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 사악한 시대에 살고자, 나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 사악한 시대에 살고자, 나는…"

['프레시앙'이 되며] 임옥상 화백

1980년 여름, '전두환' 글자가 없는 기사를 찾느라 나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되었다. 200호가 넘는 대형 그림을 구상하고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던 때다. 새로 출범한 '현실과 발언'이라는 동인의 창립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위해서였다. 명제는 '신문1980'.

작품의 개념은 간단하다, 신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다. 우리는 신문으로 습자 연습하고, 담배 말아 피우고, 종이비행기, 종이배 만들고, 가면 만들어 놀고, 모자 만들어 쓰고, 코 풀고, 침 뱉고, 똥 받고, 똥 닦고, 도시락 싸고, 불쏘시개로 쓰고….

신문이 종이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편집광이라도 된 듯 주워 모아 화면 가득히 그려 넣었다. 너무 살벌한 때라 '국가보전위원회', '전두환', '신군부' 등의 활자가 끼어든다면 그것은 곧 파멸을 의미했다.
▲ <신문>(전체, 캔버스에 콜라주+유채, 300 x 138cm, 1980). ⓒ임옥상

그렇다. 당시의 신문은 이미 신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종이일 따름이었다. 종이 이상의 의미가 없는 쓰레기였다. 나는 이 답답하고 꽉 막힌 현실을 그냥 묵과 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면 돌파 해야겠다고 벼르며 23제곱미터(7평) 밖에 되지 않는 광주교육대학 연구실에서 한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의 창립전은 캄캄한 어둠 속에 약 한 시간간의 촛불 전시로 막을 내려야 했다. 당국은 이 불온한(?) 전시에 주목했다. 그 덕에 우리는 이후 '민중 미술' 집단으로 낙인(?) 찍혔고 갖은 감시와 박해 속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일보>는 선봉에 서서 전두환 군부 체제를 옹호하였고 전두환을 '새 정의의 시대'의 지도자로 찬양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좌경, 용공 분자와 사회적 불평 불만자, 거리의 부랑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하고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또 <조선일보>는 우리의 새로운 미술운동도 미술을 수단과 목적을 위해 도구화한 것이라며 이념 공세의 선봉으로 자청하고 나섰다.

사반세기의 시간이 흘렀건만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할 것이 없다. 어찌 보면 오히려 더 교묘해졌고 더 괴이해졌고 더 사악해졌다. 총칼로 다스리지 않지만 돈으로 다스린다. 오로지 돈만을 따르라 지시한다. 윤리도 도덕도 사회적 책무도 꿈도 희망도 모두 돈을 위해 포기하라고 강압한다.

세상은 이미 돈의 천국이 된 지 오래다. <프레시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프레시안>을 포기 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내가 '프레시앙'이 된 이유다.

☞ '프레시앙' 되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