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을 처음 만난 건 대학에 갓 입학한 2004년이었다.
입시 지옥을 벗어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겨우 관심을 갖게 된 새내기가 본 <프레시안>의 첫 인상은 왠지 '허접'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열심히 뛰어다녔을 <프레시안> 편집국 기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적어도 그 때까지는 '개혁' 언론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던 <한겨레>, <오마이뉴스>등의 '아류'로 여겨졌다. 하지만 '괴물' 같은 주류 신문 사이에서 피어난 몇 안 되는 소중한 '진보' 언론이라는 인상만큼은 강하게 남았다.
그런 <프레시안>을 눈여겨보게 된 계기는 아마 '황우석 게이트' 때였을 것이다. 내가 굳이 '게이트'라 칭한 까닭은 이 '대국민 사기극'을 주류 정치권과 언론에서 감싸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단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황우석 박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그의 병상을 지키던 정치인은 경선 및 대선 행보에 뛰어들어 떳떳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진실에 대한 무딘 감각과 여론몰이 그리고 국익 논리 속에서 <프레시안>은 정말 외롭게, 그러나 용감하게 맞섰다.
그 때부터 <프레시안>을 읽는 것은 내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프레시안>은 보면 볼수록 참 장점이 많다. 심층성,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자는 물론 각계각층의 전문가,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on-line 정론지'임을 표방하는 '시민 지향적 독립 언론'답게 색다른 시각과 알찬 구성을 보여준다.
천편일률적 시각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가지 성향을 가진 전문가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중동 지역 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프레시안>만큼 빠르고 정확한 분석을 실어주는 언론을 본적이 없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미국의 이란 공격 징후'와 관련해서도 가장 앞서 있다.
입만 열면 '개혁'을 외쳐댔던 정권과 여당의 배신과 실패 때문에 지금은 '진보'나 '개혁'이란 말은 꺼내기조차 민망하게 돼 버렸다. 그들에게 종속되다시피 했던 '개혁' 언론의 우왕좌왕하는 모습 역시 낯 뜨겁긴 마찬가지다. 때문에 <프레시안>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특별해졌다. 일관되게 진보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현실 쟁점을 피하지 않았던 <프레시안>은 이제 누군가에게는 '밉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완소' 언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날 <프레시안>을 '완소' 언론 매체로 여기던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글을 한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다. 내게 무한한 의구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홍보 광고를 <프레시안>에 싣게 된 경위와 사정에 대한 한 기자의 글이었다. 속상했다.
동시에 <프레시안>을 후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언론도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 놈의 자본, 나처럼 <프레시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제공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결론은 "이제 나도 '프레시앙'이다."
어느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프레시안'을 검색해보면, 지식 카테고리에 한 누리꾼의 질문이 올라와있다. "<프레시안> 신문의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되나요?" 이 단순한 호기심에 그 동안 나는 너무 무감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프레시안>을 둘러보면서 말이다. 이제 늦게나마 그 질문에 답해주고 싶다.
"<프레시안>의 운영비는 프레시앙이 함께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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