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임기가 이제 1년 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부시는 재임 기간 내내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각종 국내외 쟁점에 문자 그대로 '달달' 볶였다. 기록적으로 낮은 국정 수행 지지율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이제 와서 임기말 권력 누수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부시 행정부의 난맥상이 여실히 드러나는 중이다. 임기말이라는 시점도 시점이려니와, 지난 중간 선거에서 상ㆍ하원 모두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실정을 파헤치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같이 청문회나 조사위원회가 열려 새로운 사실들이 공개되고 있다.
덕분에 행정부와 의회 사이의 기싸움이 제법 볼 만하다.강제소환장을 발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의원에 맞서, 백악관과 행정부의 임명직 공무원들은 다양한 버티기 전략을 구사한다. 증인 출석, 진술, 자료 제출을 아예 거부하는 '배 째라' 식은 비교적 초보에 속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헌법 조항이나 '행정특권(executive privilege)'을 거론하며 우회를 시도하는 것이 그 다음 수준이다. 아예 면책특권을 인정해야만 진술하겠다고 의회와 거래를 제안하고 나서는 영악한 경우도 있다. 물론, 고함이나 멱살 드잡이를 하지 않고도 '장군 멍군'을 주고받는 이들의 게임 운영 방식이 우리에게는 지루해 보일 수도 있다.
속속 드러나는 부시의 실정
며칠 전에는, 부시 행정부의 전반기인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의무총감(醫務總監, Surgeon General)'을 지낸 카르모나(Richard H. Carmona) 박사의 의회 증언이 화제가 됐다. 의무총감은 공중보건에 관련된 각종 쟁점과 사안에 대해 최고로 권위 있는 의견을 내는 직책이다. 의무총감의 주요한 역할은 국민들에게 건강 및 보건 교육을 담당하는 '국가대표의사(nation's doctor)'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금연, 섭생, 성교육, 에이즈 예방 등은 의무총감이 가장 앞에 두고 씨름하는 주제들이다.
의무총감의 발언이나 진술은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의학ㆍ과학 지식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카르모나는 부시 행정부에서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아무리 과학적인 근거가 확실해도 부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신념에 맞지 않는 주장은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발언은 단지 간접적 암시에 그치더라도 절대로 허용되지 않았다. 성교육 프로그램에는 오직 '금욕'을 강조하는 피임법만 포함돼야 했다. 비슷한 이유로 콘돔 사용이나 인공유산을 허용하는 가족계획 사업의 예산은 크게 삭감됐다. 많은 전문가들이 의사의 처방이 없이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 사후피임약인 '플랜 B'가 여전히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일반약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식으로 카르모나에게 압력을 넣은 사람들은 부시가 정부 요소요소에 배치한 임명직 정무공무원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카르모나의 연설 원고에는 한 쪽당 적어도 부시의 이름이 세 번은 언급되도록 요구하기도 했단다. 카르모나는 이렇게 자신에게 족쇄를 채운 이들을 비난하고 나섰지만, 구체적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다.
실정 뒤에는 '카르모나'들 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부시는 '회심한 기독교인'이다. 신앙이 인격의 성숙과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부시처럼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교조화하고, 더 나아가 이것을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공적 부문의 운영 원리로 대치하는 순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일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기독교인으로 칭송받는 전 미국 대통령 카터가, 공무 수행 능력에서는 거의 최하위 평가를 받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카르모나의 의회 증언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다시 말해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문제를 지적하느냐'는 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카르모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4년 임기를 꼬박 다 채웠다. 7월 17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언제 그만 두어야 할지를 알지 못한 의사(The Doctor Who Didn't Know When to Quit)'라는 제하의 칼럼도 다음과 같이 이 사실을 꼬집고 있다.
" (…) 자신의 집무실에서 왕따를 당한 채, 관련 정부 부처에서 무슨 일이 잘못되고 있는지 거의 확신했으면서도 그만 두고 나와서 왜 사임해야 했는지 말할 능력조차 없었다는 것은 미스터리이다. (…) 카르모나는 (미숙하고 무기력했던) 부시 행정부의 단면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예(poster boy)일 뿐이다."
과연 이게 먼 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만일까? 아니다. 참여정부가 집권한 지난 4년 여 동안 가속화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무능력 또는 무기력함은 부시 행정부의 난맥상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론 참여정부가 '우리는 잘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기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이런 주장은 '머리가 좋다' 또는 '얼굴이 잘 생겼다'는 말처럼 본래 남이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대 세계를 '선한 우리'와 '악의 축'으로 임의 재단한 부시 행정부나, 교조화된 민중 또는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집권 내내 모든 문제를 '동지 아니면 적'의 구도로 접근했던 노무현 참여정부나 오십보백보일 뿐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삶을 지탱하는 물적 토대에 대한 자신들의 빈약한 이해를 감추기 위해 모두 거창한 이념으로 치장했다는 사실이다.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법
미국처럼 이제 우리나라도 선거철에 들어섰다. 따라서 이곳저곳에서 한국판 카르모나들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작 문제를 제기할 것이지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무엇이 잘못되는지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읍소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들의 명성과 이익을 보장해 주는 또 다른 자리를 찾아 이동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원리를 무시함으로써 결국 파경 상태에 다다른 부동산 정책, 특출한 학생은 절대로 배겨날 수 없게 만든 기형적인 집단 하향 평준화 교육 정책,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환자) 사이를 회복 불능의 상태로 갈라놓고 그 와중에 정부만 무소불위의 통제권을 움켜 쥔 보건의료 정책의 이면에는 항상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침묵한' 수많은 정부 내의 고위직 카르모나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 또 그 다음 정권에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 갈아입고 화장 고치고 다시 등장할 것이다.
우연히 나와 이름이 같은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고위 공직자들이 언제 물러나야 할지 정확히 아는 것은 원칙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미숙한 정권의 연속된 악수를 방지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삶을 도외시한 이념 과잉의 정책을 집행한 최종 책임은 집권측이 져야 하지만, 이러한 정책의 배태 과정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들은 바로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자리보전에 힘쓴' 정부 내 고위직 카르모나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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