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잊혀진 나라 '아프간' <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잊혀진 나라 '아프간' <4>

'마약'이 유일한 외화벌이 수단

현재의 아프간 경제력으로는 인구의 절반 정도를 부양할 수 있다. 그나마 부의 대부분은 국내 범죄조직이 갖고 있거나 불안정한 정권의 유지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거의 돌아가는 것이 없다.

농사 외에 아프간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란의 건설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전쟁에 참가하거나 탈레반이 운영하는 학교의 신학생이 되거나중의 하나이다. 약 3백명에서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천5백개 이상의 탈레반 학교는 배고픈 고아들의 안식처이다.

이들 학교에서는 누구나 빵 한 조각과 스프 한 사발을 먹을 수 있으며 쿠란을 읽고 기도를 암송하며 나중에는 탈레반 병사로 참전한다. 그것이 ‘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국외 망명과 마약 밀수, 그리고 전쟁이 생계수단화한 것은 바로 아프간의 지형 때문이며 나는 북부동맹이 탈레반측에 승리를 거둔다 해도 어떻게 이 백성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지 그저 의아스러울 뿐이다. 지속적인 전쟁으로, 아니면 아편 재배로, 그도 저도 아니면 기우제라도 지낸단 말인가?

이란쪽 국경에서 유엔은 아프간으로 자원해서 돌아가는 난민들에게 20달러를 지급한다. 그들은 버스에 태워져서 아프간내의 첫 도시나 국경 부근에 내려진다. 그러나 아프간에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또다시 국경을 넘어 20달러를 받는 줄에 선다. 아프간인들은 무엇이든 생계수단으로 삼는다. 전쟁이 직업인 한, 아프간 군사지도자들중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에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계속되는 내전의 와중에서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주변의 6개 국가는 각기 자신들에 충실한 세력들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들의 관대한 지원은 대체로 진쟁을 지속시키거나 세력 균형을 위한 것이지만 아프간인들에게는 그저 고용을 창출하는 기회일 뿐이다.

아프간에 2년간 가뭄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수많은 가축들이 죽었음을 잊지 말자. 유엔 추산에 따르면 앞으로 수개월내에 1백만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죽음은 전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빈곤과 기아가 원인이다. 가뭄으로 농사가 어려워질 때면 국외 망명이 늘고 전쟁은 격화된다.

아프간인의 평균 수명은 41.5세, 2세 이하 어린이의 사망률은 1천명당 1백82-2백명쯤 된다. 1960년의 평균 수명은 34세였으며 2000년에는 40세로 조사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근 들어 1960년보다도 낮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는 ‘칸다하르’를 찍던 그날 밤들을 잊지 못한다. 전등불을 비추며 사막을 다니던 우리 팀은 마치 양떼처럼 사막에 누워 죽어가는 난민들을 보았다. 우리들은 그들이 콜레라 환자인 줄 알고 자볼의 병원으로 후송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그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난 이후 나는 뭔가를 먹는 내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1986년에서 1989년 사이에 아프간에는 2천2백만 마리의 양이 있었다. 인구 1명당 양이 한 마리 있었던 셈이다. 아프간과 같은 농업국가에서 양은 부, 그 자체이다. 그 재산이 지금 최근의 가뭄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가축이 사라진 농업국가의 상황을 상상해 보라. 오늘날 아프간 비극의 근원은 가난이며 이 문제를 푸는 유일한 길은 경제재건 뿐이다.

만일 내가 무자헤딘(자유의 전사)을 지원하러, 진정한 자유의 투사인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보통사람들이 아니라, 아프간에 갔다면 그냥 돌아왔을 것이다. 만일 내가 어느 주변국의 대통령이라면 정치.군사적인 개입을 하는 대신 아프간과의 경제관계를 추구할 것이다. 신이 허락하시지는 않겠지만, 만일 내가 신이라면 이 잊혀진 나라에 혜택이 될 뭔가를 내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디가 말한 ‘모든 인류는 한 몸’과는 너무도 다른 이 시대에 이 글이 과연 보탬이 될까라는 회의를 곱씹으며 이 글을 쓴다.

방글라데시의 카말 호세인 박사는 유엔의 아프간 담당 인도주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분이다. 2000년 여름 그가 나의 사무실에 찾아와 지난 10년간 수도 없이 유엔에 보고서를 올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개탄했다. 그는 내가 만드는 영화가 혹시나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지는 않을까 해서 나를 도우러 왔다. 나는 그에게 “그랬으면 좋겠군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아프간의 고통은 외부의 간섭보다는 무관심에 의한 것이 더 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프간이 쿠웨이트처럼 석유가 많은 나라였다면 얘기는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간에는 석유가 없고 이웃 나라들은 그나마 제대로 보수도 받지 못하는 아프간 노동자들을 국외로 추방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모든 생업의 가능성이 사라지면 남아있는 대안이라곤 마약 밀수를 하든가, 탈레반에 가담하든가, 아니면 헤랏이나 바미안, 카불, 칸다하르의 한 구석에서 세계의 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것밖에 없다.

