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프레시앙' 운동을 시작했다. <프레시안>의 가치를 존중하는 시민들이 <프레시안>의 주인으로 참여하자는 운동이다. 그래서 시민의 손으로 <프레시안>을 '독립 언론'으로 만들어서 좋은 기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언론사는 공공성이 대단히 높은 조직이다. 모든 시민에게 공공성이 높은 재화인 각종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사는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사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커다란 공공성을 갖고 있는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내걸고 사익을 챙기면서 '신의 직장'이라는 '사이비 공공성'의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언론사는 공공성을 내걸고는 소유주나 권력자나 광고주의 이익을 위해 편파적인 보도로 여론을 왜곡하거나 심지어 조작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러한 '사이비 공공성'의 문제는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근원적 위험이다.
언론사는 정보의 공공성을 지키고 자신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세 가지 주체로부터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독립을 기준으로 모든 언론사의 독립성을 측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언론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지만 소유주이건 광고주이건 소수의 자본이 언론사를 독점하게 될 때에는 언론사의 독립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만다. 독립적이지 않은 언론사는 공공성을 내걸고 사익을 챙기는 '사이비 언론사'가 되기 십상이다. 소유주와 광고주가 지배하는 '사이비 언론사'의 문제를 우리는 보수언론에서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역사마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고 조작한다. 민주화에 따라 권력의 영향력보다 자본의 영향력이 더욱 더 커졌다. 그러므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독립 언론을 위한 최대의 과제이다.
둘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권력은 언제나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개연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언론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퍼트리는 짓을 흔히 한다. 여기서도 사실 보수언론의 행태는 가장 좋은 예이다. 한편 언론인 출신 자본가보다 정치인이 훨씬 더 많다. 언론과 권력은 인적 연줄로 강력히 결합되어 하나의 '연줄 결속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좋은 언론사는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셋째, 내부 구성원의 이해관계로부터의 독립이다. 외부의 자본이나 권력뿐만 아니라 내부의 구성원도 언론사의 독립을 위협하는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신의 직장'이라는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는 각종 공공기관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그것이 꼭 공공성의 수호자라는 보장은 없다. 시민의 감시를 회피하거나 저지하면서 그것은 '생선가게의 고양이'가 될 수도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내부 구성원이 공공성에 관한 인식을 올바로 갖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 시민의 감시를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애써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들판에 온갖 꽃들이 만발한 것처럼 많은 언론사들의 활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사회의 작동에서 본질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언론사의 백화제방' 상태는 일단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사의 백화제방이 '언론의 백화제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대중문화의 만개가 문화의 만개가 아니라 문화의 '획일적 다양성', 즉 다양한 듯이 보이지만 실은 극심한 문화의 획일화를 낳을 수 있듯이, 언론사의 백화제방이 그저 언론의 획일적 다양성으로 그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에서 프레시안은 지난 6년여 동안 개혁적 인터넷 언론사로서 자신의 위치를 어렵게, 그러나 뚜렷이 구축했다. <프레시안>이 언론사의 백화제방을 넘어서 언론의 백화제방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시민에게 보여준 것이다. 언론의 백화제방은 민주적 언론에서 시작되며, 민주적 언론은 민주적 소유에서 출발한다.
<프레시안>은 '프레시앙' 운동을 통해 이 중요한 사실을 사회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이제 시민이 화답해야 할 차례이다. 시민의 손으로 <프레시안>을 민주 독립 언론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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