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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기고] 대한의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서울대병원이 추진하고 있는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광혜원) 122주년' 기념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열되고 있다. 그 동안 이 기념사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왔던 연세대병원은 3·1절을 맞아 한 장의 엽서 사진을 공개했다.

1908년 대한의원 개원을 기념해 나온 이 엽서에는 일본인 사토 스스무 대한의원 원장의 인물 사진이 실려 있다. 대한의원 개원을 기념해 나온 엽서 중에서 인물 사진이 실린 것은 이 것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서울대병원 등이 공개한 엽서는 대부분이 건물, 진료실 등의 사진을 담고 있었다.

연세대 의대에서 의사학(醫史學)을 연구하는 박형우, 여인석 교수는 <프레시안>에 이번에 공개한 엽서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기고를 보내왔다. 이들은 기고를 보내면서 "이번 엽서는 대한의원이 일본 제국주의의 전초 기지였다는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서울대병원의 주장처럼 대한제국이 실권을 갖고 있었다면 개원 기념엽서에 일본인 사진이 등장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 3·1절을 맞아 연세대병원이 공개한 대한의원 개원 기념엽서. 이 엽서에는 일본인 사토 스스무 대한의원 병원장의 사진이 들어 있다. ⓒ프레시안

서울대병원의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은 필자들이지만, 그 이전에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처음 나섰을 때 많은 분들이 이미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음을 필자들은 잘 알고 있다.

대한의원 기념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이 이를 강행하며 내세우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대한의원은 근대성과 식민지성이 결합한 산물이며, 대한의원을 식민지 의료기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추구해 온 의료 근대화 사업의 한 결실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대한의원의 설립은 기념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먼저 "대한의원은 조선 및 대한제국 정부가 188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의료근대화 사업의 성과를 종합한 것"이라는 주장의 문제를 살펴보자. 이러한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대한의원 설립의 주체와 동기가 조선 및 대한제국 정부가 추구해 오던 그것과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대한의원의 설립주체는 일제 통감부이며 설립 동기는 식민지 의료 체제 확립과 회유였다.

서울대병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한의원이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그것이 당시 어떠한 역사적·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나 분석도 없이 대한의원의 도구적 근대성만을 추출하여 이를 기념하겠다는 것이다. 칼은 누가, 어떤 의도로 잡느냐에 따라 치료의 도구도 될 수 있고 범행의 흉기도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서양의학도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백성을 치료하는 인술도 될 수 있고 침략의 방편도 될 수 있다. 도구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조선정부가 수용하려 노력한 서양의학과 일제가 대한의원을 통해 시술한 서양의학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술의 주체와 동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서울대병원은 이 주체와 동기의 차이를 소거하고 도구적 차원의 동일성만 부각시킴으로써 연속성을 확보하려 시도한다.

대한의원 기념, 무엇이 문제인가?

또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이 형식적으로 대한제국 시기에 설립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대한의원 관제가 반포된 1907년이 어떤 해였는지 살펴보자. 이 해에 고종은 헤이그 밀사 파견을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 당했으며, 대한제국은 정미조약 체결로 행정권과 사법권마저 박탈당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했다.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더구나 대한의원 관제가 반포된 것은 1907년이지만 병원이 문을 연 것은 이듬해인 1908년 10월이었다. 외교권은 물론, 행정권, 사법권, 군대까지 박탈당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한의원 설립에 대한제국이 추구해 오던 정책 의지가 얼마나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할까?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대한의원 개원 기념엽서에 실린 여러 사진 중 유일한 인물 사진이다. 이 유일한 인물 사진의 주인공은 대한의원 초대 원장 사토 스스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대한의원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만약 서울대병원의 주장처럼 대한의원이 대한제국의 기관이었다면 어떻게 왕조국가에서 설립한 유일한 병원의 개원 기념엽서에 대한제국 황제가 아닌 일본 군의의 사진이 실릴 수 있단 말인가?

서울대병원측은 대한의원에서 식민지성만을 보는 것은 한국인들이 자력으로 키워 온 근대의 싹을 실패한 것으로 보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대한제국이 키워 온 근대화의 싹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싹이 일제의 강점으로 꺾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일제의 강점이 자주적 근대화의 싹을 꺾은 것이 아니라 식민지적 방식으로 키워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런데 대한의원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적극적 평가를 보건대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만약 그들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개항 이래 조선정부가 추구해 오던 근대화 사업의 종합이 총독부의 설치이며, 그것이 근대적 계기를 포함하고 있기에 우리는 총독부 설치도 기념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 기념에 집착하는가?

끝으로 대한의원이 식민지성과 근대성의 결합체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의 식민지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근대적 계기를 포함하기 때문에 기념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다시 말해 그들이 기념하는 것은 식민지성이 아니라 근대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의원에서 식민지성을 떼어버리고 근대성만 기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들 자신이 인정했듯이 근대성과 식민지성은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한의원의 근대성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한의원의 식민지성도 함께 기념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기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꺼내든 논리는 이제 비수가 되어 다시 자신을 향한다.

모든 기관은 그 기관 설립의 역사적 기원을 가능한 멀리 소급하여 찾고자 하는 속성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무리한 소급에 동반되는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연원을 끌어올려야 하는 어떤 절박한 사정이 서울대병원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사정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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