언젠가 불법 이민자들로 가득차 있는 자볼 근체의 수용소에 간 적이 있었다. 사실은 수용소인지, 감옥인지는 분명치 않다. 기아, 또는 탈레반을 피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난민 자격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아프간으로 송환됐다. 거기까지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이유로든 불법으로 입국한 사람은 망명이 거부되고 본국으로 송환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 엑스트라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수용소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능력이 없어 벌써 1주일째 굶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저 물만 먹고 있었다. 우리는 음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가 매일 오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생후 한달의 갓난아기부터 80노인에 이르기까지 4백명의 굶주린 아프간인들을 위해 우리는 음식을 날랐다. 대부분은 엄마의 품 속에서 배고픔으로 혼절해버린 어린아이들이었다. 한시간동안, 우리는 울며 빵과 과일을 날랐다. 수용소 당국은 슬픔과 미안함을 표시하면서 예산 승인을 받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해명했다. 또 난민들의 숫자가 수용소의 능력보다 훨씬 많다고도 말했다. 이것이 그 자신의 자연과 역사, 경제, 정치, 그리고 이웃 나라들의 불친절로 폐허가 돼버린 나라의 이야기다. 이란에서 본국으로 송환된 한 아프간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떠났다.

걸어서 왔다가 걸어서 가네.
일전 한푼 없는 이 이방인은 떠나네.
인형 하나 없는 아이도 함께 떠나네.
나의 방랑에 걸린 주문(呪文)은 오늘밤 풀리겠지.
텅 빈 식탁도 접혀지겠지.
고통 속에 나는 지평선을 방랑하네.
모든 사람이 나의 방랑을 지켜 보네.
내가 갖지 못한 것, 이제는 내려놓고 떠나네.
걸어서 왔다가, 다시 걸어서 가네.

***마약 생산의 역할**

현대 경제에서 모든 공급은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세계 각지의 마약 생산도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 시장은 인도에서 네덜란드, 미국 등 빈국에서 선진국까지를 망라한다.

2000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90년대 후반 전세계의 마약 인구는 약 1억8천만명에 이른다. 또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단 두 나라가 불법 아편의 90%, 헤로인의 80%를 생산하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아프간이다.

왜 그럴까? 아프간이 마약을 키워 버는 돈은 연간 5억달러이지만 이 마약이 최종소비자에게 도달할 때면 그 액수는 자그마치 8백억달러가 된다. 생산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과정에서 1백60배나 비싸지는 것이다. 이 8백억달러를 가져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예를 들어 타지스탄을 통해 흘러나오는 헤로인은 들어갈 때에 비해 나올 때 값이 2배가 된다. 우즈벡도 마찬가지다. 이 마약이 네덜란드의 최종 소비자에 도달할 때면 그 값은 원래 가격의 1백60-2백배가 된다. 이 돈은 마약이 흘러나가는 나라들의 정치를 주무르는 여러 범죄조직들이 나눠 갖는다.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비밀 예산은 이 마약 유통을 통해 조달된다. 따라서 칸다하르에서 마냥 걸어서 마약을 운반하는 등짐꾼들은 이 부의 수혜자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을 진짜 마약밀수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약이 그토록 이윤이 남는 상품이 아니라면 아프간의 아편 생산을 중지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란이 5억 달러어치의 밀을 아프간에 주문하면 된다. 그러나 7백95억 달러라는 액수는 밀수꾼이나 유통꾼들이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탐나는 이윤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아프간의 아편 재배자 자신들은 아편을 피우지 않는다. 아프간에서 마약 사용은 금지돼 있지만 재배는 합법화돼 있다. 이 치명적 독약을 유럽과 미국에 있는 이슬람의 적들에게 보낸다는 명분으로. 아프간 정부의 예산에서 마약 수출이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고려하면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전세계의 연간 마약 매출액은 약 4천억 달러이며 아프간은 이 마약시장의 희생자이다. 어째서 아프간의 몫은 전체 매출액의 8백분의 1밖에 안 되는가? 그 대답이 어찌 됐건 마약시장은 시민사회가 미약한 반면 마음놓고 마약을 재배할 수 있는 장소를 필요로 한다.

