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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만능주의는 죽을 운명…그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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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만능주의는 죽을 운명…그 다음엔?

[민주화 20년 기념 강연] 이정우 교수 "한국경제 제3의 길은 북유럽 모델"

"제1의 길인 관치경제는 그 수명을 다했으며, 제2의 길인 시장만능주의는 지금 왕성한 기세로 뻗어나가고 있으나 미래에 지속가능한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이 모델 역시 제1의 길이 그러했듯이 자체의 문제점이 누적돼 존립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 올 것으로 본다. 제3의 길로 우리가 선택할 만한 길은 북구형 사민주의가 남는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2일 오후 <프레시안>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는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연속강연의 다섯 번째 순서인 '한국경제, 제3의 길은 가능한가?'에서 이 같은 요지의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참여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보를 역임하며 노무현 정부의 초기 경제정책 운용을 설계했던 이 교수는 현재 한국경제가 봉착한 문제점으로 '저성장'과 '양극화'를 지목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장과 분배 면에서 고루 우수한 북유럽의 사민주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다음은 이날 이 교수가 발표할 발제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한국경제가 위기"라는 주장은 과거에도 시도 때도 없이 나왔다.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는 유독 많이 나오고 있다. 일본형 장기불황, 남미형 침체, 제조업 공동화, 평등주의·좌파, 反시장주의, 스태그플레이션, 국가경쟁력 약화 등 도대체 한 나라가 이렇게 많은 병을 동시에 앓을 수 있을까?

이런 위기론은 근거 없는 주장일 경우가 많고, 국민의 불안심리를 부추겨 불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사실, 현재 한국경제의 문제는 '저성장'과 '양극화', 이렇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이정우 경북대 교수. ⓒ프레시안

'정치적 독재'에서 '시장의 독재'로

제1의 길인 '박정희 모델'은 투자율 제고, 부국강병 정책,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 등과 같은 개발전략을 통해 양적인 성장에 성공했다. 그래서 그 숨 막히던 박정희 시절이 경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박정희가 집권한 16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100배나 상승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같은 부동산 광풍을 생각한다면, 박정희가 이룩한 성장이란 크게 깎아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이룩한 성장이란 미래의 성장을 미리 당겨 쓴 '외상 경제운용'에 다름 아니다.

박정희 모델은 비민주성과 관료적 경직성의 한계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몰락과 함께 독재적 조직구조, 대립적 노사관계, 재벌의 황제경영, 주입식 교육, 부정부패, 환경오염, 부동산 투기 만연 등 수많은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모델이 종언을 고하고 제2의 길인 시장만능주의로 넘어간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다. 위기의 원인으로는 국가의 지나친 경제개입(시장 만능주의), 초국적 투기자본의 농간 및 한국정부의 실수(수정주의), 금융규제의 급격한 해제(스티글리츠), 과잉투자 및 부실대출(정운찬) 등이 거론된다.

아직 최종 결론이 난 상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워싱턴 합의(The Washington Consensus) 모델을 받아들였다. 위기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규제완화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특히 미국형 주주중심 모델을 적극 도입했다.

과거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관계형 자본주의'를 '영미형 단기 실적주의'가 대체한 것은 현재 저투자-정성장 기조가 생기게 된 한 원인이다. 노동계도 이런 단기 실적주의에 젖어 노사상생보다는 임금인상에만 매달리는 경향에 있다. 이처럼 노사 쌍방이 단기 실적주의의 함정에 빠진 국민경제는 건전하게 발전하기 어렵다.

문제는 '제도의 부조화'

발전국가 모델과 시장주의 모델의 장단점을 골고루 경험한 지금, 우리는 이 두 모델의 한계를 넘어 우리 실정에 가장 적합한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세계의 다양한 자본주의 모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존립 가능한 자본주의 모델은 세 개다. △영미형 모델(신자유주의 모델 또는 시장만능주의 모델) △유럽대륙형 모델(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북구형 모델(사회민주주의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이 3가지 모델은 성장률이나 실업률 등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차이가 나는 것은 소득분배와 고용증가에서다. 소득분배에서 우수한 모델은 북구형, 유럽대륙형, 영미형 순인 한편 고용증가에서 우수한 모델은 영미형, 유럽대륙형, 북구형 순이다.

이 3가지 모델은 또 임금협상 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북구형과 유럽대륙형은 임금협상이 중앙집중형으로 돼 있는 반면 영미형은 분산형으로 돼 있다. 임금협상이 중앙집중형일 때 임금인상 자제, 임금 교섭비용 절감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국가 경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사용자 측이 이를 반대한다. 산업별 교섭을 하면 노동자들이 더 과격한 요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도의 부조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성립됐으나 경제 민주주의는 아직 성립하지 않았다'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의 부조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도한 관치도 과도한 시장도 아니다"

우리 경제는 지난 40년 간 '제1의 길=발전국가'와 '제2의 길=시장만능주의'의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달은 느낌을 준다. 전자가 정치적 독재였다면 후자는 시장의 독재(market despotism)다. 하지만 제1의 길은 이미 수명을 다했고, 제2의 길도 자체의 문제점이 누적돼 수명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는 제3의 길은 북구형 모델이다. 성장 면에서는 영미형 모델과 비슷한 성과를 내면서도 분배 면에서는 영미형 모델을 훨씬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실현 가능한가"이다. 그 답은 정치 민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 사이의 제도 부조화를 균형 상태로 회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정치 민주화 수준에 걸맞은 경제 민주화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거시적으로는 '사회적 대타협'이, 미시적으로는 '조직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필요한 것이 바로 '복지'이다. 참여정부가 분배에 치중한 나머지 저성장을 가져왔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두 가지 면에서 옳지 않다. 첫째, 참여정부는 분배에 충분히 주력하지 못했다. 둘째, 분배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참여정부가 분배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불황이 오래 가고 서민들의 고통이 크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과도한 관치도 과도한 시장도 우리의 방향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 관치의 타성과 시장 만능주의의 유혹을 동시에 경계하면서 우리 실정에 가장 적합한 시장경제 모델을 찾아나가야 한다. 앞서간 다른 나라의 경험을 참고해야겠지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최근 체결된 한미 FTA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우리 경제의 미래 행로를 영미형 모델로 제한해 버린다는 점이다. 영미형은 시장경제의 하나의 모델일 뿐,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하나의 통상협정에 우리의 장래 운명을 통째로 맡겨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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