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황우석 씨가 2년 전 그 때 '권좌'에서 끌어내려지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세계를 누비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활약상을 통해 난자 기증을 약속한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그 선량한 '대의'와 난자 채취의 '고통'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밤잠을 자지 않고 두 눈이 빨갛도록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았던 매체는 <프레시안>이었다.
한미 FTA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있던 시절, 나에게 멕시코 과달카사르 지역에 들어갔던 메탈클래드라는 미국 기업이 어떤 무참한 짓을 저질렀으며, 결국 투자자-국가소송제가 기업이 헌법을 유린하는 가능케 하는 가공할 위협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도 <프레시안>이었다.
보도 기사라는 건조한 문장에도 뚝뚝 묻어나는 <프레시안>의 젊은 기자들의 열정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향해 있었다. 한미 FTA 최종 협상 무렵, 택시노동자 허세욱 씨가 분신 자결했다. 많은 이들은 안타까움으로 허둥댔고, 입 험한 이들은 악선동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럴 때, 허세욱 씨가 얼마나 진실하고 진지한, 아름다운 한 '인간'임을 알려주었던 매체는 <프레시안>이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길어 올린, 누구나 피해가고 싶어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펼쳐 준 매체도 <프레시안>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그러하겠지만, <프레시안>은 나처럼 번잡한 일상사에 묻혀 사는 생활인들에게 좀처럼 얻기 힘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평택 미군기지 문제의 배후에 놓인 맥락을 읽지 못해 갑갑해 하고 있을 때, <프레시안>은 찰머스 존슨의 묵직한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면서 군산복합체가 이끌어가는 미국 제국에게 닥친 발작적인 위기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 시대에 모두가 읽고 새겨야 할 가장 중요한 글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김종철 선생의 강연문 <난파 직전의 배에서 내리는 것을 두려워 말자>를 나는 벗들에게 수없이 메일링 했고, 그 강연을 기획한 곳도 <프레시안>이었다.
더러 아쉬웠던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껏 <프레시안>은 그 규모에 비할 바 없는 큰 역할을 해왔다고 나는 믿는다. <프레시안>은 이 캄캄한 한국 사회가 완전한 어두움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최악의 상황을 가까스로 막아온 것이다.
최근, <프레시안>이 몹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왠지 모르게, <프레시안>이 기운이 없고, 조금씩 나른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무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째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박인규 발행인의 편지를 읽게 되었고, 나는 곧장 '프레시앙'으로 가입했다.
나는 이 '프레시앙 되기'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기를 바란다. 그간 <프레시안>을 고마운 존재로 여겨왔던 수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아 <프레시안> 기자들의 월급만큼은 우리들 시민이 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인규 발행인의 글을 통해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이라는 한자성어를 알게 되었지만, 시민이 주는 '물'로써 취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프레시안> 기자들의 모습은 얼마나 멋진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들이 마시는 '물'의 원천이 '돈'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막막한 현실을 들어 올릴 희망의 지렛대가 될 것이다. 광고 걱정에 '쫄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는 독립 언론, 어떤 일이 생기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곧장 들어와 찾아볼 수 있는 언론, 세상이 '돈'으로 시궁창이 되어갈 때, '사람다움'의 가치를 옹호하는 푸른 소나무 같은 언론 하나쯤은 우리 사회에서 숨 쉬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둠을 탓하기보다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마음'에 대해 듣고 배워온 나는 지금 이 '프레시앙 되기' 운동이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프레시앙' 되기
■ ['프레시앙'이 되며] 보기 돈이 없으면 독립도 없다-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 <프레시안>을 울리지는 말아야지!-조원종 씨 '진짜' 보수주의자도 <프레시안>으로 모여라-이형기 교수 "자본주의 사회에 공짜는 없다"-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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