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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IPARK와 기러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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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IPARK와 기러기아빠

김익환의 'IT 이야기' <4>

IT붐이 한창인 1990년대 말 실리콘밸리에서의 일이다. 그 때 수많은 한국회사들이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려고 하였다. 자연히 자주 한국회사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말하자면 현지조사단이다. 어떻게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지 여기저기 물어봐서 조언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때 수 많은 정부인사와 벤처기업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한인들도 한국회사와 협력해서 일하곤 했다.

이때 소프트웨어진흥원이 추진한 정책이 IPARK라는 기관을 현지에 만들어 미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벤처기업을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미국, 중국, 영국, 일본, 싱가폴에 설립되어 있다. 그 나라에 진출을 원하는 기업에게 쉽게 입주할 공간과 시설제공, 네트워크 구축 등 보육 위주의 서비스와 마케팅 전진기지로 활용하여 현지 마켓 채널을 연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기능을 크게 나누어 보육서비스와 마케팅서비스로 분류할 수 있다. IPARK와 유사한 미국기관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하는 벤처회사들을 위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도 두 기능을 다 가지고 있었으나 주로 마케팅기능보다는 보육위주의 서비스였다. 사실 회사로서는 어렵고 필요한 것은 마케팅기능이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에서 IPARK가 설립될 당시 내 회사를 위해 활동하고 있던 나로서는 보육서비스는 겨우 몇백불 절약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사의 불편함을 감안하면 보육센터에 입주할 필요가 없었고 마케팅은 어차피 우리 제품을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기에 보육센터에는 입주하지 않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IPARK의 기능에 대해 찬반이 엇갈렸다. 보육기능은 분명히 효용성이 있는데 마케팅 전진기지로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보육기능을 돈으로만 계산하자면 한국에서 진출한 업체들에게는 공간과 시설제공은 한 달에 몇백불 정도 절약하게 된다. 하지만 직원 한명 파견하는 데 드는 생활비만 한 달에 수천불이니 어떻게 보면 배보다 배꼽이 클 수 있다. 한국기업에게 IPARK의 편안함과 편리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혜택이었으나 결국 미국의 보육센터나 마찬가지로 쉬운 일에는 도움이 되고 진짜 필요한 마케팅업무는 어차피 각자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IPARK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흥미로운 것은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영원히 알 길이 없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미국 진출업체 직원들이 L-1 비자라는 지사의 주재원 비자를 받아 미국에서 가족들의 합법거주와 궁극적으로는 영주권을 신청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미국영주권을 신청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미국에 지사를 세우고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L-1 비자를 악용하는 회사가 많으니까 요새는 미국 이민국에서 법을 강화해서 소수인원의 지사는 L-1 비자의 신청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선의의 한국기업 피해자도 많았다. 인원은 적지만 견실한 기업들도 L-1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된 경우가 생겼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L-1 비자보다는 덜 매력적이지만 E-2 비자라는 투자비자로 변경하여 합법적으로 지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 연유를 거쳐 가족이 미국에 체류할 목적으로 탄생한 게 바로 "기러기 아빠" 이다. "기러기 아빠"가 정식으로 한국어 사전에 추가되었다고 들었다. 기러기 아빠들의 가족은 합법적으로 미국에 계속 체류하고 본인들은 주재원이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실리콘밸리에 있는 이민전문 한인변호사들도 바빴었다.

IT 거품이 붕괴되고 지사의 실효성 문제가 겹쳐 IPARK에는 입주했다가 철수한 회사들도 많아졌고 입주업체가 모자라니까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지금은 현지의 한국계 회사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지 회사들이야 보육센터 이용을 목적으로 편리하니까 입주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IPARK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현지에서의 마케팅이나 기술제휴, 투자유치 등에서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현지인력과의 접촉을 통해 관련된 사람들 소개시켜주는 것까지는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그 후의 핵심적인 일은 회사자체의 역할이다. 첫째 회사가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어렵다. 요구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고용했다 하더라도 그 회사의 제품의 장ㆍ단점을 완벽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하루종일 발 벗고 뛰어야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물론 제품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조건이다. 회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고 성공적으로 연결해 주는 것도 무척이나 어렵다. IPARK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일을 도와주기는 힘들다. 회사의 핵심기능이며 회사 밖의 누구도 도와주기 힘든 일이다.

보육기능과 인력연결 이외에 IPARK가 도움이 됐던 것 중의 하나가 정보도우미의 역할일 것이다. 전혀 정보 없이 막막히 진출하는 것보다는 법률이나 생활정보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진출하려는 업체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회사의 성공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좋은 제품과 올바른 경영전략이 관건이다. 이러한 준비가 없다면 IPARK의 도움유무에 상관없이 실패하였을 것이다.

IPARK때문이건 아니건 미국에 와서 한번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다. 시행착오로부터 얻는 중요한 경험의 습득이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회사들도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행착오도 중요한 경험이다. 이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미국에 진출하려는 업체들은 IPARK나 다른 유능한 컨설턴트들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를 충분히 인식해야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일 것이다. IPARK 자체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에 있는 모든 회사들도 성공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똑같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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