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 필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다시 보았고, 그의 글을 다시 읽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됐다. 낯선 도시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한때의 중학생은 "자신의 성취는 농촌의 자연이 준 것"이라는 당대의 존경받는 화가의 고백에서 정서적 일체감을 느꼈던 것이다.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산에 올라가 진달래, 찔레 같은 맛과 향기 속에 묻히는 시간을 퍽이나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게 후일 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인이 됐을는지도 모른다."(<꽃과 영혼의 화가 천경자> 59쪽)
그녀의 대표적 작품인 <생태>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멀리 떨어져서 많이 본 일이 있는 뱀의 동작이 퍽 유머러스한 친구처럼 느껴졌던 기억과 함께 뱀을 생각하고 있었다. 찔레꽃 향기 밑을 스치는 두 마리의 실뱀, 비단 허리띠 같은 독사."(같은 책 77쪽)
바로 이러한 정서적 경험에 대한 공감대가 한 외로운 중학생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들에서 부모님과 함께 일하다 온 몸으로 맞던 소나기 줄기, 어두운 밤 논둑길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을 가득 메우던 별들, 아침에 친구들과 함께 줍던 하얀 감꽃, 들판의 아지랑이, 종달새의 비상과 합창, 추수가 끝난 빈 들, 저수지 수면을 가르며 헤엄쳐 가던 꽃뱀….
"이 사회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갈림길에 선 FTA협상> 연재의 마지막 글을 이렇게 사소한 신변잡기로 마무리하는 것은 나의 삶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꼬리로 태어나 사십 대 중반의 나이로 살고 있는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는 우리는 분명히 과거보다 훨씬 잘 살게 됐다. 우리는 놀라운 생산력 발전을 이뤘고, 더 적게 일하고도 더 오래 살면서 더 많이 소비하게 됐다.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필자는 늘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지하철을 타면 집에서 25분이면 사무실에 닿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역 안의 신문가판대에서 여러 신문들의 1면 기사를 공짜로 훑어본다. 그리곤 <한겨레> 신문을 사서 잽싸게 전철을 탄다.
법원에 재판을 하러 갈 때도 전철을 탄다. 그러면 훨씬 더 소송 준비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철 속에서 좋은 재판 준비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서 소송에서 이긴 적도 있다.
이처럼 지하철은 생활의 일부다. 그런데 몇 주 전 필자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지하철역이 석면의 위험에 노출된 곳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필자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다. 지하철역에서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인체에 치명적인 석면을 공공시설에 사용하고 내팽개치는 이 사회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분노와 좌절감이 느껴지는 것도 순간이었을 뿐, 지금은 체념하고 그냥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한국인에게는 오로지 두 개의 공간만이 있다. 나와 가족을 위한 공간과 그 밖의 공간. 한국인에게는 나와 가족을 위한 공간만 의미가 있을 뿐 그 밖의 공간은 살벌하게 닫혀 있다. 자신과 자신의 피붙이 말고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신뢰할 사람이 없다. 세상은 전쟁터다.
'한미 FTA로 내가 살 수 있다면 너는 죽어도 좋다'는 '가족주의'
그렇다. 전쟁이었다. 필자는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짧은 기간에 150만 명이 사망하고 360만 명이 부상당한, 세계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내전의 고통과 충격에서 한국인의 의식이 '내 울타리 바깥은 적'이라는 식으로 고착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어줍지 않은 삶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의 삶과 의식은 아직 전쟁 중에 있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노리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농업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임에도 한국은 한미 FTA를 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의 주류가 농업을 죽이는 한미 FTA에 찬성하는 것은 '내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사는 일이라면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은 죽어도 된다'는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만일 한국인이 자신의 가족과 소속 집단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낯선 타인들과의 유대와 공존도 보장하는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면, 정부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한미 FTA를 추진할 수 있었을까?
