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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위반' 없이도 소송 걸리는 非위반제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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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위반' 없이도 소송 걸리는 非위반제소라니?

[한미FTA 뜯어보기 289] 범국본 긴급 문제제기…"모호해서 더 무섭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고위급 협상이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한미 FTA 협정문에 들어가는 것이 확실시되는 '비(非)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 제도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비위반 제소'란 말 그대로 협정을 위반하지 않아도 "협정으로부터 부여됐다고 '합리적으로 기대한 이익(reasonably expected benefits)'이 협정과 일치하는(not inconsistent) 당사국의 조치로 인해 무효화 또는 침해된 경우"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협상 막바지에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미국[한국]기업이 한국[미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라면, 비위반 제소는 미국[한국]정부가 미국[한국]기업을 대신해 한국[미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두 분쟁 절차의 주체는 각각 다르지만, 국가의 공공정책에 딴죽을 걸고 그 정책을 없앨 수 있다는 본질은 동일하다.

"농업과 지재권만이라도 비위반 제소 대상에서 빼야"
▲ ⓒ연합뉴스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의정대책단은 15일 서울 희망포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 공식 협상이 완료된 현재, 상품무역, 원산지, 서비스, 정부조달 등 4개 분야가 비위반 제소 범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한미 양측 간 합의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비위반 제소 협상은 미-호주 FTA 수준으로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지적재산권과 농업이 비위반 제소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범국본은 "이 비위반 제소는 규정이 모호하고, 적용 요건이 불확실해 국가의 정책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가령, 지난해 12월 시행된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 가운데 △미 제약회사의 신약이 건강보험 적용대상 의약품 목록(포지티브 리스트)에 등재되지 않을 경우 △미 제약회사의 약이 포지티브 리스트에 들어가더라도 책정된 약값이 A7 평균 약값에 미치지 못할 경우 미국 정부가 한국의 건강보험에 소송을 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범국본은 이밖에도 한국 정부의 농업 보호 정책, 뼛조각이 포함된 미국산 쇠고기의 반송·폐기 조치, 유전자조작(GM) 농산물 표시의 엄격화 등 다양한 국가 정책 분야에서 비위반 제소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범국본은 "비위반 제소는 제도 자체가 가지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남용될 소지가 있고, 특히 양자 간 협정인 한미 FTA에서는 별도의 견제장치 없이 남용될 우려가 있으므로 아예 원천적으로 이 제도를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만약 의제에서 비위반 제소를 제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농업과 지적재산권만이라도 소송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통부, ISD뿐 아니라 비위반 제소에서도 타 부처 의견 묵살

비위반 제소는 다자간 통상협정인 WTO 협정에서도, 양자 간 통상협정인 FTA에서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소송 사례도 전 세계적으로 별로 많지 않고, 설사 있더라도 소송 규모가 작고 판결의 구속력도 약한 편이다. 한국 정부 역시 바로 이런 점을 들어 비위반 제소에 대한 비판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FTA에 포함되는 비위반 제소'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무지의 소치'라는 것이 범국본의 반박이다. 원래 비위반 제소는 WTO 협정에서 상품에 대한 관세가 인하됐는데도 한 국가의 정책이 그 관세인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경우에 한정되는 것이라면, FTA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국가 정책에 적용된다는 것.

앞으로 미국이 지향하는 대외정책 기조인 '경쟁적 자유주의'에 따라 전 세계에 FTA 바람이 불면,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더불어 아직은 '잠자고 있는' 비위반 제소 제도의 위력이 깨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재계와 법조계가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비위반 제소 제도의 발전 추이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현재 분쟁해결 분야의 협상은 외교통상부가 전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범국본은 "(비위반 제소의 대상이 되는) 해당 부처들이 비위반 제소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는 협상 시작부터 미국 측 요구를 받을 의도였다"고 비판했다. 비위반 제소 협상에서도 외통부의 '독주'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간 포괄적 경제협력에 관한 기본협정에서만 해도, 분쟁해결에 관한 협정 비준 동의안 제3조 제1항에는 "비위반 제소 분쟁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각주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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