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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나라 '아프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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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나라 '아프간' <2>

'국가'보다 '부족'이 우선하는 나라

***부족간 갈등-과거와 현재**

아프간은 이란에서 독립해 생긴 나라다. 약 2백50년전까지 아프간은 이란의 한 지역이었으며 나디르 샤 시절에는 대(大) 호라산지역의 일부였다. 인도 원정에서 돌아오던 어느날 밤 나디르 샤는 구찬지역에서 암살 당했고 나디르 샤 군의 아프간 사령관이었던 아마드 압달리는 4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탈주했다. 그는 이란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이로부터 아프간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아프간 국민은 거의가 농부들이었고 부족별로 통치되고 있었다. 따라서 파쉬툰족이었던 아마드 압달리는 타지크나 하자레, 우즈벡 등 다른 부족으로부터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각 부족은 자신들의 지도자에 의해 통치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각 부족의 지도자들은 집단적으로 일종의 부족 연방제를 형성했다. 로야 지르가(Loya Jirga)가 그것이다. 로야 지르가 시스템의 존속은 아프간이 경제적으로 농경사회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부족적 지배도 결코 넘어서지 못했으며 따라서 민족국가의 형성에 실패했음을 말해준다.

아프간 사람들은 조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자신을 아프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간에서 각 아프간 사람들은 파쉬툰족이거나 하자레족, 우즈벡족, 타지크족으로 스스로를 생각한다. 이란에서는 아마도 쿠르디스탄을 제외하고는, 우리들은 우선 이란 사람인 것하고는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 민족주의는 각 개인의 공동 정체성을 인식하는 첫 번째 준거틀이다. 그러나 아프간에서는 각 개인은 기본적으로 부족의 일원이다. 부족주의가 그들의 정체성의 첫 번째 준거틀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이란인(그리고 대부분의 근대국가 국민들)들과 아프간인들과의 가장 분명한 차이다.

이란에서는 대통령 후보가 어떤 부족 출신이냐가 별 중요성을 갖지 못하며 이것이 득표의 요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아프간에서는 아마드 압달리로부터 탈레반이 국토의 95%를 지배하는 지금까지 주요 지도자는 언제나 파쉬툰족에서 나왔다.(오직 2차례의 예외가 있었는데 바체 사가로 알려진 하비발라 갈레카니의 9개월간의 통치와 타지크 출신 부르하누딘 라바니의 2년 통치가 그것이다. 타지크는 이외에는 정권을 잡아본 적이 없다)

‘칸다하르’를 제작하기 위해 이란과 아프간 접경지역에 있는 난민수용소에 머물고 있을 때, 나는 그 어려운 수용소 생활에서도 아프간 난민들이 아프간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타지크라는 이유로, 또는 하자레, 파쉬툰이라는 이유로 서로 갈등했다.

아직도 부족간 결혼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다른 부족간에는 사업상 거래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다툼이라도 부족간 갈등은 거대한 유혈극으로 발전할 소지를 안고 있다. 한번은 식량배급 줄을 새치기했다는 이유로 한 부족원이 다른 부족원을 살해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약 5천명을 수용하는 이란-아프간 접경의 니아탁 난민수용소에서는 파쉬툰족 어린이와 하지레족 어린이가 같이 놀지도 못한다. 어린이들의 놀이 때문에 어른들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타지크와 하자레는 파쉬툰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알고 있으며 반대로 파쉬툰도 이들을 그렇게 여기고 있다.

이들은 상대방의 사원에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한번은 영화를 보여주는데 각 부족의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결국 우리는 하자레 어린이가 먼저 영화를 보고 다음 파쉬툰 어린이가 보는 식으로 간신히 타협을 봤다.

난민수용소에는 여러 질병이 만연했지만 의사가 없었다. 어쩌다 도시에서 의사가 와도 중병을 앓는 환자부터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부족 순으로 의사를 보게 돼 있었다. 하루는 하자레 환자를, 다음 날에는 파쉬툰 환자를 치료하는 식이다. 게다가 파쉬툰족 내에는 계층이 구분돼 있어 같은 부족이라 해도 같은 날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엑스트라가 필요한 장면에서도 우리는 하자레족만을 쓰든가, 파쉬툰족만을 기용하는 식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난민이고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떤 부족이냐가 모든 결정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사항이었다. 물론 그들 대다수는 영화를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나의 할머니처럼 그들은 극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된 것을 신께 감사했다.

이처럼 끈질긴 아프간의 부족주의는 거의 전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는 아프간 경제와 관련이 있다. 아프간의 각 부족들은 지리적 벽이라고 할 수 있는 산들에 막혀 계곡 속에 갇혀 산다. 그들은 산악지형과 농업경제에서 기원하는 문화의 자연적 포로들이다. 문화적 부족주의는 아프간의 깊은 계곡에 뿌리를 둔 농업경제의 산물이다. 부족주의에 대한 믿음은 그 계곡들만큼이나 깊다.

아프간 국토의 75%는 산악지역이며 농사가 가능한 땅은 7%에 불과하다. 공업이 발전할 여지는 거의 없다. 이 나라는 완전히 농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지속적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유일한 자원은 초지(草地, 그것도 가뭄이 없는 해에만)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농업은 부족주의의 근원이며 또한 뿌리깊은 부족간 갈등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아프간은 근대국가가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정체성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와 아프간인이라는 데 대한 태생적이고 대중적인 믿음이란 없다. 아프간인들은 아직 아프간 국민이라고 하는, 보다 거대한 집단적 정체성에 흡수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아프간 내전에 대해 보통 종교갈등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분쟁의 근원은 부족간 갈등이다.

