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조치는 애초 농림부의 입장에서도 한참 후퇴한 것이다. 농림부는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앞으로 등뼈가 발견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에 통보했었다. 이런 사실은 <프레시안>이 입수한 농림부가 지난 8월 1일 미국 대사관으로 보낸 공문을 통해 확인됐다.
농림부, "한 달 전에는 美 쇠고기 수입 중단 '경고'"
해당 공문을 보면, 농림부는 "앞으로 (등뼈가 발견되는 것과 같은) 수입 위생 조건 위반 사례가 반복해서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는 수입 위생 조건 '제21조 다항'의 규정에 따라 불가피하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 대사관을 상대로 통보했다.
수입 위생 조건 제21조 다항은 "(광우병 감염 위험이 큰) 특정위험물질(SRM)의 제거와 같은 안전 조치의 위반이 반복해서 발생할 때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등뼈의 척수는 뇌와 함께 광우병 감염 위험이 가장 큰 부위로 꼽힌다.
그러나 농림부는 한 달 만에 말을 바꿨다. 이상길 축산국장은 24일 미국산 쇠고기 검역 재개 조치를 밝히면서 "'미국 내 광우병 위험을 객관적으로 악화시킨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해도 수입 중단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엉뚱한 조항 들면서 수입 중단 '봉쇄'
농림부의 이런 설명은 수입 위생 조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시민을 기만한 것이다. "'미국 내 광우병 위험을 객관적으로 악화시킨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설명은 수입 위생 조건 '제21조 가항'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가항은 "미국의 미국 내 광우병 위험이 객관적으로 악화됐다고 판단되는 경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가항은 "미국 내 광우병 방역 정책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즉 최근 반복적으로 발생한 미국의 수입 위생 조건 '위반'과 관계된 내용이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수입 위생 조건은 '위반'이 반복될 때 수입을 금지할 수 있도록 제21조 다항을 따로 마련해 놓은 것이다.
농림부는 지난 8월 1일 미국으로 보낸 공문에서는 이 제21조 다항을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는 엉뚱한 제21조 가항을 들어 검역을 재개함은 물론이고 앞으로 수입 중단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까지 해 시민을 기만한 것이다.
전염병 예방해야 할 복지부는 뭐하나?
한편 이렇게 농림부가 미국 눈치만 보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보건복지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복지부는 광우병에 걸린 소를 섭취하면서 감염될 수 있는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vCJD)'을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복지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2006년 펴낸 인간광우병 관리 지침(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표본 감시·관리 지침)을 보면 "소의 뇌 및 척수 조직의 섭취는 직접적인 감염의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27쪽)고 시민을 상대로 교육·홍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번에 등뼈가 문제가 된 것은 바로 그 안에 척수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 통상, 식품 안전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전염병예방법을 보면 복지부 장관은 지정 전염병의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미국산 쇠고기에서 발견된 등뼈의 위험을 경고하기는커녕 농림부의 조치를 수수방관하기만 했다"며 "복지부 장관이 직무 유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복지부의 처신을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광우병 문제를 농림수산성은 물론 한국의 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성이 함께 대응한다"며 "국민의 안전에 직결되는 전염병 문제를 가축의 전염병 예방 절차를 따르는 농림부에 맡겨 놓고 복지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현실은 한국의 낙후한 식품 안전 행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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