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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우리의 탐욕이 만들어냈습니다"

[공무원을 위한 FTA 해설·5] 간접수용(上)

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하 '협정문')이 미국인 투자자에게 부여한 대우들, 즉 국제중재 회부권, 국제법상 최소기준 대우, 내국민 대우에 대해 해설했습니다.

연재의 마지막 주제로는 수용보상 대우에 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공무원 여러분의 업무 처리가 '수용'으로 처리되는 법리와 외환위기 관련 대책이나 과세도 '수용'으로 취급되는 범위를 밝히려 합니다.

"한미FTA는 '탐욕과 배제의 문화'를 제도화하는 것"

이에 앞서 먼저 한미 FTA 협정문에 대한 제 관점을 밝히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률 해석에는 해석자의 가치관과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마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미 FTA 협정문은 법률적으로는 한국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으로부터의 일탈입니다. 사회적으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배태된 '탐욕과 배제의 문화'를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문은 경제적으로는 한국이 과거 동원체제 성장방식의 성과와 문제를 성숙·심화시켜 새로운 질적 성장 경로로 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생태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사회 전환'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한미 FTA 협정문을 이렇게 보는 것은 이 협정문의 기본 원칙과 특징이 재산권의 절대적 보호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광범위하게 제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많은 문제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 주도로 자원을 동원해 생산력을 발달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1960년대 말 제가 살던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던 때의 감격과 신기함을 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제성장은 1960년 초 '경제개발' 계획 당시 우리 내부에 강력한 재산권 기득권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철저하지 않았지만 농지개혁이 있었기에, 지주계급은 국가의 경제개발 동원 체제에 저항할 만큼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경제개발 계획 초기에 국가의 동원에 저항할 강력한 재산권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국가만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상당한 생산력을 자랑하게 된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시대적 질문'은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해 사회 통합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호에 승선한 인민들 다수의 삶에 유익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장이 갑자기 초라한 몰골로 나타났습니다"
▲ IMF 외환위기 후 급속히 늘어난 노숙자들은 소외와 굶주림 외에 알콜중독에도 무방비로 노출돼고 있다. 이들의 '개인적인' 잘못이기만 할까? ⓒ연합뉴스

불행하게도 10년 전의 IMF 사태가 이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폭력적으로 해결해 버렸습니다. IMF 사태는 제가 경험한 최대의 경제적 사변입니다.

국가가 갑자기 초라한 몰골이 돼 나타났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집안의 가장으로 군림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옆집 부자 아줌마에게 무릎을 꿇고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을 온 집안 식구들이 목격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날 이후 한국인들은 국가를 내팽겨쳤습니다. 대신 각개약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재산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공백은 외국의 금융자본이 채웠습니다.

유길준은 1895년에 출간한 <서유견문>에서 "개화하는 데에서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모자라는 자보다 더 심하다"고 설파했습니다. 그는 바른 개화란 "지나친 자를 조절하고, 모자라는 자를 권면해, 남의 장기를 취하고 자기의 훌륭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길준의 이같은 권고에 따르면, IMF 사태는 한국이 '바른 개화'의 기회를 상실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훌륭한 점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조목조목 살펴볼 여유를 가져야만 했고, 또 가질 수 있었으나, IMF 사태로 그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삼천리금수강산'이 그 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환경적으로 고통 받았는지를 성찰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나,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우리는 성숙할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불안한 무국적의 바다로 떠밀러 갔던 것입니다.

IMF 사태의 정신적 충격은 워낙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10년 동안 한국에서는 개인의 재산, 즉 돈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한미FTA는 '돈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는 IMF 문화'를 제도화합니다"

바로 이 새로운 질서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한미 FTA 협정문입니다. 이 협정문은 한국의 자동차나 섬유를 미국에 더 팔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성격의 문서가 아닙니다.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가를 광에 가두는 것을 규정하는, 그런 문서입니다. 국가가 재산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권이 국가의 규제를 규제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미 FTA 협정문을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협정문은 우리 내부의 탐욕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협정문을 보고 있습니다.