현재 탈레반과 싸우고 있는 타지크족은 이슬람교의 수니파이며 탈레반도 마찬가지다. 부족적 연방제를 만들어낸 아마드 압달리의 지혜는 아직도 유효하다. 부족주의가 그대로 남아 있고 경제기반이 전혀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부족의 다른 부족들에 대한 지배라든가 전 국민에 대한 1인 지배를 꿈꾸는 사람들보다는 압달리가 훨씬 현명했던 셈이다.

아프간 최대의 부족은 약 6백만 인구의 파쉬툰족이다. 그 다음은 타지크로 약 4백만이다. 4백만에 조금 못 미치는 하자레, 1백만-2백만의 우즈벡이 그 뒤를 잇는다. 이밖에 이마흐, 파르스, 발루치, 투르크만, 퀘젤바쉬 등의 소수 부족이 있다.

파쉬툰은 주로 남부에 살고 타지크는 북부에 살며, 하자레는 중부지역에 거주한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 각 부족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게 되면 그 결과는 완벽한 국가의 해체, 아니면 로야 지르가 시스템을 통한 각 부족의 연계 등 둘중의 하나다. 이 2개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제기반을 변화시키고, 부족적 정체성을 국민적 정체성으로 바꾸는 것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란에서 종족문제에 구애되지 않고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이래 석유 수입(收入)이 가져온 경제적 변화 때문이다. 이란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 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농경국가였던 이란의 경제에 석유가 개입됨으로써 이란의 경제기반을 변화시켰고, 국제정치의 상호작용에서 이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이란은 매우 소중한 원자재의 수출국이 되었고 그 대가로 선진국으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공급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석유를 팔아 선진국의 생산물을 소비하는, 보다 근대적인 문화를 창조해낸다. 돈이라는 요소를 빼버리면 우리는 석유를 주는 대신에 소비재를 받는 셈이다.

그러나 아프간은 세계시장에 내놓을 게 마약 외에는 없다. 따라서 아프간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2백50년전, 아프간이 이란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았다면 그들 몫의 석유 수입으로 지금과는 다른 운명에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말할 아편으로부터의 수입은 이란의 석유 수입에 비하면 너무도 보잘것없다. 지난 해 석유가격 급등으로 이란이 추가로 얻은 수입은 1백억달러다. 이에 비해 아프간이 1년내내 아편을 팔아 번 돈은 5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란은 세계경제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생산품을 소비함으로써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알게 됐으며 이에 따라 근대국가로 변화했다. 그러나 아프간의 농부들에게 그가 사는 계곡은 그의 세계 전부이며 그의 직업은 농업이다.(그나마 가뭄이 들지 않았을 때에만)

한편 부족시스템은 그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그런 아프간인들이 세계경제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이들이 세계경제에서 한 자리를 차지해 경제적, 사회적 전이를 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이 과연 있을까? 나아가 연간 8백억 달러에 이르는 전세계적인 마약 거래는 아프간의 현상 유지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아프간의 상황이 변화한다면 8백억 달러의 수입을 창출해 낼 근원 자체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란과 아프간은 2백50년전까지 동일한 역사를 살아 왔지만 석유 때문에 이란은 아프간이 오랜 동안 꿈도 꾸지 못할 변화를 이뤄냈다. 아프간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산물은 아편이다.

그러나 아편의 본질적 특성상,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액수 때문에 아편은 석유에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연간 5억 달러의 아편 수입, 그리고 아프간 북부에서 산출되는 천연가스 수입 3억 달러를 합해 아프간 인구 2천만으로 나누면 연간 1인당 소득은 40달러쯤 된다. 이를 다시 3백65일로 나누면 하루에 10센트, 빵 한 조각 살 수 있는 액수밖에 안 된다.

더욱이 이 수입들은 정부나 국내 범죄조직의 것이지, 국민들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수입은 국민들의 필요도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기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왜 인구의 30%가 조국을 떠나야 했나?**

유목민(목축업자)들은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옮겨 다녀야 한다. 도시인들과 농부들은 옮겨 다닐 일이 별로 없다. 아프간의 유목민들이 옮겨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농사철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건조한 땅과 추운 기후를 피해 풀이 있고 따뜻한 지역으로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두 번째 이유는 고정된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아프간인들은 실업(失業)에 따른 죽음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아프간인들은 4가지를 걱정해야 한다. 첫째는 그의 가축들로 이는 가뭄과 관련이 있다. 둘째, 자신의 부족을 위해 싸우는 일인데 아프간인들은 대체로 일자리로서 군대를 택한다. 세 번째 걱정은 가족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으로 이들이 끊임없이 옮겨다니는 것은 바로 생계 때문이다. 이도저도 다 안 되면 마약장사에 뛰어든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으며 설사 마약장사를 하려 한다 해도 아편을 키워 버는 연간 5억 달러로는 2천만을 먹여 살릴 수도 없다. 따라서 아프간인 전체를 아편 밀수꾼으로 매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마약밀수꾼은 극소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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