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혁신가'로서의 이명박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혁신가'로서의 이명박

[밥&돈·24] 보수는 '보수적'이지 않다 <上>

2008년 새해 벽두, 이명박 새 정부는 정부 조직 개편안의 윤곽을 잡아가며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과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의 단계적 폐지 등 이 당선자가 대선 전 예고했던 프로젝트들을 숨가쁘게 현실로 옮기고 있다. 반면 '진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력은, 최근 민주노동당의 '진로 논쟁'에서 보이듯, 생존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모습이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2회에 걸쳐 게재되는 이번 <밥&돈> 칼럼에서 진보가 보수화된 가운데 보수는 오히려 진취적인 성향을 보이는 2008년 대한민국의 '웃지 못할'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편집자>

"보수"는 보수적이며, "진보"는 진보적인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보수" 세력은 '이제야 나라가 무책임하고 위험한 자들의 손에서 풀려나와 제대로 서게 될 역사적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득의양양하다.

"개혁" 세력은 전가의 보도처럼 믿어오던 '민주 대 반(反)민주'의 구도 그리고 그 정치공학 버전인 소위 '51대 49'라는 계산이 빗나간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국민이 노망이 났다'는 실로 노망스러운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 세력도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 시대를 한탄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사방에서 한 목소리로 사회 전반의 총체적 '보수화'를 걱정하는 담화들을 내놓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가진 신년 인사회에서 "한나라당이 (마음만 살짝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해서 정권을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런데 여기서 따지고 넘어갈 것이 있다. '보수'는 얼마나 보수적이며 '진보'는 얼마나 진보적인가. 물새는 물새라서 물새 알을 낳고 산새는 산새라서 산새 알을 낳게 돼 있는 것인가. 보수는 저절로 보수적이며 진보는 저절로 진보적인 것인가.

보수와 진보, 관례적으로 사용되는 이 용어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양대 사회·정치 세력의 현재 상태와 역량을 크게 왜곡할 위험이 있다.

우리가 늘 쓰는 말로서 '보수'란 사회의 기득권 계층을 일컬으며, '진보'란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계층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세력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기득권 계층은 항상 변화를 두려워하여 현상 유지만을 꾀하는 것인가? 반면, 피억압 계층을 대변하는 이들은 항상 참신한 변화와 변혁을 꾀하는 것인가?

물론 그런 논리적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 사용이 빚어내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잠깐 다른 두 개의 개념쌍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지대 추구와 혁신

'지주가 토지의 소유권으로부터 얻는 소득'을 지대(地代)라고 한다. 이 소득의 원천을 놓고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어느 새인가 '지대'는 "효율성이나 생산성에 기여하는 것 하나 없이 순전히 기득권 하나에 기대어 뜯어가는 소득"의 동의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아예 '지대 추구자(rent-seeker)'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기존의 사회적·경제적 구조와 틀에서 어쩌다보니 유리한 위치에 앉아 있게 된 자들은, 별로 하는 일 없이도 듬뿍 떨어지는 소득과 가지가지 이득을 누리게 된다. 흔히 쓰이는 '철밥통'이라는 말도 '지대'의 느낌에 가깝다.

이는 당연히 사회적인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단순한 질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기존 사회체제가 너무나 사랑스럽기 마련인고로 온갖 방법으로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현상유지 세력 내지는 변화거부 세력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존 체제가 대단히 부당해 이 체제의 부조리를 느끼는 이들의 숫자가 불어나면, 당연히 이러한 세력은 대중적 지탄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특히, 봉건적 '특권계층'과 '중간계층 및 민중세력'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라는 큰 흐름에서 '보수주의'와 '급진 진보주의'의 사상적 원형을 만들어내던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상황이 그러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사회의 기득권 및 지배세력을 "보수", 그런 체제의 변화를 원하는 이들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분명히 논리적 타당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어려운 질문이 나온다. 19세기 후반, 특히 20세기로 넘어와 봉건적 사회 제도가 사라지고 기성의 사회구조가 완전히 성숙한 자본주의가 된 상황에서도 이러한 단순한 도식이 통할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아마도 제일 처음에 간파한 사람은 칼 마르크스였을 것이다. 그는 이 자본주의라는 것과 이것을 대변하는 자본가 세력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모든 지배체제와 지배세력과 다른 점으로서, 끝없는 혁신을 통해 스스로를 바꾸어 나간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 마르크스의 초상화. ⓒportrait.kaar.at

마르크스와 니체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좀바르트(Werner Sombart)는 이를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끝없는 공황과 파괴로부터 창조적 정신이 태어나게 되어 있다"는 말로 바꾸어 강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는 -좀바르트를 표절한 것으로 의심받는-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저 유명한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와 자본가의 본색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결합시키고 동원할 수 있도록, 시장구조, 나아가 사회구조 전체를 끊임없이 바꾸고 또 바꾸는 "혁신기업행위(entrepreneurship)"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봉건사회나 전통사회에서라면 모를까, 성숙하게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수 세력=보수, 진보세력=진보'라는 등식이 전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직감을 얻게 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처한 피억압 계층들은 변화와 변혁을 원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배 세력이라고 해서 옛날 귀족들마냥 철밥통 차고 앉아 그것을 천년만년 유지할 신성동맹 따위나 획책하는 무리들로 머물라는 법은 없다.