한미 FTA 협정문의 근본적 원칙이 '재산권의 절대적 보호'이며, 재산권이 이 협정문에서 보장받는 지위는 한국 헌법에서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다음 <표 10>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은 협정문의 수용보상 조항을 요약한 것입니다.
<표 10>
국가가 투자자의 투자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공공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며, 적법 절차 및 국제관습법상의 최소기준대우를 해야 하며, 수용일 직전의 공정시장가격의 보상을 완전한 현금화가 가능하도록 지체 없이 신속하게 지급해야 한다. (11.6조)

이 조항을 <표 11>에 나온, 한국 헌법의 재산권 조항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 11>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23조)

위 두 표에는 공통적으로 '수용'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자음과 모음이 같을 뿐, 그 의미는 다른 말입니다. <표 10>의 수용은 'expropriation'이라는 영어 단어의 번역어에 지나지 않는 반면 <표 11>의 '수용(收用)'은 우리의 법률 용어입니다.

한국의 헌법과 법률에서의 '수용'은 국가가 재산권을 취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토지 수용'에서의 '수용'이 그 의미입니다. 재산권 소유 명의가 개인에서 국가로 이전되는 것이 수용입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에 들어간 번역어 '수용'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협정문상 수용에는 <표 12>처럼 또 하나의 독립적 범주가 있습니다.
<표 12>
두 번째 상황은 간접수용으로서, 소유 명의의 이전은 없이 이에 동등한 효과를 가지는 경우이다. (부속서 11-나 3항)

여기서 '간접수용'이란 무엇일까요? 이 단어는 공무원 여러분의 규제 업무를 직접 겨냥하고 있습니다. 재산권의 취득이나 이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여러분의 행정 규제가 바로 이 간접수용 개념의 표적입니다.

간접수용의 의미에 대한 국제중재 판례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한미 FTA 협정문의 '직접수용'과 '간접수용'이라는 두 가지의 범주화 방식이 과연 한국의 헌법 질서에서도 허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표 11>에서 나온 것처럼, 한국의 헌법은 공공 목적을 위한 재산권 침해의 유형을 '수용', '사용', '제한'이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헌법은 이에 저촉되는 법률을 포함한 일체의 국가의사가 유효하게 존립될 수 없는 '경성헌법'입니다.'(헌법재판소 2004. 10. 28. 선고 99헌바91결정문)

한미 FTA 협정문이 한국의 헌법과 달리 용어 구조에서부터 '직접수용'과 '간접수용'의 두 개념을 사용한 것은, 이제 공무원 여러분이 보게 될 '사실상 개헌'의 서곡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미 FTA 협정문은 한국 헌법의 재산권 조항으로부터의 '일탈'인 동시에 미국 헌법의 재산권 절대적 보호로의 '개헌'입니다. 한국 헌법에는 <표 11>과 더불어 다음 <표 13>의 경제 민주화 조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표 13>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119조 2항, 122조)

아마 공무원 여러분 중 '이따위' 조항이 미국헌법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 헌법에는 아래의 조항 한 개만이 있을 뿐입니다.
<표 14>
(…) nor shall private property be taken for public use, without just compensation. (정당한 보상 없이, 사유재산을 공용으로 취득당하지 아니한다. (수정 5조)

이처럼 한국의 헌법 질서에서의 재산권은 국회가 입법한 법률에 의해서 비로소 그 내용이 정해지고 사회적 구속을 받게 되는 반면, 미국의 헌법에서는 이와 같은 조항이 전혀 없고 재산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공무원 여러분은 한미 FTA 협정문이 한국 헌법과 미국 헌법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여기서 잠시 미국 헌법 질서에서의 재산권 보호 기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협정문의 '조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편에서 계속>

☞ 1회 보기 "프랑켄슈타인과의 동거"-한미FTA로 공무원 업무지침 사라져

☞ 2회 보기 "공무원 여러분, 각별히 조심하십시오"-'최소기준대우'에 내던져진 한국

☞ 3회 보기 "재벌총수 여러분, '멋진 신세계'에 주목하세요"-국민기업의 경영권

☞ 4회 보기 "미국인은 '선제적으로' 배려하세요"-헌법 위에 놓인 '내국민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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