난 이유는 일부 국내언론의 과장ㆍ왜곡된 보도태도가 가장 큰 원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바라보는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에도 책임이 있다. 국내 많은 전문가들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추진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거부하거나 비판하는 견해를 마치 국제정세의 흐름도 모르는 단견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이번 주일미군의 사례에서 보듯이, 1971년 오키나와 반환협정시 합의된 미 해병대의 전략적 유연성을 제외한다면 일본열도 내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크게 제한되어 있다. 물론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는 있다. 일본측의 반대논리가 「미일안보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조약개정을 통해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적 자위권 금지'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일본헌법」 제9조의 개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일본헌법이 개정될 경우, 자마기지로 이전되는 미 제1군단이 중앙아시아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불안정한 활꼴의 광역사령부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하여, 향후 과제를 제기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번 1.19 한ㆍ미 전략회의의 '공동성명'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되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역평화와 관련하여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서, 그 동안 참여정부가 내세웠던 동북아균형자 역할과 같은 적극적인 자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참여정부는 냉전시기와 같은 한미, 미ㆍ일 동맹의 네트워크를 거부하고,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동북아지역에서 중국과 일본간 갈등의 조정자(moderator) 역할을 담당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안보협력의 창안자(initiator),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한다는 적극적인 외교자세를 표명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한미 양국간의 합의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한미동맹'만 눈에 띌 뿐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인 '동북아안보협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평통이 성명을 통해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등 북한의 반발이 나타나고 있고, 한ㆍ미ㆍ일 남방삼각의 재출현을 경계해 북ㆍ중간의 협력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자칫 그 동안 참여정부가 이룩해 놓은 동북아 평화와 안전의 성과들이 훼손될까 우려된다. 어떻게 '한미동맹'을 견지하면서도 '동북아안보협력'을 끌어낼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2년 남은 참여정부의 외교안보분야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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