만일 아프간에 구절양장의 샛길 대신 널따란 도로가 뚫려 있다면, 만일 전쟁이 끝나고 경제가 번영한다면, 만약에 5억 달러를 대신할 다른 인센티브가 생긴다면, 4천억 달러의 마약시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비밀 예산은 마약을 통해 조달된다. 이는 만성적으로 열악한 아프간의 경제상황에 세계가 무관심한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아프간이 안정돼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이 나라 국토에서 직접 생산되는 8백억 달러를 도대체 어디에서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마약은 참 흥미있는 사업이다. 몇 달전 아프간에 머물고 있을 때, 매일 마약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아프간에서 걸프만의 중동국가들로 직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1986년 영화 ‘사이클리스트’ 제작을 위한 취재를 하기 위해 파키스탄 미르자베로부터 퀘타, 페샤와르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여행은 며칠이 걸렸다. 미르자베에서 나는 요란하게 색칠을 한 버스를 탔다. ‘사이클리스트’에 나오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버스에는 온갖 종류의 희한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가늘고 긴 턱수염을 기른 사람, 머리에 터반을 두르고 긴 옷을 입은 사람 등.

처음에 나는 버스 천장 위 짐칸이 마약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버스는 길도 없는 먼지투성이의 벌판을 가로질러 갔다. 사방이 흙투성이였고 때때로 버스 진흙구덩이 빠지기도 했다. 마침내 우리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 본 것 같은 초현실주의적 문(門) 앞에 섰다. 이 문은 어떤 공간을 나누거나,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문이 아니었다. 그저 사막 한가운데 덩그마니 서있을 뿐이었다.

버스는 그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오토바이를 탄 한떼의 무리들이 나타나더니 운전사에게 버스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뭔가 말을 주고 받더니 돈 한 보따리를 꺼내 운전사와 함께 세었다. 오토바이 무리 중에 둘이 나와 버스를 몰았다. 운전사와 조수는 이들이 남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새 운전사는 이제 자기가 버스의 소유자이며 버스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자기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버스와 함께 팔려버린 것이다.

이같은 거래는 이후에도 몇시간마다 반복됐고 우리는 그때마다 여러 명의 마약 밀수꾼에게 팔려 넘어갔다. 알고 보니 루트의 각 구간을 장악한 무리들이 있었고 구간이 바뀔 때마다 버스는 팔렸으며 그때마다 값은 올라갔다. 처음에는 돈 한 보따리였지만 그 다음에는 두 보따리, 세 보따리 하는 식으로.

두쉬카 중기관총을 낙타 등에 실어 운반하는 행상 무리도 있었다. 버스와 낙타 등의 기관총을 빼놓는다면 사실 그 광경은 고대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우리는 무기를 파는 장소에도 있어 봤다. 총알들이 마치 콩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따리 속에 넣어져 있었다. 총알을 저울로 달아 kg에 팔렸다. 자, 이런 장소가 없다면 어떻게 세계의 마약 거래가 성립할 수 있겠는가?

나는 호라산 지역의 국경 부근에서 촬영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 국경 부근의 마을들은 모두 비어 있었다. 밀수꾼이 들이닥칠까 무서워 사람들이 마을을 비운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보고도 피하라고 권했다. 이 지역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얼마나 퍼졌던지 해진 후에는 달리는 차들을 볼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길은 마약 밀수 행상들의 통로가 된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밀수 대열은 5명에서 최대 1백명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들의 나이는 12살에서 30살까지. 각자는 등에 마약 보따리를 메고, 일부는 대열 보호를 위해 개인용 로켓 발사대나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간다고 한다.

마약은 비행기로 운반되든가, 아니면 콘테이너, 또는 인간노새에 의해 운반된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거쳐,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까지 이르는 마약 운반의 그 엄청난 과정을 상상해 보라. 또 8백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밀수꾼들이 마약이 지나는 길의 사람들에게 유발했을 공포와 두려움을 상상해 보라.

나는 한 탈레반 관리에게 마약 밀수꾼에 의한 희생자 수를 물어본 적이 있다. 2년동안 1백5명이 죽었거나 납치됐다고 했다. 그 가운데 80명은 되돌아 왔다고 한다. 나는 1백5명을 1백4주(2년)로 나누어 보았다. 1주일에 한명 꼴이었다.

마약이 지나는 지역이 그토록 위험해서 밤이면 마을 사람들이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갈 정도라면 아프간 사람들이 국내에 머물러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지난 20년간 아프간에서는 5분에 1명씩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아프간에 남아 있어야 하며 우리나라로 와서는 안 되는 걸까? 그들을 아프간으로 되돌려 보내 봤자 그 위험함 때문에 다시 국외 망명에 나설 것이라는 사실을 왜 우리는 모르고 있을까?

나는 관리들에게 살인과 납치의 이유를 물었다. 아마도 이란쪽에서 활동하는 밀수꾼들은 마을사람들과 거래를 하는 것 같았다. 이란쪽 밀수꾼이 제때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자신이나 가족들중 하나가 납치되고 돈을 갚은 후에야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이같은 행위 역시 경제적 근거가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국경 부근 독하룬 세관의 관리들은 이 지역이 지난 8년간 안전하지 못했음에도 신문에 보도된 것은 최근 2년뿐이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이란 언론의 새로운 상황 때문이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