일본이 선뜻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일본 사회에서 아직 일본 농업의 장래에 대한 계산과 준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낯익은' 한미 FTA
그런데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한미 FTA는 기실 낯익은 것이다. 한미 FTA는 정부가 권장하는 통일벼 종자 대신 다른 전통 품종으로 모판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논을 짓밟아 버렸던 박정희 정권의 발길질, 유기농업을 몸소 실천하는 농부들에게 던져졌던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의 연장선상에 있다.
필자는 어느 여름날 농약 중독으로 고통 받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 서둘러 아버지에게 먹여 드렸던, 농협에서 보급하던 하얀 색깔의 중독 치료제를 기억한다.
우리 농업은 이제 유전자조작(GM) 미국산 옥수수 사료 없이는 우리 가축의 배를 채울 수 없고, 세계 최고 수준에 육박하는 양의 항생제와 농약과 비료를 투입하는 농업으로 '발전'했다. 이런 농업에서 '신토불이'는 위선적 구호와 다름 없다(졸저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
그동안 우리 사회는 우리 농업의 다양성과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의 토대를 야금야금 갉아 먹고 살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 자신의 존재 기반을 허무는 일이었다. 거대한 아스팔트로 뒤덮인 수도권은 지구 온난화 시대에 취약한 지대의 하나로 곧 세계적 주목을 받을 것이다.
전쟁과 반공으로 한 번 죽은 사회적 유대, FTA로 또 죽이려고?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자꾸 필자의 사적인 경험을 말해서 미안하지만, 연재의 마지막이니 이해를 구한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크레용과 물감으로 그려야 했던 포스터의 주제에는 '수출 100억불 돌파'가 있었고, '대망의 80년대'도 있었다.
이런 포스터에서는 늘 길 너머로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빨간 크레용으로 열심히 태양을 색칠했다. 아이들 각각의 포스터마다 밝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미 FTA를 잘 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미 FTA가 밝은 태양으로 빛나는 미래로 가는 다리는 결코 아니다. 더 소중한 것은 따로 있다. 한국이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적 가치와 연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을 비추기 위해 기다려줄 밝은 태양은 없다.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서는 다수가 행복할 수 없다.
오히려 한미 FTA를 체결하기 위해 한국만의 독자적 연구와 과학적 자료 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다시 수정하는 것은 이 나라를 더욱 살벌한 전쟁터로 만들 것이다. 이런 짓이야말로 '내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사는 길이라면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은 죽어도 된다'는 전쟁의 본질이다.
이런 FTA라면 전쟁과 반공주의로 이미 한 번 훼손된 '사회적 유대'를 시장 자유주의로 하여금 다시 파괴하도록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면 미국과 좋은 조건으로 FTA를 체결하라! 그러나 다양성과 신뢰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사회적 유대의 싹과 가능성까지 밟지 말라! 내게 필요한 태양은 제발 가리지 말아 달라!
한미 FTA는 '선택', 농업은 '필수'
필자는 그동안의 변변치 못한 삶을 통해 수출증대나 시장이 우리 사회에 '사회적 유대'까지 선물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비교적 많은 외국을 방문했지만, 사회적 가치와 유대를 시장경제나 수출증대, 혹은 FTA를 통해 해결하는 선진국은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낯선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설사 한미 FTA로 고용이 늘더라도, 그렇게 고용된 사람이 우리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쟁터 같은 사회적 관계가 변화되지 않는 한, 우리들 중 다수는 행복할 수 없다.
연재를 마치면서 '아름답고 활력 있는 농업과 농촌이 한국인의 필수적 행복 조건'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한미 FTA는 '선택'이지만 농업과 농촌은 다양성과 신뢰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적 요소'다.
농업과 농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근대화'나 요즘 유행하는 '선진화'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겠지만, 농업과 농촌은 현대 국제경제 질서의 한 핵심이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요 미래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중요한 열쇠들 중 하나도 바로 농업이다.
이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역할이 농업에 대단히 중요하다. 언젠가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아름답고 활력 있는 농업과 농촌을 위해 도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다룬 글을 들고서 <프레시안>의 독자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 이 일이 내게는 한미 FTA보다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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