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일 FTA는 좌초되었나?
독자들이 아시다시피, 한국은 2003년 10월에 일본과 FTA 협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거의 지났지만, 이 협상은 타결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은 일본이 농산물 시장 개방에서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본이 FTA에서 일관되게 자국 농업을 제한적으로 개방한다는 것은 이미 정부도 잘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농업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관건이 일본의 농업 정책을 바꾸는 데에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한일 FTA가 좌초된 이유를 독도와 자동차에서 찾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FTA에는 영토 조항과 국민 조항이 들어있습니다. FTA가 적용될 공간적, 인적 범위를 정하는 조항입니다.
한일 FTA에서도 원칙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영토가 표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이 지배하고 있는 ①독도와 그 영해, 그리고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하여 한국의 영유권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일 FTA 협상이 진행 중이던, 2004년 판의 일본 정부의 방위백서는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명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 FTA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영토 협정으로서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한일 FTA에서 한국과 일본의 영토 조항을 규정하고, 이 내용이 들어 있는 FTA에 한국과 일본이 서명한다는 것은 상호의 영토 규정에 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한일 FTA에서 영토조항을 두지 않으면 안 되냐고요? 아마 그런 대안도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에 대해 자국의 영토를 정면으로 주장하지 않은 조약에 서명하는 결과가 됩니다.
독도가 역사적이고 주권적인 차원에서 한일 FTA를 좌초시켰다면, 자동차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한일 FTA를 가로막았습니다. 만일 한일 FTA를 체결하여 일본의 자동차가 한국에 무관세로 수입되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2004년 12월에는 이렇게 '건의'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일본의 자동차 산업에 비해, 국내 자동차 산업은 규모, 기술, 품질, 생산성 면에서 열세이므로 충분한 대응 없이 한일 FTA가 체결될 경우, 국내 자동차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문준조, '우리나라의 FTA 체결을 위한 체계적 연구'에서 재인용)
부족한 지면을 한일 FTA 이야기로 낭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독도와 자동차가 여전히 한미 FTA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미국의 '독도/다케시마' 정책
일본이 제기하는 이른바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하여, 당사국인 한국(북한 포함)과 일본을 제외하고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만일 한국과 일본이 이른바 독도 영유권 분쟁으로 무력 충돌을 한다면, 그로 인해 가장 큰 전략적 피해를 당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당연히 이른바 독도 영유권 분쟁을 매우 심각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공식적으로 대놓고 한국과 일본의 어느 한편에 서지는 않습니다. 그럼, 미국은 과연 ①독도와 그 영해, 그리고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한 한국의 영토권, 곧 한국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관할권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닌가요?
제가 보았을 때, 미국이 가지고 있는 독도 정책은 위 두 가지 영역 중 ①독도와 그 영해에 대해서는 한국의 배타적 지배를 인정하되,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서는 한국의 배타적 지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①독도와 그 영해에 대한 한국의 배타적 지배마저 부인하려 한다면, 이는 현재 이를 실효적으로 점령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물리력을 파괴하지 않고선 안 됩니다.
이러한 미국의 '독도/다케시마' 정책을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천명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일개 변호사라도, 만일 제가 미국의 담당 공무원이라면 이와 같은 정책을 수립할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①독도와 그 영해뿐만 아니라,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서도 한국의 배타적 지배를 인정한다면, 장래의 통일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과연 어떠한 정책을 취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광대한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를 미리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이 ①독도와 그 영해뿐만 아니라,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하여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해 주는 것이 미-일 동맹 체제아래에서 미국에게 더 유리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한미 FTA 서명본의 영토 조항 수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설명 편의를 위해 다시 한 번, 두 번째 연재에서 본 [표 4]의 영토 조항의 수정 내용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한미 FTA의 대한민국 영토 조항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영토, 영공, 영해를 의미하는 "the land, maritime, and air space"이며, 또 하나는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의미하는 "those maritime areas, including the seabed and subsoil adjacent to and beyond the outer limit of the territorial sea"입니다.
이를 독도 지역에 적용하면, ①독도와 그 영해는 전자에 속하며, ②독도 인근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은 후자에 속합니다. 만일 미국이 [표 4]의 한미 FTA의 수정 전 영토 조항에 서명하였다면, 이는 미국이 전자인 ①독도와 그 영해에 대해 한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exercises)" 것을 기준으로 후자인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도 모두 한국의 영토에 속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수정된 조항에 서명함으로써, 전자인 ①독도와 그 영해와, 후자인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의 관계를 분리시켰습니다. 전자인 ①독도와 그 영해에 대해서는 한국이 주권을 "행사하는(exercises)" 것을 기준으로 한국의 영토임을 인정하되, 후자인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서는,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독도 영해에 대해 주권을 "행사해도 되는(may exercise)" 것을 기준으로 한국의 영토 여부를 인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may exercise"와 "exercises"의 차이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콜린스 코빌드(Collins COBUILD)> 영어사전은 조동사 'may'에 대해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You use may to indicate that someone is allowed to do something, usually because of a rule or law." (대개 규칙이나 법률에 따라 어떤 행위를 함이 허락된 것임을 표현할 때 'may'를 사용한다.)