지대 추구가 웬 말인가. 이들은 이제 능동적으로 사회제도를 바꾸고, 국가기구를 개혁하고, 운하를 뚫고, 고속도로를 뚫고, 거기에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를 세우고, 오토바이와 가죽 잠바를 유행시키고, 락앤락을 만들어 내는 총체적인 사회 "혁명가"들일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에 있어서의 역전

20세기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100년간의 세계사를 일별할 때에 실로 충격적인 역전이 하나 있으니, 바로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지대 추구자와 혁신가의 위치를 맞바꿈해 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1세기 동안의 장기적 추세는 예전의 "보수" 세력이 혁신가로 탈바꿈하고, 예전의 "진보" 세력은 오히려 지대 추구자로 눌러 앉고 있다는 것이다.

1920년대로 가보자. 러시아 혁명이 단지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남아메리카 방방곡곡의 시골 청년들에게까지 얼마나 강력한 미래의 전망을 영감으로 던졌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축적론>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무너질 것인지를 꼼꼼히 설명했고, 그 혁신적 사회 건설의 방법론으로서 대중 투쟁과 노동자 평의회 등을 이야기했다. 그보다 왼쪽에서는 아나키스트들이 대공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자본가 없이, 국가 없이 저절로 평등하게 굴러가는 혁명적 사회를 설계했고, 스페인 내전에서 목숨을 내걸고 그 신념을 깃발로 지켜냈다.

그보다 오른쪽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학자들이 시장 없이도 고도의 산업경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했다. 또, 영국과 스웨덴에서는 시장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혁명 없이도, 경제 중앙집중 없이도 오히려 더욱 '효율성' 높은 경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의 "진보"는 정말로 '혁신의 백화점'이었다고 할 만하다. 반면 당시의 "보수"는 '정말로 보수'였다. 1차 세계대전이 쓸고 간 뒤 완전히 바뀌어버린 세상에서 켸켸케묵은 19세기 통화체제와 정치체제 그리고 노사관계와 사회윤리를 되돌이키려 했고, 여기에 반발해 파시즘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나자 그 독기를 빌어서라도 옛날 질서를 지키려 들었으니까.

21세기로 와보자. 지구 온난화나 아프리카의 재난 등 지구적 사안에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이다. 인간의 신체와 보건의 미래상이 궁금하면 초국적 제약기업과 싱가포르를 보면 된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지구적 규모의 인수합병 과정과 그에 따른 자동차시장 재편에 달려 있으며, 이는 다시 몇 개의 명망 있는 지구적 투자은행(IB)의 설명을 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사재를 털어 인류 미래를 위한 재단을 꾸리고 있다. 주주자본주의의 종말과 더 인간적인 자본주의로의 진화를 이야기하는 이는 좌파가 아니라 <포춘>의 전 편집장이다. 기업 회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은행 자산구조의 규범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회의와 협약에 의해 결정되며, 2008년에는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획일적으로 효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 ⓒReuters

이렇게 지구적 규모에서 보수 및 기득권 세력의 연구와 토론으로 '글로벌 표준(global standard)'이 만들어지면, 이번에는 각 나라의 지배계층과 지식인 집단이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논하면서 자기 나라의 특성과 경험을 살려 각국에 맞는 구체적인 제도 개혁과 사회 재구조화의 계획을 이론과 정책 모두의 차원에서 제출한다.

반면 21세기 "진보" 세력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아직도 '자본주의는 자체 모순으로 위기에 휩싸이게 된다'는 100년 전 마르크스주의의 신화를 지금도 내걸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도대체 올라가든 내려가든 아무도 신경도 안 쓰는 '이윤율' 계산에 바쁘다.

이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을 100년 전에 나온 '제국주의' 이론으로 -앞에 '뉴(new)'만 달랑 붙여서- 다 설명할 수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비정규직 문제는 19세기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산업예비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은 여전히 1930년대에 나온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기막힌 변종인 '식민지 반자본주의'(!)이고, 그래서 한국은 여전히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분단 체제'이다. 따라서 한국 민중의 살 길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을 중심으로 중소 자본가"를 엮어서 "한 줌도 안 되는" 매판 매국 반통일 세력에 대결하는 것이란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가 '러시아 혁명 90주년'이니 뭐니 하면서 레닌주의의 '현재적 의의'를 기리는 논의로 자신들의 잡지 전체를 뒤덮기도 한다. 현재 한국 "좌파"의 의식은 아직도 1917년의 핀란드 기차역 아니면 1937년 보천보 어딘가의 어수룩한 동네 파출소에 갇혀 있다.

요컨대 20세기 초반 인류사회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열쇠는, 아이디어에 있어서든 실천에 있어서든, 진보 세력의 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로 진보는 진보적이었고 보수는 보수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촌은 물론 내 삶의 공간이 어떻게 될 것이며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능력은, 이론에서든 정책에서든, 지배세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는 보수라서 보수적이고, 진보는 진보라서 진보적'이라는 말장난에 스스로 속지 말고, "지대 추구"와 "혁신가"라는 기준으로 놓고 보라.

"보수주의 혁명"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수사는 결코 수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이래 지구촌과 각국의 모든 보수세력들은 단지 과거에 연연하고 변화를 가로막는 현상 유지의 '보수' 세력이 아니었다. 이들은 무수한 대학과 싱크탱크 등을 연계해 오늘도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의 아이디어를 숨가쁘게 쏟아놓고, 그것에 맞춰 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하고 세부사항까지 디자인하는 '혁신가'의 면모를 분명히 갖추어가고 있다. <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