이른바 일본이 제기하는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 한국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①독도와 그 영해 및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 한국은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주권을 행사한다(exercises)는 것입니다.
반면 일본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국제법에 의할 때, ①독도와 그 영해 및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고, 그 주권 행사가 허락되어야 하는(may exercise) 나라는 일본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제가 이해하는 바의 미국의 독도/다케시마 정책은 ①독도와 그 영해에 대해서는 한국이 주권을 행사하는(exercises) 것을 수용하되,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서는 한국의 배타적 지배를 부인하고, 이를 한국과 일본이 국제법적으로 그 주권을 행사해도 되는(may exercise) 방식을 상호 타협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표 4]의 수정 후 조항입니다.
미국이 위와 같이 수정 전 영토조항에 서명하는 대신 수정 후 영토조항에 서명하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허술한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대변한 수정 전 영토 조항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수정 후의 영토 조항에 서명함으로써, 사실 일본의 이른바 독도 영유권 분쟁 제기를 인정하고, 미국의 독도/다케시마 정책을 관철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필자의 '소설'로 보이시나요? 아니면 <국정브리핑이>나 <청와대브리핑>이 즐겨 쓰는 용어인 필자의 '왜곡', '선동'으로 보이나요? 우리는 잠시 여기서 한미 FTA보다 불과 이틀 전에 서명된 파나마-미국 FTA에서의 파나마 영토 조항을 담고 있는 [표13]을 살피겠습니다.
[표 13] territory means: (a)with respect to Panama, the land, maritime, and air space under its sovereignty and the exclusive economic zone and the continental shelf within it exercises sovereign rights or jurisdiction in accordance with international law and its domestic law; 영토란, (a)파나마에게는, 그 주권 하의 육지, 해양, 상공, 그리고 파나마가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그에 대해 주권과 관할권을 행사하는 범위 내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 |
미국이 이처럼 파나마에 대해서는 주권을 "행사하는(exercises)"이라고 표현된 영토 규정에 서명한 까닭은, 그것은 국제법상 영토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국가가 영토 주권을 행사하는(excercise) 것과 행사해도 되는(may exercise) 것에 그 어떤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영토 가운데, 오로지 ①독도와 그 영해 및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행사하는 것과 행사해도 되는 것 사이의 등가성이 오로지 일본에 의해 부인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표 4]와 같이, 한미 FTA 영토조항 수정에 동의하고 이에 서명하였다는 것은 일본의 이른바 독도 영유권 분쟁 제기의 존재를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서는 이를 시인한 것으로 장차 원용될 것입니다. 이렇게 독도의 바다는 우리 곁을 조금씩 보이지 않게 떠날지도 모릅니다.
정부는 다섯 가지 의혹에 답해야
저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정부 당국자가 개별적이면서 간접적으로 전해 오는 해명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위 영토 조항 가운데, 독도에 적용되는 육지 규정은 수정되지 않아 변함이 없고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해명은 ①독도와 그 영해에 대해서는 한국의 점령을 인정하자는 미국의 '독도/다케시마' 전략과 일치합니다.
또 하나의 해명은 한미 FTA에서 "may exercise"로 되어 있는 미국의 영토 조항과 일치시키기 위해 수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가 자신의 영토를 표현하는 방식은 각 나라의 권리이며, 다른 나라의 표현과 일치시켜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위에서 본 파나마-미국 FTA에서도 파나마는 미국이 "may exercise"를 쓰고 있음에도 자신은 'exercises'를 사용했습니다.
더욱이 미국은 영토 분쟁이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이 이런 나라와 규정을 일치시킬 하등의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은 [표 4]와 같이 하나의 단일한 영토 조항에서 영토, 영공, 영해에 대한 규정에서는 "exercises"를 쓰고,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서는 "may exercise"를 사용함으로써, 통일성과 일관성을 스스로 훼손하였습니다.
또 외교통상부의 또 하나의 해명은 "exercises"와 "may exercise"가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영어사전의 존재 가치를 부인하는 해명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국적법에 따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 사항에 대하여 당국자의 보다 성실한 공식적 설명을 요구합니다. 왜 한미 FTA의 영토 조항이 서명을 앞두고 갑자기 수정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수정은 헌법상의 조약 체결권자의 사전 재가를 받은 것인지, 그리고 이 수정의 법적 효과가 무엇이며, 이것이 일본의 이른바 독도 영유권 분쟁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밝혀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왜 영토 조항이 수정되었음에도 이를 국민에게 따로 알리지 않았는지 해명해 주십시오. 국민의 한 사람을 안심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 FTA 서명본 첫 번째 해설 : "한미 FTA는 '불평등 조약', 미국서는 '뭉갤' 수 있다"
☞ FTA 서명본 두 번째 해설 : "한미 FTA로 '독도' 위험해질 수 있다"
☞ FTA 서명본 세 번째 해설 : "18개월 유예시켰다더니…계속되는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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